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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Jun 02. 2023

콩을 닮은 사람

콩과 한국인

스스로 엘리트를 자부하며 살아온 K형 얘기다. 그는 늘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4K 학교를 나왔으니 엘리트 중의 엘리트 아니겠냐며 어깨를 펴고 다녔다. K형의 4K는 경기초등학교, 경기중·고등학교, 경기대학교를 뜻한다. 그러면서 늘 “내 학벌 근사하지?” 하고 뽐냈다.

 

물론 그는 평준화 이전 세대다. 즉, 고등학교 때까지는 천재 수준으로 공부를 잘했지만 고등학교 때 망가졌다는 의미이고(경기대학교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다. 그가 대학을 다닐 때는 경기대학교가 후기였다), 이제는 망가지고 말 것도 없이 건강 걱정밖에 모르는 노년이 되었다는 의미다. 


그는 이제 엘리트 옷을 벗어던지고 스마트한 노년을 목표로 살고 있다. 스마트한 노년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콩나물’처럼 사는 것이라고 했다. 콩나물처럼 사는 게 무엇이냐 물었더니 “음지에서 조용히 물만 먹고 사는 것”이고,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럴 듯한 말이지만, 말 많고 방랑기 많은 사람에겐 불가능한 목표였다. 그것을 꼬집자 그는 “그러니까 목표지”라고 기름장어처럼 빠져나갔다.


콩나물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인만 먹는다. 나물…도 아니고 콩…도 아닌, 채소…인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한 식재료다. 어쩐지 K형과 비슷하다. 그 역시 키가 멀쑥하게 크고 엘리트인 듯하면서 아닌 듯하고, 이런 듯하면서 저런 듯하다. 한국인 특유의 기질도 강하다(감정에 솔직하고 정감이 많은데 더러는 욱하는 성깔 때문에 종종 욕도 먹는다. 한국인의 기질을 꼭 이렇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K형은 요즘 콩나물을 지향하며 살고 있다.

 

콩나물은 음지에서 물만 먹고 자란다. 우리나라의 콩나물용 콩은 대부분 제주도에서 재배한다. 우리가 먹는 곡식 중 유일하게 한반도와 만주가 원산지인 작물이 콩이다. 세상의 수많은 식물과 곡물, 채소의 원산지를 알아보면 중국과 남아메리카가 태반이다(벼-인도, 옥수수·당근·고추-남아메리카. 배추·파·팥·보리-중국 식이다) 인류 보편적 식량 중 한반도가 고향인 작물은 콩이 유일하다. 콩에서 나온 콩나물을 한국인만 먹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콩으로 메주를 쑤고 메주로 된장과 간장을 담그는 장류 문화가 한반도에서 꽃핀 이유도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한국판 신데렐라인 콩쥐가 착하고 예쁜 모습으로 전승되어 온 것도, 팥쥐를 악마화하고 콩쥐를 선녀화한 이유도 어쩐지 짐작이 간다. 순환기 건강의 척도인 신장을 콩팥이라 부르는 이유도 단순히 생김새 때문만은 아니며 숙취 해장용으로 콩나물이 인기인 것도 우리에게 콩 DNA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도 된다. 어떤 점에서 우리는 쌀 민족이 아니라 콩 민족에 가까운 것이다(그렇게 주장하는 학자들이 제법 있다). 그래서인지 분명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도 정말 콩밥을 좋아한다. 


최근 시장에서 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쌀이 남는 시대, 우크라이나 사태, 기후 위기, 건강 중심 사고와 비건 시장의 확장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준 때문이다. 

콩 가공식품들도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 중이다. 두부와 두유 중심이었던 콩 가공식품은 대체육과 스낵 등 다방면으로 뻗어가는 중이다. 


1970년대만 해도 98%에 달했던 콩 자급률은 2010년대 8.7%까지 내려갔었다. 2021년 23.7%로 반등했고 이 추이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콩의 반등은 우연이 아니고 한국인에게는 특히 그렇다고 자꾸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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