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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포 매거진 Dec 08. 2021

퇴사해도 뭐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지

OMG! 스탑 버튼일 줄이야

아이의 생물학적 엄마로 살고 싶지 않다. 퇴사를 결심한 이유였다. 

주말부부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있는 지역에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새벽이면 서울행 KTX에 몸을 구겨 넣고 쪽잠을 잤다. 이직한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촬영 때문에 늘 피곤하고 감기를 달고 살았다. 출근길이면 늪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컨디션이 난조여도 일 때문이리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임신 사실을 알고 아이와 일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1. 친정에서 아이를 키우며 월급을 시터 이모님께 고스란히 이체하더라도 계속 일한다.

2. 일을 그만두고 지역으로 내려가 아이를 키운다.

돌이켜 보면 선택지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연애시절과 별 다를 것 없는 주말부부의 삶을 청산하고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갈증과 정신없이 달려오기만 했던 일에서 '잠시' 벗어나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공백의 '잠시'라는 표현이 얼마나 주관적인 바람이었는지 그 때는 알지 못했다.


"퇴사하겠습니다"라는 통보에 

"유미님 다시 일 안하실 거예요?"라는 상무님의 질문에 담겨있던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존재도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야 자각하게 되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설렘과  그저 아이 좀 키우고 다시 일할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함으로 나는 호기롭게 퇴사를 선언했다. 갑작스런 퇴사로 공백이 발생할 프로젝트의 일부를 프리랜서로 이어가면서 근무지만 회사에서 집으로 바뀌었을 뿐 일상의 큰 변화는 체감하지 못했다. 촬영이 있을 때는 서울을 오가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예상은 늘 빗나가기 마련이지만 몇 개월이면 끝날 거라 생각했던 프로젝트는 아이가 태어나고 조리원 생활에 적응할 무렵에서야 종료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회사생활과 서울생활의 종지부가 될지도 모른다는 현실에 대한 감각이 올라온 것일까. 어차피 인수인계를 해도 이슈가 터질 때마다 새로운 담당자로부터 전화와 메일이 날아 들어 올 것이라는 경험치 때문이었을까. 무탈하게 이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엄마라는 세상으로 마음 편히 풍덩 뛰어들고 싶었다. 


퇴사는 일시정지 상태일 뿐이라 생각했다. 그 일시정지 버튼도 시간이 지속되면 풀려 결국에는 스탑된다는 걸 까먹고 있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흘러나오던 최신 유행가를 녹음한다고 카세트 테이프 A면 B면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난리법석을 치던 라디오 키드였으면서 언제라도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를 수 있다고 착각했다. 


희뿌옇기만 하던 육아의 세계에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이전의 세계에 작별을 고하는 심정이었다. 여전히 잘은 모르겠지만 내 선택으로 무엇이던 할 수 있었던 삶과는 안녕이겠구나 하는 본능이 스멀스멀 퍼져나갔다.


전 세계의 놀이공원에서 가장 무섭다는 롤러코스터는 다 타보는 것이 버킷리스트였던 근자감이 화근이었다. 하강할 때면 심장을 허공에 두고 추락한 것처럼 오싹해도 롤러코스터의 경사가 급격하게 벌어질수록 짜릿함은 배가 되었으니까. 다리는 후들거려도 웃으면서 내리는 사람만이 아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 무엇이던 할 수 있다라는 패기의 단면에는 무지와 무식이 빚어낸 상상의 세계가 존재했음을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육아라는 롤러코스터의 출구는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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