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 유명인은 다르다
‘피아골미선씨’에게 배움
지리산에 가고 싶은 계절이다. 구례-하동을 잇는 섬진강 길은 우리나라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드라이브 코스. 낭만 관광지로서 섬진강 길도 좋지만 나는 피아골 미선씨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 더 좋다. 미선씨는 피아골의 스타다. 얼마간 전국적 유명세를 탔지만 지금은 아는 이들만 아는 (그러나 여전히) 스타다.
피아골은 구례-하동을 잇는 섬진강 길 중간쯤에 있고 미선씨는 피아골 제일 끝마을(가장 위쪽 마을)에 산다. 그곳은 완벽한 산골, 여기에서 나고 자라고 살고 있는 미선씨는 이제 30대 초반이 됐다. 미선씨가 유명해진 것은 2014년 KBS <인간극장>에서 ‘피아골 처녀이장 미선씨’를 방영한 뒤다. 20대 처녀 이장의 맹활약이 방송에 소개되고 난 뒤 그녀는 졸지에 스타가 됐다.
피아골미선씨는 식품 브랜드이면서 지리산피아골영농조합법인 김미선 대표의 닉네임이다. 이 회사에서 파는 상품은 지리산에서 채취한 고로쇠. 고로쇠로 담근 장류들이다. 그런 식품들이 미선씨를 스타로 만들었을까? 아니다. 최연소 처녀이장이란 직함이 미선씨를 스타로 만들었을까? 그것도 아니다.
미선씨가 스타가 된 배경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구분하고 싶은 게 있다. 스타와 유명인의 차이다. 스타는 말 그대로 별, '별 같은', '빛나는' 존재다. 유명인은 말 그대로 유명한, '널리 알려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무슨 차이일까. 요즘 갑자기 유명해지는 유튜버들이 많은데 비교하기 딱 좋다. 유명한 유튜버는 많지만 별처럼 빛나는 유튜버는 찾기 힘들다.
더 구체적으로, 스타(star, 별 외의 의미로서)에 대한 간단정의를 해보자.
(국어사전) 스타 : 1. 인기를 얻고 있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2. 장성(將星)이나 그 계급을 속되게 이르는 말
(나무위키) 스타 : 어떠한 분야에서 크게 유명하여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는 사람.
뭔가 설명이 부족하다. 유명인과 스타의 차이를 구분짓는 확실한 기준은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을 만큼의 무엇이 있어야 한다. 무엇일까. 무엇은 '존경받을 만한 가치'이고 그것이 그(스타)의 삶을 관통하고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제 아무리 유명해도 존경받을 가치가 없으면 스타라 할 수 없다. 오바마는 스타 대통령으로 인정하지만 트럼프와 아베는 스타로 인정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분명 운이 따라야 한다. 듣보잡의 실력도 필요하다. 여기에 더 필요한 것들이 있다. 스토리, 삶의 철학, 시대정신과의 조화 그리고 대중들이 본받고 싶을 만한 가치가 구비되어야 명실상부 스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미선씨 얘기로 돌아가자.
미선씨네 마을은 구례군 내동면 섬진강변 초입에서 산길로 10km 이상 들어가는 가장 꼭대기 동네다. 50여 가구가 자리잡은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IMF 사태가 왔을 때, 지금(코로나19 사태)처럼 관광객이 끊기고 생업이 위태로웠다. 피아골 주민들은 날마다 갈등과 분쟁을 했다. 전국에서 가장 민원이 많은 지역이었다. 분쟁 다툼이 하도 많아 관공서에서는 ‘피아골 것들’이라고 손가락질했다.
미선씨는 당시 아이들과 함께 이런 약속을 했다. 우리가 어른이 되면 저렇게 싸우지 말고 서로 도와가며 살자. 그리고 어른이 되어 갔다. 같이 자란 아이들 하나둘 피아골을 떠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피아골로 돌아온 아이는 미선씨가 유일했다. 어렸을 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물론 갈데 없고 출세길이 막혀 피아골로 올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그런 구설수가 없지도 않았다.
하지만 진실은 나중에 드러난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과거를 규정한다. 돌아온 미선씨는 부모님과 함께 어렸을 때부터 만들어오던 고로쇠 된장을 만들어 팔았다. 미선씨는 고로쇠 된장의 세계 최고 전문가다. 미선씨가 부모님의 업을 물려받아 본격적인 사업을 개시했을 때 -7억이라는 빚이 있었다. 미선씨는 '좋은 된장, 비싸게 팔테닷!' 이라는 구호로 사업을 펼쳐 나갔다.
그 다음 미선씨는 '같이 잘 살자'는 생각으로 마을 어른들과 소통해 나갔다. 처녀 이장이 된 배경이다. 마을 사람들이 생산한 상품(산나물, 가공식품류, 관광용품)들을 미선씨가 도맡아 (수수료 없이) 팔아주었다. 피아골 어른들은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꼬맹이가 이장이 되어 이리저리 뛰어다니니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었고 점차 그 꼬맹이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마을은 진정한 공동 운명체로 바뀌어 갔다.
피아골은 전국에서 가장 분쟁이 없는 마을이 되었다. 마을 전체적으로 소득이 늘어났으며 지자체에서 선정한 각종 지원사업의 혜택도 받고 있다. 미선씨가 어렸을 때 했던 약속이 이루어졌고 여전히 지키고 있는 셈이다. (고로쇠와 고로쇠 장류의 판매는 놀랍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으로 수출되는 고로쇠는 프랑스의 에비앙보다 6~7배 높은 가격을 받는다.)
물론 모든 사업은 위기를 겪는다. 코로나19 사태가 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미선씨와 함께 의기투합했던 친구, 동생들이 있다. 모두 예쁜 처녀들이다. 이들이 언제까지 같이 갈지 알 수도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룬, 앞으로 해나갈 계획들을 보면 '진짜 스타'란 이런 사람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유명해지는 것, 생각보다 쉽다. 스타가 되기는 어렵다.
지난 3월 코로나19 사태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미선씨는 탑차를 몰고 대구에 다녀왔다. 탑차에 꽉 채운 고로쇠 수액 3300개를 대구 의료진에 기부하고 온 것이다. 피아골도 관광객은 뚝 끊기고 수입은 반토막이 났지만 어려움은 지나가는 것이라고 미선씨는 믿는다. 내가 어려울 때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있는 것 아니냐며 혼자 차를 몰고 대구로 간 미선씨. 스타를 꿈꾸는 이들이 있다면 그런 마음씀을 배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