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냥일기3

봉사하러 멀리 갈 필요가 없네

by poppy

봉사활동.

예전에는 유기견봉사활동이나, 기부를 해보려고 몇 번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나 이외에 내 봉사가 필요한 다른 이에게 시간을 쏟는 일들을 통해서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뿌듯함을 얻고자 했다.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봉사를 하러 멀리 갈 필요 없이 주변이 온통 봉사가 필요한 곳이었다.


가족, 친구, 회사..

그들에게 베푸는 봉사활동.

내가 가진 그릇의 크기로 봤을 때 먼저 주변에게 베푸는 봉사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였다.





누가 이 쓰레기를 비울텐가


다른 회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지금 근무하고 있는 회사는 최근까지도 매주 하루는 한 시간씩 직원들이 직접 청소하고 쓰레기를 버리러 다녀와야 했다. 규모가 크지 않은 회사이다 보니 직원의 손이 닿아야 하는 곳이 조금 더 많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면 하는 사람은 하고, 누리는 사람은 누린다.

커피머신을 닦는 사람은 계속 닦고, 쓰는 사람은 그냥 쓰기만 한다. 심지어 깨끗하게 사용하지도 않는다는 게 매우 심히 안타깝다. 그렇다고 아무도 안 닦으면 그 커피머신은 곰팡이들의 서식지로 당첨될 것이다. (사실 이미 몇 번 봤다.) 쓰레기통도 맨 마지막에 넣는 사람을 기준으로 누군가 비워야 하는데 정해진 사람이 없으니 계속 그 위에 얹어두기만 하고 거의 쓰레기를 토해내는 지경까지 미룬다.

안으로 눌러 담아 넣는 정성은 없다. 누가 비울지 눈치게임을 시작하는 거다.


이때 아껴뒀던 봉사정신이 필요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쓰레기를 먼저 비우고, 주변을 치운다.


깔끔 병이 있어서 유난을 떠는 것도 아니다. (집은 그리 깨끗하지도 않다), 천사 같은 마음의 소유자라서 그러는 건 더더욱 아니다. (가끔 사악한 악마가 눈알을 굴리면서 세상에도 없는 갖가지 심한 욕을 내뱉는다)


봉사행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재미있게 생각해 보자면 레시피 같은 게 있다.


+ 나의 복(福)의 길을 닦는다 라는 마음 한 스푼 (언젠가 다시 행복으로 돌아올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다)

+ 내 주변을 깨끗하게 정돈하고 싶다는 마음 한 스푼 (지저분함을 허용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있다)

+ 애사심 0.66% 정도 ( 퇴사하고 나면 다른 누군가 이 일을 대신하겠지만 근무하는 동안은 최대한 내가 하자라는 생각. 어린 신입이 해야지, 누가 해야지.. 머리 굴리고 탓할 시간에 하고 말아 버리는 것)


이렇게 하면 탄생된다.


그렇게 움직여서 주변을 깨끗하게 닦아두면 일단 첫 번째로 마음이 너무 후련하다. 스스로를 위해서 그리고 주변인들을 위해서 뭔가를 했다는 뿌듯한 마음. '다음 사람이 사용할 때 좀 더 편하게 쓰겠지..?'라는 생각에 괜히 웃음이 날 때도 있다.


사실 이런 것도 마음이 여유로울 때나 나오지, 가끔씩 마음에 여유가 단 한 공간도 없을 땐 순간 화가 치미는 순간이 생긴다. 그땐 한 번씩 잔잔한 경보를 울린다. 그래봤자 깨끗하게 이용해 주세요! 라면서 공지를 올리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봉사정신 해보겠다고 다 참기만 하고 스트레스 왕창 쌓이면 그건 독이다. 타인이 미워지거나 탓하는 상황은 뭔가 잘못된 거다. 피해의식 생기지 않게 뭐든 적당히 하는 게 좋다.


중요한 포인트는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는것.

나조차도 나의 기준에 매번 통과할 수 없다.

타인도 나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이건 진짜다. 아직 못 알아차렸을 뿐. 분명 나도 뭔가를 배려받고 받고 있다.




타인의 손길로 만들어진 편안함


지금 뭔가를 불편함 없이 편하게 사용하고 있다면 그건 타인의 손길이 먼저 닿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면 좋다. 뭐든 저절로 되는 게 없는 세상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뿐 다른 사람 또한 누군가를 위해서 먼저 손을 써둔 걸 내가 편하게 누리는 것일 수 있다.


일상에서 하는 봉사와 진짜 봉사활동을 가는 것의 차이는 받는 사람의 표현의 유무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감사한 일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쉽게 지나친다.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 깨끗한 빨래, 정돈된 공간, 편안하게 이동하는 교통수단 등등 정말 다양한 곳에서 당연하지 않은 감사함들이 숨어있다. 우리는 조금 더 많이, 자주, 소소하게 감사와 즐거움을 표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더 길게 지속된다. 본인이 행동을 했을 때 상대가 어떤 긍정적인 반응을 해준다면, 다시 또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처럼. 누구는 애교가 많고, 천성적으로 표현을 잘해서 웃고 다니는 게 아니다. 본인에 대한 배려와 상대에 대한 감사가 표현에서부터 나온다. 나 또한 웃는 연습이나 마음을 표현하는걸 정말 많이 연습했고 앞으로도 해야 할 것 같다.






최근에는 또다시 중국출장을 다녀왔고, 계속되는 야근업무, 개인 외주작업, 공부 등등 내가 포기하지 못한 일정들로 인해서 그동안 유지하고 있던 면역체계가 붕괴되어 꼬박 한 달 동안 한의원을 다니며 침을 맞으러 다녔다.

그토록 사랑하는 운동도 쉬었다.

어차피 쉬는 시간이 된 거,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고 방향을 정비해 본다. 규칙으로 만들어둔 루틴들에서 멀어지고 휴식기를 주면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소방차는 신호를 무시하고 목적지까지 미친 듯이 가야 하지만, 우리 인생은 빨리 달려가야만 하는 경주 같은 게 아니다. 게임을 할 때도 버그 써서 바로 왕을 깨버린다고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매 순간을 자잘하게 누리고 느끼는 것. 그것에 최선을 다할 것.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