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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y Aug 15. 2023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 [콘크리트 유토피아]

엄태화 감독 작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요즘 핫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동기들과 함께 보고 서로 이야기하고, 또 오늘 학교 가는 길에 지인을 우연히 마주쳐서 지하철에서 얘기했던 내용들을 토대로 영화에 대한 나의 느낀점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스포 O)

 대규모 재난이 벌어지며 황폐화된 서울. 단 하나의 아파트만이 건재하게 남아 있다. 주변의 이재민들이 몰려든 가운데, 외부인을 내쫓아야 할지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김영탁 (이병헌)이 대표로 선출된다. 얼떨떨하기도 잠시, 이들은 일사불란하게 바퀴 (외부인)를 쫓아내고 규칙을 만들며 재난 속 하나의 '유토피아'를 일구어 나간다.

 하지만 완전한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법. 영탁의 독재 아닌 독재에 반발심을 품는 명화 (박보영)와, 이에 아파트에 남으려는 남편 민성 (박서준)은 갈등을 빚는다. 또한 영탁의 존재에 대한 진실이 혜원 (박시후)에 의해 밝혀지며 혼란은 가중된다. 엄격한 규칙에 의해 철저히 외부인을 배척하는 황궁 아파트에 대한 저항도 나날이 거세진다.

 인명피해와 식량부족, 외부의 거센 압박과 더불어 영탁이 사실 진짜 김영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황궁아파트는 바퀴라 불렸던 외부인들에게 침략당한다. 무너진 세상 속 무너진 유토피아, 사람들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1. 여러 인간군상에 대하여

 감독은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이 상황에 대처하는 여러 인간 군상을 관객들에게 차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 영화를 보며 크게 네 개의 인간 군상을 찾을 수 있었다.

(1) 선량한 개인과 선동되는 집단 사이 > 민성 (박서준)

 아마도 제일 많은 사람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이렇다 할 신념은 없지만, 그렇다고 나쁜 사람도 아니다. 나름 정직하게 살아왔고, 소시민보다 조금 더 높은 어딘가의 위치에서 삶을 꾸려가고 있다.

 하지만 재난이 발생하고, 민성의 정직함은 차차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변해간다. 외부인들을 내쫓기 위해 무기를 만들고, 식량을 위해 총을 든 슈퍼 주인의 뒷머리를 가격한다. 영탁 (이병헌)의 눈 밖에 난 아내와 자신의 가정을 위해서 영탁 (이병헌)에게 더욱 충성하며 외부인을 숨겨 준 이웃들을 색출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게 규칙을 따라 아파트에 남기 위함이었다.

 사실 극 초반, 드림팰리스에서 살던 모자를 집 안으로 들이는 데 주저하고, 어렵게 얻어 온 황도를 그들과 나누어 먹는 대신 명화 (박보영)와만 먹는 것을 선택하는 것만 보아도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다.

 민성 (박서준)의 모습을 보았을 때, 이들이야말로 지도자와 여론이 중요한 인물이었다. 아파트를 지키자는 구호에 힘입어 서서히 변해가는 민성 (박서준)의 모습과 행동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가장 연약하고 대중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2) 어딘가는 필요한 존재이지만 내 주변은 아니었으면 > 명화 (박보영)

 명화는 이타적인 인물이다. 극 초반 드림팰리스에서 살던 모자를 재워주고, 이후 극중에서 외부인을 숨겨 주었던 이웃에게 자신의 배급품을 나누어 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필수적으로 희생정신을 요하는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도 명화 (박보영)의 캐릭터에 잘 어울린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런 이상적인 사람들은 어딘가에는 필요하지만 내 주변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영탁 (이병헌)의 눈밖에 나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자리에서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의 신변을 걸고까지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할까? 

 흠 어렵다 ㅜㅡㅜ 그치만 이런 기버 (Giver)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이들이 또다른 흐름을 만들어 내는 거니까

(3)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는 공존할 수 없는 > 영탁 (이병헌)

 영탁 (이병헌)은 지도자가 된 이후 무언가 달라진다. 이 아파트는 내가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구호를 외칠 때 문득 떠오른다. 지치고 암울하기만 했던 디스토피아 이전보다 오히려 그는 재난 상황에서 그만의 유토피아를 꾸려 나가기 시작한다. 

 사실 이런 사람들이 극소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인물이 지도자가 되는 것이 흔치 않을 뿐이다. 영탁 (이병헌)은 이곳을 유토피아로 만드려고 하지만, 실상 자신이 추구하는 유토피아의 조건에 맞지 않는 것은 외부인인 자신 (모세범) 이었다. 진짜 영탁을 죽이고 그의 자리를 통해 유토피아의 제왕이 되고자 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병헌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아무튼 모든 위계가 무너진 세상 속, 이제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하는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을 대변해 주는 캐릭터였다고 생각한다.

(4) 하여간 시시콜콜 따진다 > 극 초반 깐죽대는 아저씨

 외부인들의 거취 문제를 놓고 주민 소집 회의를 했을 때, 시시건건 딴지를 거는 아저씨 한 명이 있었다. 짧게 말하고 넘어가겠지만... 어느느 상황에 있건 간에, 특히 재난 상황에서는 꼭 분탕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그냥 이런 사람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ㅎㅡㅎ 

 영화 속 감독은 그 어떤 인물상이 정답이라고 하지 않는다. 기버 (Giver)도 있고 테이커 (Taker)도 있어야 어느 정도 균형이 유지되는 사회에서, 그 비율이 중요한 것일 뿐 각자의 인물상은 필요하다. 다만 여기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나는 어떤 인물에 가장 가까울까? 민성 (박서준) 일 것 같다. 나는 이렇다 할 신념은 없지만, 나름의 양심에 고민할 것 같다. 그러다가도 민성 (박서준)처럼 어느 순간이 되면 하나의 집단에 강한 애착을 가지며 서서히 더, 더 강도를 높이지 않을까! 여러분은 어떤 인물상에 가까울 것 같으신가요?


2. 멈추지 않는 자본주의

 모든 게 무너진 세상이지만 자본주의까지 무너진 것은 아니다. 초반 주민회의에서 부동산에 종사하는 주민은 사람들의 자가와 전/월세 유무에 따라 의견을 들어야 하지 않냐고 주장한다. 이후 영화 중에서도 주민들의 호수와 이름 옆에는 자가인지, 전세인지가 적혀 있다.

 또 주민 회의에서 옆에 위치하던 '드림팰리스'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평소에 집값을 가지고 무시당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만약 상황이 반대로 되었다면 자신들을 받아주지 않았을 것이며, 이제는 우리가 본때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민들의 눈에서는 증오와 분노가 느껴지기도 한다.

 영탁 (이병헌)은 새해 기념 파티를 열며, 이제는 우리 아파트가 전국에서 제일 집값이 높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제와서 집값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은, 영탁 (이병헌)의 표정은 매우 뿌듯해 보인다. '우리가 해냈다'는 눈빛이다. 이 시국에 제일 자랑스러운 게 집값 상승이라니, 돈도 종이쪼가리에 불과해진 세상에서 도대체 집값은 무슨 소용인가?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살아남는다. 자본주의라기보다는, 끊임없이 계급을 나누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일 수도 있다. 그렇게 멈추지 않는 자본주의의 모습을 보며, 그들이 한심하기도 안타깝기도 했다. 네버엔딩 자본주의...


3.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

 극 중 영탁 (이병헌)은 주민대표로서 절대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탁은 외부인들을 쫓아내는 데 가장 심혈을 기울이기도 한다. 복도식 아파트의 구조에서 담배를 피면서 사람들의 거동을 확인한다. 외부인을 숨겨주고 있는 집은 없는지 철저히 살피며, 확고한 응징을 자행한다.

 그런데! 극 후반부에는 반전이 존재한다. 영탁은 영탁이 아니었다... 돈을 받으러 왔던 모세범 (이병헌)은 진짜 김영탁과 몸싸움 끝에 그를 살해하게 되고, 그의 시체를 숨겨둔 채 우연찮게 김영탁 행세를 하며 902호의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는 영탁의 실체가 사실은 외부인이었다니! 외부인에 대한 영탁의 강한 부정은, 실제로 자기 자신에 대한 강한 긍정이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살면서 그런 생각을 할 때가 가끔 있다. 어떤 것을 지나치게 혐오하는 사람들은 사실, 자기가 그 부류에 속해 있거나 아니면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거나. 라는 생각이다.



4. 헝거게임과 동물농장, 그리고 콘크리트 유토피아

 마침 어제 엄마아빠도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관람하고 왔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했는데, 엄마는 이 작품에서 동물농장을 떠올렸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그럴만하다. 나폴레옹 (돼지 ㅎㅡㅎ) 의 합리적인 규율과 체계는 결국 평소 증오하던 인간의 모습과 다를 바 없게 변화한 점이 그렇다. 즉, 끝내 유토피아로 남아 있지 못했다는 점이 유사한 부분인 것 같다.

 나는 <헝거게임>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캐피톨로 대변되는 수도의 독재에 저항하며, 소외되던 13구역의 사람들은 다른 구역의 사람들과 연합해 반란을 일으키고, 마침내 새 정부가 들어선다. 그리고 이 과정을 주인공 캣니스는 반란군의 마스코트가 되며 몸소 겪는다. 하지만 반란이 성공한 이후, 반란군의 수장은 어쩐지 이전의 독재자 '스노우'와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결국 대상이 달라질 뿐, 그들의 독재와 디스토피아는 쉬이 멈추지 않음을 잘 보여 준 예시이다.

 황궁 아파트가 외부인들의 손에 넘어간 이후, 이 아파트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나는 별다를 바 없을 것 같았다. 영탁에서 다른 인물로 대표가 넘어갈 뿐, 사람들이 조금씩 교체될 뿐 결국 유토피아부터 디스토피아까지의 과정이 반복되지 않을까. 그렇기에 황궁아파트의 주민들이 특별한 케이스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영화 마지막, 외부인들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진짜냐는 다른 사람의 질문에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대답하는 박보영처럼 말이다.


5. 마치며

 개인적으로 만족했던 영화였다. 쓴 내용 이외에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본 해석도 꽤 흥미로웠고, 특히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며 내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들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곱씹으며 생각해 볼 게 많은 영화,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특별한 재난 속에서 더 극적으로 사람들의 모습과 생각, 행동을 보여 준 이 영화는 한번쯤 극장에 가서 달달한 캬라멜 팝콘 우걱우걱 씹으며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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