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친구에게서 연락이 올 때

슬기로운 친구 관계

by 포포

잊고 지냈던 친구에게 연락이 올 때가 있다. 반갑고 미안하고 두렵다. 이름을 듣는 순간 와락 반가움이 밀려들고 추억이 떠오른다. 만만찮은 세상 사느라 잊고 있었던 게 미안하고, 친구가 먼저 연락을 해온 것에 고마워한다. 그런데 왜 갑자기 연락을 해왔을까? 통 소식 없다가 갑자기 연락해온 이유가 뭘까? 어림잡으면서 은근 두려움도 생긴다.

반대로 내가 친구를 찾을 때도 그렇다. 무작정 친구가 그리울 때도 있지만 아쉬운 게 있어서 뭔가 도움을 받자고 찾을 때는 참 민망하다.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우리 형제들은 어느 병원으로 갈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논의 끝에 한 병원이 정해졌다. S병원으로 가기로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형의 친구가 원무과장이라는 데 있었다. 적잖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실로 막연한 기대가 있었고 그러자 다른 이유들이 모두 합리화되었다. 병원의 이미지, 전문성, 서비스, 자식들 집과의 거리 등등 모든 것이 제일 낫다고 결론 지어 버렸다.


형이 친구에게 전화를 했고 와서 입원절차를 밟으라는 답을 얻었다. 갑자기 형이 위대해 보였다. 아버지의 암도 별 것 아닌 듯이 느껴졌고 금세 낫기라도 할 것처럼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입원 수속을 밟은 뒤, (위대한) 형과 형의 (위대한) 친구와 차 한잔을 마셨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고, 병원이 어떻고, 암이 어떻고, 이러저러 대화를 나누는데 형의 친구가 말했다.

"통 연락 없던 친구한테 전화가 오면 반갑고 기뻐야 하는데... 나는 그런 경우가 없어."

???

"집안에 환자가 생겼을 때거든. 나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늘 우울한 표정으로 걱정스런 대화만 하고 살아."


이런, 민망하고 무안하고 미안해졌다. 원무과장이라 해도 사실 해줄 게 달리 없다고, 모든 것이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자기가 조금 더 마음을 써주는 것 정도라고, 결국은 환자가 이겨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하늘을 쳐다보고 미소만 지었다. 고맙다는 말조차 건네기 민망한.... 병원 뒤 산기슭 단풍이 유난히 빨갰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을 할 때는 좋은 일을 가지고 해야겠다고 그날 이후 생각했다.


며칠 뒤 아버지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비교적 씩씩하게 "다녀오마" 하고 이동 침대에 누우셨다.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대기실에서 경과를 알리는 전광판을 보고 있는데 형의 친구가 찾아왔다. 긴장감을 달래주려는 듯 집도의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다.

"어제 일찍 퇴근하시더라. 큰 수술이 있을 때는 일찍 퇴근해서 컨디션을 조절하거든."

형의 친구는 담담하게 지나는 말로 얘기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놀라운 '정보'였다. (요즘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그 시절의 병원이 오버랩되곤 한다.)

"걱정 안 할 수는 없겠지만 편하게 마음먹어. 다 잘될 거야."


형의 어깨를 토닥이며 건네는 말이 새삼 위안이 되었다. 정말 잘 될 것 같고 걱정이 안 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듯했다. 얼마 뒤 수술이 끝나고 의사가 나와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첫마디는 "수술 잘 끝났습니다"였고 이러저러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설명을 들으며 의사가 위대해 보였고 형의 친구가 마치 예언가처럼 느껴졌다.


몇 년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우리는 오랫동안 드나들던 병원을 떠나면서 담당 의사들에게 부음을 전하고 작으나마 선물을 했다(정말 잘한 행동이었다). 병원 관련 드라마를 볼 때마다 그 시절이 떠오르고 코로나19 사태 동안에는 더욱 '좋은 의사들 참 많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종종 형의 친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회상도 한다. 말만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알려준 형의 친구. 즐거운 일로 친구를 만나며 살기를... 조심스레 남의 인생을 가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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