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계획이 있다

전쟁이 끝난 뒤

by 포포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다.'

요즘 자주 듣는 말이다. 이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란다. 살면서 들은 말 가운데 가장 위협적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이나 듣는 이나 표정이 밝다. 전쟁 중에… 술 마시고 노래하고 여행 다니며 산책하고 운동하고 출퇴근한다. 그것도 놀라운데 돈까지 주며 어서 쓰라고 권한다. 쉽게 끝나지 않을 전쟁이기 때문에 경제를 돌리고 서로를 격려하는 전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전쟁은 세계가 뒤엉켜 치고받던 1차, 2차 세계대전 때보다 훨씬 큰 전쟁이라고 한다. 와우!

이쯤 되면 목을 한번 만져보고 심장이 잘 있는지 살펴볼 일인데 그런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조금 궁금해졌다.


우선,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위협이 적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다른 나라들은 지금까지 세계 선두권을 달려온 강자들, 우리가 늘 부러워하고 시샘하고 모방하던 나라들이다. 그들보다 비교우위에 선 기분이니 표정이 나쁠 리 없다.

두 번째는 특유의 낙관적 기질을 들고 싶다. 음주가무를 즐겨온 민족 전통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까지 치른 전쟁 실적이 미래를 더 낙관하게 만드는 듯하다.

세 번째는 돈이다. 내일은 어찌 될지 몰라도 오늘 쓸 돈을 나라에서 내주었으니 기분이 나쁘다면 성인군자다. 돈을 쓰는 게 남을 위한 길이 되고 애국이 된다니 더 기분이 좋다.

그 밖에도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지상 최대의 전쟁을 치르면서도 웃을 수 있는 이유들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전쟁이기 때문에 전투 역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한다고, 장수들은 말한다. 끝내 승전으로 귀결되길 바란다.


전쟁은 판을 바꾸는 소용돌이이기도 하다.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나라별로 주도 세력의 변화가 일어나고, 사람들의 가치관이 바뀌면서 일상혁신이 일어난다. 현재의 세계질서와 우리의 국가 체제도 2차 세계대전의 결과물이고, 6.25 전쟁의 결과물이다.


전쟁은 시장의 판도도 바꾼다. 전쟁 전과 후의 주도 상품이 바뀌고 그것을 이끌어가는 상인과 기업의 구도도 바뀐다. 플라스틱, 인터넷, 로봇, GPS… 모두 2차 세계대전이 만들어낸 상품들이다.

일상을 지배하는 먹거리 상품도 전쟁이 바꿔 놓는다. 세계대전 이후 지구 최대의 히트상품으로 군림해온 코카콜라는 전쟁 중 군인들에게 보급되던 자양강장 음료였다. 세계 인류가 싼값으로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각종 간식들(감자칩, 초컬릿, 유분형 건조식품들, 스팸류)도 전쟁 기간 중 개발된 군대 식품이었다. 미래식품의 대세로 뜨고 있는 가정간편식(HMR)의 원조도 전투식량이다.

전쟁이 질서를 재편시키는 이유는 승자와 패자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승자에 의한 질서 재편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전쟁 때 신기술, 신상품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위기에 대한 대처가 긴박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기느냐, 지느냐가 곧 죽느냐, 사느냐이기 때문에 평상시 고려하던 효율성, 통계, 단계적 계획, 실험과 검증을 할 겨를이 없다. 매순간의 선택이 모험이고 벤처이고 투자 또는 투기가 된다. 그리하여 최종 승리자가 되는 이들만 이 말을 할 수 있다. “우리에겐 계획이 있었다.”

우리가 이 말의 주인공이 되면 좋겠다. 가능성이 은근히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그 주인공이 된다면, 졸지에 강국으로 부상한다면... 어떤 졸부나 과거의 졸부국들과는 차원이 다른 국가가 되기를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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