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극장에 가고 싶은 날

그리고 영화는 현실이 되었다

by 포포

배우 윤정희가 치매에 걸렸다는 (알츠하이머인가 뭔가 에둘러 표현하는 단어가 있지만 그냥 치매라 하겠다) 뉴스를 들었다. 나이가 몇이지?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고, 나이 들면 병이 생기지 하는 생각이 그 다음에 들었고, 그런데 하필 치매라니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인생 참 얄궂다는 생각이 또 들었고, 젠장 하며 혼잣욕을 그 다음에 하게 됐다.


나는 윤정희가 출연한 영화를 무진장 많이 보며 자랐다. 어느 정도로 많이 봤느냐 하면, 주연이 윤정희라 하면 무조건 봤다는 정도? 그건 택도 없이 부족한 표현이고, 수치로 치면 100편 이상이 확실하다. 현대 감독 중 홍상수 영화를 빠짐없이 봤었는데(거의 100%?), 그 정도는 잽도 안 될 만큼 윤정희 등장 영화는 무조건 봤다. 물론 오랜 전 얘기다. 사는 동안 그녀를 잊었고, 첩첩산중 같은 인생 고개를 넘어가며 그녀의 영화들도 자연스레 잊혀졌다. 뭘 보고 뭘 좋아했는지도 이제는 기억이 희미하다. 치매가 오기 전에 하나하나 기록을 해야겠다.


우리 집 담장 뒤에 극장이 있었다. 그러니까 극장이 내 놀이터였다. 이름도 근사한 문화극장이다. 영화 간판을 그리던 아저씨, 영사기 돌리던 아저씨, 입구에서 표를 받던 기도 아저씨, 매표소에서 표를 팔던 누나는 자주 바뀌었다(요샛말로 알바였나 보다). 직함이 있었다. 미술주임, 영사주임, 기도주임 그리고 김상무라는 덩치 큰 아저씨가 있었다. 윤정희 영화를 빠짐없이 볼 수 있었던 건 그들 덕이었다. 내 집 드나들듯 공짜로 영화를 보다가, 어느 해인가 미성년자 관람불가 단속을 나온 선생님에게 걸려 혼쭐이 났다. 그 뒤부터는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볼 때 선생님에게 안 걸리는 방식을 찾아냈다.


세월이 흘렀다. 윤정희가 16년 만에 영화에 출연했을 때, 감회가 새로웠다. 일단 출연작 <시>의 포스터를 보며 세월을 실감했다. 윤정희의 늙은 얼굴 때문이 아니다(나는 늙어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아는 나이가 됐다). 영화제목 '시' 옆에 詩란 한자 대신 poetry란 영자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같으면 무조건 한자로 의미를 전달했을 텐데 시대가 변했고 시장이 변했고 관객도 변한 것을 느꼈다.


영화에는 김용택 시인이 나와서 시가 무엇인지, 어떻게 시를 쓰는지 가르쳤다. 놀라운 연기였다. 김용택 시인은 영화 속에서도 진짜 시를 썼다. 윤정희는 그에게서 시가 무엇인지를 배우고, 어떻게 쓰는지를 배웠다.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배우고 느끼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사과를 들고 곰곰 생각을 하고, 들판에 앉아 골똘히 관찰을 하고, 손주를 보며 멍을 때리던 배우 윤정희. 그리고 점점, 점점... 기억을 잃어갔다. 영화 속에서 말이다.


그리고 영화는 현실이 되었다. 할머니가 되면 그렇게 되는가. 영화만 그런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게 그렇다, 죽어가는 게 그렇다고 윤정희가 일부러 치매를 찾아가는 중인가. 우리 할머니도 그렇게 기억을 잃으며 돌아가셨다. 어린 손주가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극장을 새까맣게 잊어버렸는데 희한하게도 하춘화 쇼를 봤던 기억은 잃지 않았다.


그때 영화 <시>를 보고 난 뒤 떠올랐다. 내가 왜 윤정희를 좋아했는지.

공짜 영화를 보는 재미에 나를 졸졸 따라다녔던 광수가 따졌었다.

"너는 왜 윤정희만 좋아하냐. 김지미가 더 육감적이고 정윤희가 더 이쁘지 않냐?"

그때 이렇게 대답했던 기억이 훅 살아났다.

"눈이 슬프자나 씨발."


광수의 반응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뒤로 같이 윤정희를 좋아했는지, 닿을 수도 없는 배우들을 놓고 바보처럼 경쟁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그 친구가 광수였는지도 이제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인가. 우리 엄마도 아니고, 옆집 누나도 아니고, 내게 밥 한끼 사준 사람도 아닌데, 그 여자가 치매에 걸렸다는 소식에 눈이 시리다. 도대체 이 감정의 정체는 뭘까. 이런 게 시라고, 영화 <시>에서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젠장, 비가 오니 더욱 문화극장에 가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는 동안 벌을 많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