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발행일자를 변경하려다가 잘못 눌러서 이틀로 늘어났다. 그런김에 하나를 더 써보는 감정일기.
대학교 때의 일이다. 그때 꽤 따르던 선배가 있었는데 술자리에서 나한테 “너는 추친력은 정말 좋은데 끈기가 부족해.”라고 지나가듯이 말했었다. 이게 왜인지 모르게 내 뇌리에 박혀서 “나는 끈기가 없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한 사람이 내게 끈기를 키워야 한다고 말해서 나는 “아.. 내가 정말 끈기가 지지리도 없구나.”라고 못을 박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몇몇 사람들이 뭔데 내 끈기력을 판단해?라고 반박하고도 남았겠지만, 그때는 선배, 가까운 지인이 했던 말이 커다란 바위 같은 무게로 형벌처럼 떨어졌던 것 같다. 그렇게 졸업하고도 본인 스스로가 끈기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살았다. 뭔가 일을 하다가도 잘 안 풀리면 “역시 내가 끈기가 부족해서 그래”라고 말했다. 사실 그 말 한마디는 [부족한 경험, 잘못 짜여진 계획, 다양한 상황들]은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이유들을 다 뭉텅 그려서 입다물게 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그렇게 포기한 것들이 쌓이다 보니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이미 마음속에서부터 자신을 ‘뭘 해도 끈기가 부족해서 끝에 가서는 마무리를 못할 사람’으로 여겼으니까.
상담선생님과 생활 패턴, 습관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끈기'라는 것으로 주제가 넘어가게 되었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 입은 버릇처럼 "선생님 저는 끈기가 부족한 사람이라서요."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배우가 글자 한 톨도 틀리지 않기 위해서 몇백 번을 암기한 것처럼 툭치면 너무 자연스럽게 나오는 문장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왜 본인이 끈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반문하셨고 나는 당연한 것을 왜 질문하냐는 표정으로 "그야 저는 뭐든 한다고 해도 끝을 잘 못 보니까요." 라고 바로 지지 않고 대답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공감이 안된다는 표정으로 "제가 지금까지 대화한 내용은 전혀 끈기가 없어 보이지 않는데요?" 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내가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삶의 기본값들이 곧 끈기의 증거였음을 지금까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결괏값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핑계를 댈 만한 구실이 있어야 하니 '끈기가 없다'라는 말로 항상 한 발을 빼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가 좋으면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싶었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저 멀리로 숨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한다'라는 말을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내 한계가 드러나는 것 같았으니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삶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연히 주기적으로 운동을 가야 했고, 언어공부도 회사에서 필요하니 당연히 해야 했고(그런데 욕심 때문에 더 불태웠고), 업무에 관련된 프로그램도 업무 능률을 오르게 해 주니 당연히 주말을 반납하고 배워야 하는 거였다. 그런 당연한 것들이 쌓여서 결국 내가 만들어지는 건데 그냥 무시하고 살았다. 적절한 인정과 발전의 정도를 파악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했는데 그걸 놓쳤다. 그러니 잘하고 있으면서도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이건 당연한 것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항상 욕심을 채우기는 한참 모자랐으며 계속 새로운 과제들이 나를 자극했다. 깨져버린 물컵에 계속 물을 붓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무기력과 싸웠다. 연차가 쌓일수록 기본값으로 두는 일들이 하나둘씩 늘어났고 다 끌고 가고 싶다는 생각에 나를 더 갈아 넣었다. 여기에서 내가 놓친 부분은 당연함의 오류다. 과거에는 당연했지만 지금은 당연하지 않게 되는 일들도 있다는 걸 몰랐다. 삶에 공백이 생기는 순간부터 진짜 내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지는 건데 오더를 받는 일에만 익숙해져서 늘 하고 싶다고 말했었던 일들은 저 멀리 내동댕이치고 회사일에만 더 몰두했다. 연차만 쌓였지 생각은 입사 초기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일 잘하는 직장인의 마인드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최근에 아버지랑 전화를 했다. 아버지도 그 나름대로의 삶이 굉장히 굴곡 있는 분이라 여전히 존경할 수밖에 없는 분이다. 다만 서로 살가운 성격이 아니라 평균 통화시간은 5분 내외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버지랑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정말 말이 잘 통하는데 이번에도 그런 주제로 대화를 했다. 아버지는 삶에 본인만의 가이드라인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하셨다. 언제까지 이루겠다는 목표가 없이 계속 자기 계발과 발전을 하는 건 끝이 없는 싸움일 뿐이라고 하셨는데 약간 멍한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잘하고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척 만 하고 있었던 거다. 왜 열심히 하는데 지치기만 할까.라는 생각을 했을 때 운동을 생각해 보니 쉽게 답이 나왔다. 운동을 할 때도 정해진 시간이 없으면 운동이 아닌 노동이다. 내가 회사를 떠나서 내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한 것도 마음만 몇 년째 먹고 있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 건 성과가 미미하다. 언제까지 해내보겠다는 목표가 있어야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번아웃이 오는 사람들은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의미 없는 일까지 혼자서 다 끌고 가다가 결국 끝에서 터지고 마는 것이다. 회사에서 업무를 할 때조차 마감기한에 맞추기를 목숨같이 지키면서 내 목표는 마감 없는 끝없는 터널처럼 암흑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하고, 발버둥 치는데도 숨이 막혔던 거다. 엄한 곳까지 에너지를 쏟고 있었기 때문에.
최근에 중국어 비즈니스 회화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잘하는 편이었지만 객관적으로 놓고 봤을 땐 아직도 실력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서 소통하고 싶었다. 지금은 바로 회사를 나올 수는 없기에 여기에서 내가 발전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총 동원해서 스스로를 성장시켜야 했다. 그 첫 번째 단추가 언어공부다.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언어 실력이 아닌, 내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고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무조건 배울 가치가 있다. 같은 조건의 사람이라도 본인들의 언어를 구사하는지, 못하는지에 따라서 친밀도를 비롯해 사업적으로도 긴장하고 내 물건들을 보게 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중국은 나라가 커서 그런지 몰라도 좋은 분들도 많지만, 그 외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업 아이템을 구상할 친구를 찾는 일이다. 최근에 알게 된 대표님이 딱 적합한 분이셔서 소소한 작업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아이템들을 비슷하게 구상 중이셔서 놀랐다. 그분은 언제 카톡을 하던지 "일중이어서요.."라고 하시는데, 눈빛을 보면 본인이 하는 일에 재미있어서 미쳐있는 느낌이라 나쁘지 않다. 이런 과정들이 힘들다면 참 고된 일이다. 그래도 내 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변함이 없다. 요즘은 내가 회사에서 투자받았던 것들을 새로운 분께 열심히 전달해 주는 중이다. 회사의 입장에서도 본인을 성장시키고 발전하는 직원이지만 언젠가 본인의 일을 할 사람이 썩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몸을 담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할 것임으로.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끼고 밖을 나갈 땐 뿌옇게 보이는 세상에 약간 답답함을 느낀다. 길을 헤매는 상황에서 핸드폰이 지도도 안 켜진다면 더 긴장이 될 것이다. 지금 내 인생도 변해버린 시력을 파악하고 새로운 안경을 맞출 때가 된 것이다. 고리타분한 낡은 핸드폰도 길 찾기가 되는 신형으로 바꿔줘야 한다. 성장을 미친 듯이 하다가도 넘칠 때는 그릇을 옮겨서 넓은 곳으로 이동을 해야만 한다. 다시 시작하는 것 같겠지만 분명 레벨은 달라져 있으니. 앞으로 맞이할 힘듦에도 그 안에 즐거움은 반드시 존재한다.
상담을 통해서 내가 몰랐던 나를 알게 된다. 정말 당연하고 사소한 건데도 타인의 입에서 듣게 되면 조금 더 생소하다. 올해 상담은 앞으로 한 번밖에 안 남았지만, 종종 선생님을 찾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