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중요성
가끔 내가 되게 못나고 모자라 보일 때가 있다. 한없이 작고 초라해질 때가 있다. 이건 아무리 삶에 경험치가 쌓여서 굳은살처럼 단단해졌다고 해도 그때가 닥치면 정말 아프다. 내 자신에게 실망을 할 때는 정말 어디론가 도피해 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피가 나지 않는다고, 쓰러지지 않는다고 ,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해서 괜찮은 게 아니다. 어른이라는 겉모습 안에는 엉엉 울고 싶어 하는 내가 숨어있을 수도 있다.
최근에 유명한 연예인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내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지나쳐버렸다. 알고 보니 진짜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싸인도 받고 좋아하던데 나만 유명한 사람인줄도 모르고 데면데면한 모습을 보인 것 같아 오히려 민망했다. 그래도 다시 시간을 돌려 과거로 간다면 나는 똑같이 사인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 시간에 내 일을 하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이건 유명하고 말고를 떠나 내가 그다지 감흥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내가 먼저 달려 나갔겠지만. 제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세상 모두가 다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 수가 없다. (그건 신도 못하는 일이다.) 예전에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고 시간을 투자하면서 친절을 베풀었지만 다 부질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시간에 나를 좋아하고 곁에 있어주는 이들에게 더 집중해야 한다. 애초에 나와 결이 다른 사람들은 보는 세상이 다르다는 걸 나이가 들어서야 깨달았다. 그곳에 틀린 건 없었다. 그냥 서로 다를 뿐인 것이다.
밥 한 그릇을 다 먹어도 칭찬해 주고, 화장실을 잘 가도 자랑할 수 있는 곳이 있는가.
사실 요즘도 본가에 내려가면 정말 기초적인 것만 해도 서로 칭찬을 해준다. 칭찬 로봇처럼 기본 값이 세팅 돼 있다. 물론 과거에는 이렇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고 서로 잘 지낼 수 있는 삶을 조율해 낸 결과가 이렇게 되었다. 조금 이상하지만 밥 잘 먹고 화장실 잘 가는 것도 서로 우쭈쭈 해준다. 재미로 하는 추임새 같은 건데 이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과도한 칭찬이나, 영혼 없는 말들은 지양하되 서로가 상대의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삶을 들여다 봐주는 느낌을 풍겨주는 것이다. 우리 집은 그간의 많은 이야기들과 우여곡절이 있었던 터라 인생에서 잘 먹고 잘 싸는 게 정말 중요한 일임을 서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각자 상처 주는 말은 최대한 하지 않는다.
어릴 때는 뒤집기 한번, 눈 한 번만 깜박여도 엄청난 사랑을 받던 시기가 있었던 삶이 어른이 되었다는 이유로 너무나 퍽퍽하게 변했다. 마치 사막 위를 걷는 느낌이다. 내가 하는 모든 게 다 기본적인 것이고 그 이상을 해내야 그나마 평균이 된다. 그래서 더욱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해 주고, 인정해 주는 말을 잘해주려고 한다. 정말 사소한 거라도 스스로 노력한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인정만 해주어도 그 사람은 더 힘을 낼 수 있게 된다. 단 한 명이라도 진실되게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각자 나름대로 굴곡이 없는 가정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커보면 유독 부족했던 부분이 더 커 보이는 효과가 있다. 분명 더 많은 사랑을 받았을 거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쉽거나, 모자랐던 기억들이 간혹 떠오른다. 그래서 요즘 자녀 양육, 심리에 관한 강연을 종종 찾아본다. 물론 미래에 생길 자녀를 위해서 알아두면 다 좋을 이야기이지만, 지금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다. 내가 받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이라도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도 그들의 삶이 처음이었을 텐데 어떻게 백점만점이 있겠는가. 서툴고 모자랐던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들은 커서라도 본인이 받지 못했다고 느꼈던걸 스스로에게 해줘야 한다. 내가 나의 양육자가 되어주는 것이다. 성인이 되면 어른이라고 하지만 이건 사회가 정해둔 기준일 뿐이다. 나는 아직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 부분을 찾고 적당한 양분을 공급해 주는 것이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이다.
과거에 일어난 일(사건)은 물리적으로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그 결괏값은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다. 벌어진 일을 그대로 놔두지 않고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이혼을 하신 경우 "우리 집은 이혼가정이야. 나는 행복한 가정을 겪지 못했어.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뒷문장을 추가하는 것이다.
"우리 집은 이혼가정이야. 나는 행복한 가정을 겪지 못했어. 그렇지만 나는 그 안에서 배운 게 있어. 앞으로 내가 만들어갈 가족에게는 내가 겪었던 일들을 반복되지 않게 할 수 있는 경험을 얻었어. "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렇다면 과거는 아픈 상처에서 머물지 않고 경험에 중점을 맞추게 된다. 일종의 정신승리지만 이런 식으로 과거를 바꾸면 지난 세월은 나만이 가지는 무기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기본으로 여겨지는 문화가 외국에 나가면 통화하지 않을 때가 있다. 해외에서도 가끔 정말 낯설어서 외국이 아니라 외계에 온 거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세상에 절댓값이 그리 많지가 않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라는걸 애초에 누가, 왜, 어떻게 정했고 그게 우리를 어떤 방식으로 가둬두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사실 발톱도, 털도 없는 솜털같이 연약한 인간이라는 동물이 지능을 이용해서 이렇게 최 상위의 삶을 사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하루하루 잘 살아가는 것도 충분히 대단한 일임을 스스로가, 서로가 알아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