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이혼을 해봤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에 대하여(2)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싸움이 있을 때마다 중재자의 역할을 했었다.
두 분이서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은 기류가 흐르면 눈치를 보면서 내가 필요한 틈을 기다렸다.
감정이 격해지고 서로 언성이 높아지면 내가 기습공격을 하며 분위기를 바꾼다.
그리고 엄마, 아빠 각각 개인면담에 들어간다.
아빠는 뭐가 문제야? 지금 어떤 상황이야?
엄마는 뭐가 문제야? 지금 어떤 상황이야?
각자의 입장을 듣고 나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중립의 결과를 낸다.
그 어린 시절의 내가 하는 말이 먹힐 리가 없었지만 그때의 나는 내 나름 최선을 다해 발버둥을 치는 행위였다.
그렇게 하는 내 행동이 귀엽게 보여서 상황이 쉽게 종결된 적도 몇 번 있던 탓에 나는 그걸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사춘기가 되어 어른의 흉내를 내며, 어른스럽다. 대견하다는 말을 들으며 내가 진짜 어른인 마냥 기고만장해서 다녔다.
아버지랑 사이가 좀 더 좋았던 나는 그날도 아버지가 대화를 요청하셨다.
그날의 주제는 어머니와 이혼하고 싶은 아버지의 속마음
짧으면 짧다 할 수 있는 세월을 살았지만 그때의 솔직히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는 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아니, 차라리 각자의 삶을 살아가시는 게 서로 좋을 거라고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었던걸 지도 모른다.
아버지 본인은 이혼을 하고 싶은 상황인데 자식들이 원하지 않으면 더 기다릴 의향도 있다며
아주 진중한 태도로 물어보셨다.
정확하게 잘 기억나지도 않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중립을 지키겠다며 내 나름의 답변을 드렸다.
‘여태까지 잘 키워 주시느라 본인의 삶을 못 사셨으니, 이제라도 살고 싶은 대로 사세요’라고. 아주 어른스럽고 의젓하게.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나에게 복채라도 지불할 것처럼 만족감을 보이며 편안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는 것만 기억난다.
내게 “네가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맙다. 이제 시원하게 결론을 낼 수 있을 거 같다.”라는 말을 잊지 않으시며.
돌이켜보면 아빠에게 나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본인이 이혼을 하고 싶지만 그럴 자신은 없었던 것일까.
왜 사랑했던 남녀 둘이서 정했던 일을 자식에게 물어본 걸까.
지금 와서는 아버지가 내게 물어봤던 그 행동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여전히 이해가 안 되기도 한다.
세상 그 어디에도 정확한 답은 없겠지만.
한 가지 궁금한 점은 만약 내가 그때 다른 대답을 했다면 과연 결과값이 달라졌을까? 하는 것이다.
그때 나의 감정은 마치 ‘와.. 이거 내가 결혼은 안 해봤는데 이혼을 해보네... 뭐지?’였다.
두 분의 결혼에 내 의사는 없었지만, 이혼에는 내 의사가 가득 담긴. 마치 내가 직접 이혼을 한듯한.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기괴한 경험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부모 이혼을 장려한, 아니 참여한 천하의 몹쓸 자식이 되어
대역 죄인처럼 주기적으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이후로 여러 갖가지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했던 경험 중 하나는
아버지가 일이 뭔가 뜻대로 잘 풀리지 않자 한강에서 뛰어내리겠다며 집을 나가셨고
남은 가족들은 그 아버지가 설마 정말 그럴까 싶어 경찰에 신고했다가 집에 경찰관분들이 방문하시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
위치추적을 했는데 한강이 아니라 여자친구에게로 가신 걸로 확인되어 이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너무도 헷갈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