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교복을 입고 다니던 시대, ‘엘리트’와 ‘스마트’라는 양대 브랜드가 학생복을 주름 잡았다. 같은 검정색이라도 차이가 뚜렷해 엘리트 학생복을 주로 입었던 학교에 스마트 학생복이 등장하면 전학생이거나 먼 데서 온 유학생으로 여겼다. 짝다리 집고 껌 좀 씹었던 학생들이 교복을 두고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지금 같은 봄날이었다.
“너도 엘리트로 바꾸면 안 되겠냐?”
엘리트가 주류인 학교에서 색깔이 튀는 스마트(전학생이었는데 무심한 듯 단정했고 시비조의 말투를 썼다)에게 던진 이 주문은 사실 가벼운 농담에 불과했다. 하지만 엘리트들에게 포위당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가뜩이나 심사가 꼬여 있던 스마트가 이렇게 대응했다.
“엘리트 입는다고 엘리트가 되냐?”
엘리트도 지지 않았다.
“스마트 입어도 똑똑해지지 않는 건 나도 알아.”
가시 돋친 언쟁으로 분위기가 험악해지려는 순간이었다. 옆에 있던 제3의 친구가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너흰 엘리트를 원하냐? 스마트를 원하냐?”
이 질문이 논쟁에 불을 붙였고, 그때부터 (어차피 진짜 싸울 의사는 없었으므로) 이런 대화들이 이어졌다.
“엘리트 되려고 공부하는 거 아닌가?”
“딱 출세 지향주의자답네. 공부는 스마트해지려고 하는 거야.”
“스마트는 수단이고 엘리트는 목적이지.”
“난 반댈세. 엘리트는 선택이고 스마트는 필수야. 스마트한 사람이 반드시 엘리트 코스를 밟는 건 아니거든.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폴러스의 동화로 청소년기의 인기 책이었다) 봤지? 출세 지향주의자들의 말로는 그런 거야. 스마트는 엘리트보다 훨씬 다수가 이룰 수 있고 사회발전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하는 거야.”
“모든 사람, 다수가 엘리트가 될 수도 있지. 안 그래?”
“모두가 엘리트가 된다면 그건 엘리트가 아니지. 엘리트라는 말에는 계급의식이 숨어 있어.”
이후로도 그들의 대화는 제법 길게 이어졌지만 결국 흐지부지 제 갈길을 간 것으로 기억된다.
세월이 마구마구 흘렀고, 그 친구들은 어른이 되었고 자기 일을 가졌고 부모가 되었고 더러는 죽기도 했다.
확인해 보니 엘리트를 꿈꾸던 친구는 엘리트가 되지 못했고, 스마트를 꿈꾸던 친구는 스마트해져 있었다. 스마트가 스마트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코로나에게 도둑맞은 봄, 스마트가 부친상을 치렀다. 유행처럼 번진 ‘조문객 최소화의 예법’과 ‘온라인 부의’로 장례를 마쳤다. 쓸쓸하고 허전했겠다고 위로하자 스마트는 담담하게 말했다.
“앞으로는 이런 문화가 대세가 될 듯해. 3대 장점이 있어.”
스마트가 경험한 ‘코로나형 장례식’의 3대 장점이다.
첫째, 조문객이 적으니 상주들 몸이 편하다. 둘째, 비용이 절약된다. 셋째는 가장 큰 장점으로 ‘부의금 계좌이체'다. 일종의 ‘통합형에서 개별형으로 바뀐’ 접수가 압권이라고 했다. 부의금를 제각각 받으니 모든 비용을 1/N로 처리하게 돼 자식들(이해 관계자들)이 모두 깔끔해 했다는 것이다. 역시 스마트한 해석이다.
그에게 엘리트와 스마트 교복 논쟁을 기억하느냐 물었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자기 혼자 튀는 교복을 입었던 건 기억나지만 그걸 갖고 논쟁까지 벌였다니 쯧쯧, 혀를 찼다. 별걸 다 기억한다고 힐난하며 아재개그를 했다. “요즘은 다 스마트폰을 갖고 사니 스마트가 이겼네.” 그 친구에게 요즘 학생복은 아이비리그가 대세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도둑맞은 봄날의 상주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