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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포 매거진 Dec 08. 2021

왜 결혼이주여성이야?

엄마를 돌보는 것이 곧 아이를 돌보는 것이다

"6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결혼이주여성입니다."라고 소개하면

'한국말을 잘하는 아시아 이민자인가?'라는 눈초리가 느껴져

"한국사람인데 결혼으로 이주하게 되었어요."라는 부연설명을 더하곤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지역에 결혼이주여성이 그렇게 많아요?"

"왜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었어요?"가 이어졌다.


딱히 태교에 공을 들이진 못했어도 육아서를 읽어가며 태담도 하고 그림책도 읽어주었건만

아이는 그야말로 극강의 예민보스였다.

등이 무언가와 닿는 순간 울기 시작했고 백일의 기적은 커녕 백일의 기절을 선사했다.

두시간 이상 자지 않는 아이를 안고 창밖을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작은 다리에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지나가는 차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제대로 푹 자지 못해 반쯤은 기면 상태로 낮과 밤을 보내는 동안 부유물질처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고문 중에 최고봉은 잠고문이라더니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눈으로는 분주히 창문 너머로 흘러가는 구름과 움직이는 자동차를 쫓았다.


일과의 상당부분이 창문 너머의 일상을 관찰하는 것이었음에도 멀리서 보는 것과 현실은 달랐다.

다리 너머로 보이는 비닐하우스와 밭은 매일 보는 풍경이었지만 사람까지 보기에는 먼 거리였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다리 건너 어린이집의 이야기를 듣게 된 건 우연이었다.


엄마가 동 틀 무렵 밭을 매러 나가면 어린이집에 제일 먼저 출근해 해가 지고 나서야 마지막으로 집에 간다는 아이의 이야기였다. 처음 어린이집이라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이들은 여름이면 수족구 겨울이면 감기처럼 유행하는 각종 질병을 골고루 겪는 터라 그 시기의 일상은 어린이집 끝나면 바로 소아과로 직행하는 게 코스였다. 하원시간 전에 어린이집에서 전화오는 게 가장 두려울 만큼 소소한 기침부터 짧게는 일주일 이상의 격리를 요하는 수족구 같은 전염병을 달고 사는 게 일상이 되었다. 엄마가 바로 아이를 데리러 올 수 없기에 어린이집 낮잠 시간에 엄마 대신 담임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아이를 걱정했다.


물론 나도 그랬다.

아이가 아프면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엄마의 본능이다.

그러나 당황스러웠던 건 '아이만' 염려한다는 지점이었다.

아무도 그 아이의 엄마에 대해 걱정하거나 궁금해하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분명 먼 타국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한국에 왔을 젊은 여성이다.

실제로 국내에 거주하는 결혼이주여성들 중에 상당수는 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았거나 직업을 가진 여성인 경우가 많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가족을 위해 아이를 위해 동이 틀 무렵부터 질 때까지 밭을 갈았을 것이다. 폭염에도 날이 궂은 날에도 돌보는 이가 없으면 바로 표가 나는 것이 땅을 가꾸는 일이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교육을 받고 보살핌을 받는다. 아이를 관찰하고 돌보는 숙련된 전문가들 속에 양육될 것이다. 


"그럼 엄마는?" 

아무도 그녀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연고가 없는 낯선 지역에 살면서 나에게 이곳은 '말만 통하는 외국'이었다. 물론 이곳에서도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추억을 쌓으며 가까이 계신 시부모님의 도움도 받고 있는데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엄마로서의 역할만 잘 하기도 어렵지만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의 늪에서 매일 요동쳤다. 미디어에서 그리는 자식을 위해 모든 희생하는 강인한 엄마가 되어야 할까? 그게 과연 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상의 분주함 가운데 찰나의 여유가 생기면 이런 고민들은 그 빈틈을 파고들어 머릿속을 엉클어놨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내면은 바스라지고 있었던 그 시기에 나는 다리 건너의 엄마가 궁금해졌다.


같은 언어와 문화를 써도 때론 당황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다름'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데 다른 언어와 문화권에서 온 여성들은 얼마나 힘들까. 그녀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시작이었다. 


2019년 만우절. 포포포라는 이름으로 가장 먼저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프로그램 <그림과 치유>를 시작한 것에는 이런 비하인드가 있었다. 언어를 초월해 공감할 수 있는 그림책으로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초보자도 두시간이면 완성할 수 있는 수세미 뜨개 수업을 통해 성취감이라는 잊고 있던 자신감 한 스푼을 가져가셨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그림책 수업을 들으며 알게 된 또 다른 엄마들 뿐인 상황에서 얼굴 몇 번 본 게 전부인 이들에게 뜬금없이 전화를 걸었다. "이런 봉사 프로그램을 해보려고 하는데 함께 해주실 수 있나요?" 


엄마는 누군가를 보살피는 것에 최적화 되어버린 존재다. 영어 그림책 수업을 이끌어 온 지현 선생님은 지역 곳곳을 누비며 크고 작은 도서관에서 만난 엄마들을 모았다. 뜨개 봉사 동아리를 오랫동안 이끌어 온 효주 선생님은 뜨개 어벤져스 군단을 선발했다. 아이셋을 키우며 영어 그림책의 세계로 자신의 재능을 나워온 동희 선생님은 매 수업마다 보석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림책을 선별해 수업의 포문을 열었다.


내가 가진 재능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누군가를 위해 그런 마음을 내어줄 수 있다는 것이 '엄마력'이라 생각한다. 내가 낳은 아이라 할지라도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감내하는 것에 익숙해져 자신을 돌볼 줄 모른다는 것이 아픈 지점일 뿐이다. 그 엄마들을 위한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던 건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해준 또 다른 엄마들 덕분이었다.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함께라면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 서로의 역할에 맡은 바 최선을 다하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고 그것이 쌓이면 불가능해 보이던 일들이 가능해 진다는 것을 경험했다. 


햇수로 3년차.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고민은 더욱 깊어져 간다. 엄마도 배움과 성장의 기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정작 나를 돌보는 것은 잊은 엄마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엄마를 돌보는 것이 아이를 돌보는 것임을 어떻게 확산 시킬 수 있을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우리는 그 고민과 여정을 책으로 기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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