시골처럼 음악처럼

우물쭈물하다가 보낸 1년

by 포포

#1

1808년 12월 22일 저녁, 오스트리아 빈의 한 극장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추운 저녁이었지만 객석은 꽉 찼다. 모차르트 이후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던 베토벤의 새 창작곡이 발표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6시 30분에 시작된 음악회는 밤 10시 30분에 끝났다.


무려 4시간 동안 이어진 음악회의 첫 곡은 ‘전원교향곡’이었고, 다음곡은 5번 ‘운명’이었다. 역대급 음악회로 음악사에 전해지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지루했을까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알다시피 전원교향곡은 ‘시골 예찬곡’이고 5번곡 운명은 인간의 삶을 주제로 한 곡이다. 전원은 비교적 잔잔하고 평온한(그래서 더 지루할 수 있는) 곡이고, 운명은 격정적이고 웅장한 리듬으로 시작된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12월 22일 동지팥죽을 먹고 난 뒤다. 귀로는 베토벤의 전원을 들으며 눈으로는 시골스러운 활자를 보고 있다.

#2

오래 전 정년퇴직한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특별한 용건은 없었다. 잘 지내는지,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않는 게 좋은, 이상한 시대의 송년 통화였다.


선배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책 보고, 음악 듣고, 여행 다니고, 3대 기쁨을 누리며 살다가 여행을 멈춰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가 정년퇴직한 뒤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천만다행인 것은 책과 음악을 좋아한다는 점이야. 이 두 가지만 갖고도 노후를 평화롭게 보낼 수 있거든. 노년은 금방 오는 것이니,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해라. 책과 음악을 가까이 해.”


물론 후배는 선배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당장 할 일이 있고, 만날 사람이 많고, 무엇보다 여전히 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해, 한 해가 무섭게 지나갔다.


#3

코로나19가 휩쓸고 있는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송년은 어김없이 오지만 송년회는 없다.

이 원인이 무엇인지를 많은 사람들이 묻고 답한다. 저마다 받아들이는 방식, 받아들이고 싶은 해석이 다르다.


용어의 적절성은 모르지만 ‘자연의 반격’이라는 해석이 내게는 깊이 와 닿는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묘비명에는 그나마 고뇌의 흔적이 느껴진다. 마냥 왁자지껄하다가 이럴 줄은 왜 몰랐단 말인가.


#4

베토벤이 전원교향곡을 작곡한 곳은 빈 외곽의 시골마을이었다. 당시에는 빈에서 마차로 한 시간쯤 걸리는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전철로 20분이면 간다나. 그보다 4년 전 그는 유서를 써놓고 죽음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 위대한 음악가를 회생시킨 곳이 시골 풍경이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들으면서, 노선배의 말을 떠올리며, 당시 전원교향곡을 들었던 시각장애인 소녀와 옆에 있던 사제가 나눈 대화를 전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정말 그처럼 아름다운가요?”

“그처럼이라니? 무엇처럼 말이냐?”

“저 음악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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