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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포 매거진 Feb 20. 2024

딸을 통해 돌아보는 관계


두 아이가 ‘3주 방학 기간’을 보내고 다시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첫째는 교우관계에 대한 말이 대체로 없는 편이다. 둘째는 학교에만 다녀오면 A 때문에 속상했고, B 때문에 화가 났고, C 때문에 좋았다고 얘기한다. 그러다 그다음 날은 C 때문에 속상했고, A와 B 때문에 행복했다고 한다. 딸에게 있어 관계 날씨는 한마디로 변화무쌍이다. 그러다 문득 나 또한 우간다에서 겪은 관계의 힘듦에 대한 일들이 떠올랐다. 


“엄마! 내일 할머니가 사준 반지, 친구들에게 줄까?”

뭐든 준다고 해서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기만 하는 마음에도 언젠가는 유통기한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싶은- 그런 관계가 있었다. 상대는 받는 것에 익숙하게 되었고, 무언가를 기대하고 준 마음이 아니었는데 결국 나도 상대의 마음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또한 같은 마음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날에는 스스로 상처를 주워 담아 온 것도 모자라 소설 한 편을 써 내려가고는 했었다. 그래서 딸에게 단호하게 얘기했다. “주는 것으로 잠시 친구의 관심을 받을 수는 있지. 그런데 그 마음까지 받기란 쉽지 않아. 너는 그 마음을 얻기 위해 또 무언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거야. 이 반지들은 할머니가 너에게 사준 거야. 할머니 마음을 헤아렸으면 좋겠어.” 


“오늘, 친구들 오라고 해서 같이 밥 먹으면 안 돼?”

당장, 그리고 오늘이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무리수를 둬서라도 관계를 가지려 애썼던 관계가 생각났다. 오늘 당장의 현상만으로도 관계를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참으로 혹독하게 관계의 아픔을 겪었던 때였다. 우선 나와 상대의 관계 속도가 달랐다. ‘1센티미터의 가까워짐’은 나에게 있어 관계의 지면이 꽤 넓어진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딱 1센티미터였다. 서두를 것도 내 편이라 쉬이 단정할 것도, 그래서 아이에게는 오늘만 날이 아니라고 서로가 좋은 날에 같이 꼭 밥을 먹자고 약속했다.



“자기가 살던 나라로 갔어. 그 친구가 돌아오면 좋겠어.”

만남이 있으면 헤어지는 것도 당연한 거다. 8년 우간다 생활에 참 많은 이들과 안녕을 했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관계라는 물’이 한곳에 고이지 않고 흘러가도록 두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딸아이처럼 이미 가버린 관계만 붙잡느라, 떠나보내고 한 달은 언제나 우울모드였다. 그리고 새롭게 닿은 누군가를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어 밀어내기에 열심을 내다 결국 새로운 인연과는 저만치 멀어졌고 서먹서먹한 채로 몇 년을 이어오는 관계도 발생했다. 딸에게 어떤 말을 해주는 게 좋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좋아하니까 그리울 수 있는 것이기에, 그리워하는 지금의 마음도 배울 수 있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놓고 새롭게 닿는 관계에 대해 보다 단단하게 반응할 수 있다면 좋겠노라고 기도했다. 


“정말 행복한 날이야. 여기서 친구를 만나다니…”

생각지도 않은 날과 장소에서 보고팠던 얼굴과 마주하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딸은 “행복하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내뱉는다. 관계에 질량이 중요하다 여겨지는 순간이다. 해외 생활 1, 2년 차에 나는 나와 친한 누구, 좀 가까운 누구, 잘 아는 누구 등 거리로 관계의 순위를 매기고는 했었다. 지금도 그 거리대로 관계를 줄 세운다면? 당연히 ‘No'. 이미 곁을 떠난 사람도 있다. 


줌으로만 인사했을 뿐 한 차례의 대면도 없는 이들과 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정반대되는 곳에 사는 어떤 이와는 언제나 옆에 있는 것 같은 평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것을 볼 때 관계는 거리를 위한 사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날 어느 장소에서 만나 주어진 시간 동안 충분히 무게감이 더해졌다면 딸아이가 고백했듯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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