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받을 때 상담받는 사람이 하는 내적고민 1
입 밖으로 뻔뻔하게 내뱉는 꽤 많은 거짓부렁이들.
많은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느낀 점이 있다. 내가 꽤 크고 작은 다양한 거짓말들을 망설임 없이 입 밖으로 내뱉는걸.
그것도 눈하나 깜박이지 않고,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말이다. 가끔 연기자를 해야 하나 싶을 만큼 매소드 연기다.
속으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나, 그 말에 자신감이 없거나 혹은 더 나아가 깊은 내면에 꼭꼭 숨겨둔 지저분하고 더럽고 때로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추악한 상상들과 전혀 반대되는 선하고 멋진 모습들 위주로 포장해서 말하고 있는 괴리감이 있는 내 모습을 마주한다. 그렇게 나의 속마음과 현실이 내는 삐걱거리는 기괴한 마찰음에 휩싸여 혼자 괴로워한다.
난 천성이 거짓말쟁이인 걸까 싶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먼저 말로 내뱉고 본다. 100% 이뤄지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하고 본다. “뭔가를 할 거야.” “이걸 하고 싶어”라고 한다. 혹은 현실이 불행하고 행복하지 않을 때는 “지금은 별로지만(개똥밭 같은 냄새나는 현실이지만) 뭔가 앞으로는 점점 행복해질 것 같아”라고 말한다. 이건 거짓말은 아니니까.
상담을 받을 때도 똑같다. 현실은 바뀌지 않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 꽤나 긍정적이고 행복하게 포장해서 말한다. 내가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배를 빵빵하게 부풀려 과장한다. 두려워도 일단 침 꿀꺽 삼키고 해낼 수 있을 거 같다며 희망찬 미래를 말한다. 분명 상담을 오기 전까지는 우울 그 자체였던 미래가 뒤바뀐다.
그래서 분명 ’오늘 상담에서 조금 우울하거나 바닥으로 꺼지는 이야기를 해야겠어 ‘라고 다짐했는데 상담실을 나오는 나는 꽤 괜찮은 상태로 오히려 자신감을 충전해버리고 만다.
상담이 꼭 회색빛 우울 덩어리일 필요는 없다. 어차피 눈물은 예고 없이 떨어진다. 그때 되면 숨김없이 울면 될 일이니 [상담= 우울한 이야기를 하는 곳]이라는 타이틀을 깨버려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다지 선한 사람이 아니다. 언제나 나를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며 타인을 볼 때 좋은 부분보다 먼저 비판할 것을 찾아내고 그 사람이 내게 유해한 사람인가를 빠르게 악한다. 혹시 친해졌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경계는 항상 존재한다. 이것은 친구, 연인을 넘어 피가 섞인 가족에게조차 해당된다. 우여곡절인 많은 인생을 살면서 흑화 된 건가 싶었지만 애초에 태생적으로 타인에 대한 경계가 뚜렷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사람 사는 거 뭐 다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다 각자 본인의 인생이 가장 소중하고 그다음은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소중한 거 아닌가. 타인이 나의 마지노선을 넘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혹여 아직 내가 웃고 있다는 건 그들이 한계를 넘어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경계를 넘어오는 순간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게 어려움을 알기에 이미 찾아버린 미운 부분은 놔두고 새로운 예쁜 모습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예쁜 게 눈 씻고 찾아봐도 1도 안 보이는 사람은 그냥 깔끔히 손절한다. 세상에 사람은 많다.) 상담을 받을 때도 내가 정해둔 마지노선을 항상 지킨다. 말하고 싶은 것은 디테일하게 말하고, 말하기 싫은 것은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한다. 선생님께 거짓말을 하거나 솔직하지 않은 게 아니다. 아직 말하지 않은 것뿐이다. 상담 선생님께 모든 걸 다 말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된다.
내가 준비가 되면 그때 하면 되고, 할 수 있는 말을 먼저 하면 된다. 말할 준비를 하고 있는 거라 생각하자.
나는 나를 좋아하면서 싫어한다. 사랑하면서 미워한다. 현재에 대한 만족이 없으면 쉽게 지치지만 현재에 100% 만족하면 더 이상 뭔가 변하지 않을 거 같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영영 이 상태에 갇힐 것만 같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나만 뒤 쳐질 거 같은 느낌.
또래에 비해서 모은 돈이 없어서. 살이 쪄서. 얼굴이 못생겨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루저라서. 여기저기 고장 난 아픈 몸이라서. 금수저가 아니라서...... 등등 싫은 부분을 생각하면 진짜 지구 한 바퀴 쉽게 돌릴 수 있다. 그냥 끝없이 말리는 줄줄이 김밥이다.
근데 아까 말했던 내용과 비슷한 결로 세상은 나 혼자 살 수는 없는데 > 그 기본인 [나]와 사이가 안 좋으면? 어딜 가보려고 해도 차동차에 시동조차 안 켜지는 거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맞게 스스로를 물리적으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운동을 해서 체형을 바꾸고, 물질적인 것들로 치장하고, 제2의 아버지를 만나 의학의 기술을 빌리는 것들 말이다. 근데 그런 것들이 완전한 근본적인 핵심 해결책이 되어주면 땡큐지만 완전하지는 않아서 반드시 같이 가야 하는 게 있다. [본인과의 소통]이다.
사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다 밥을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하며, 갈색계열 응가를 싸고(24K 금똥 같은 거 안 싼다 이 말이다) 흰머리가 나고, 주름이 생기며 나이가 들면 언젠가 죽는다. 계속 타인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어주면 내 삶은 영영 조연만 하게 된다. 나 스스로에게만큼은 주인공 자리를 줘야 한다. 잘난 세상사람들이 만들어둔 각박한 현실에서는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 될 수 없다지만 내 인생에서 만큼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볼 수 있지 않을까. 대부분 모든 사람이 스스로가 그렇게 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런 내가 나를 싫어한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 생각하는 주인공의 역할에 부합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모습이 싫어서 나를 홀대하는지 스스로에게 진심으로 물어봐야 한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을지 그 문제가 정말 고민이 맞는지? 아니면 사회에서 만들어낸 분위기 인지 생각해야 한다. 30살 중반에는 결혼을 해야 하고 돈을 이 정도 모아야 하고 등등 숨 막히는 것들로 내 목을 조르고 있지는 않았는지. 타인에게는 예쁜 모습을 찾아봐 주려고 무던히 노력하던 사람인데 정작 나는 그렇게 해주지 못한 건 아닌지. 여기서 직접적인 고립이 있어야만 한다. 근데 집에 틀어박혀서 하면 진짜 겁나게 우울해지니까 커피냄새가 좋은 조용한 카페, 혹은 시야가 탁 트인 한강에 나가 산책이라도 하면서 생각하는 걸 추천한다. 대신 옆에 타인은 없이 혼자와 대화해야 한다. 그래야 내면의 나와 이야기할 수 있다.
사실은 혼자가 혼자가 아닌 거다. 인생은 나랑 함께니까.
양육자를 믿고 앞으로 나아갔던 시절이 있었다면 지금은 나 스스로가 나의 삶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나를 믿는 삶이 최고의 삶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