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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y Aug 19. 2023

밥벌이의 지겨움 [땀 흘리는 소설]

 화요일 밤부터 목이 너무 아프더니 급성 후두염과 몸살과 역류성 식도염이 겹쳐 와서 며칠을 꼼짝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던 나날들... 주말 즈음이 되니 간신히 회복되어서 거의 다 읽었던 '땀 흘리는 소설'을 리뷰해볼까 한다.

 단편 소설인 이 책은 8명의 작가들이 쓴 이야기이다. 작가들 중에는 '가만한 나날'로 잘 알려진 김세희 작가나, 구병모 작가의 이름도 보여 반갑게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리뷰할 이야기는 이 중에 몇 가지이지만, 전체적인 줄거리를 소개하기 위해 각 작품의 제목과 나름의 줄거리를 밑에 소개해 보려고 한다.

"어비" (김혜진)

 물류창고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나, 붙임성 없고 말도 잘 하지 않는 '어비'라는 인물에게 말을 붙이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단기 노동자직을 전전하며 살아가던 어비는 어느 날 먹방 BJ가 된다. 음식을 게걸스레 먹으며 별풍선을 받아 돈을 버는 어비의 모습이 어쩐지 '나'에게는 아니꼬와 보인다. 결국 스트레스가 폭발하던 어느 날, '나'는 어비의 채팅창에 악플을 도배한 후, 다시 그의 채널로 들어가 보지만 어비의 채널은 삭제된 지 오래다.

"가만한 나날" (김세희)

 절박한 취준생의 끝은 취업. 새로 일하게 된 홍보 회사에서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내디딘 '경진'. 이들이 하는 일은 가상의 인물을 바탕으로 한 블로그를 만들어서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의 리뷰인 것처럼, 허상의 존재를 사이버 공간 안에서 창출해 내는 것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채털리 부인'의 캐릭터를 토대로 밤낮없이 가짜 리뷰를 작성하던 그녀는, 자신이 추천한 '뽀송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음을 알게 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이것이 나의 밥벌이보다 우선시될 수 있는가?

"기도" (김애란)

 신림 고시촌에서 9급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는 언니의 배게를 전해 주러 간 '나'. 고시원은 좁고 삭막하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 어느덧 퀭해져 버린 언니의 얼굴과,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나'의 상황은 녹록치만은 않다. '나'는 문화상품권을 준다는 유혹에 혹해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에 응하지만, 어딘가 마음이 편하지 않다.

"저건 사람도 아니다" (서유미)

 이혼 이후 아이를 키우며 워킹맘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 직장에서 버티랴, 아이 케어하랴 도무지 쉴 틈이 없던 나날 끝에, 자신과 똑같은 사이보그를 주문하게 된다. 집안은 깨끗해지고, 온전히 일에 집중할 수 있으며, 아이는 행복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너무 아파 중요한 회의에 '나' 대신 사이보그를 보낸 이후로는 모든 방면에서 나보다 나은 사이보그에게 어쩐지 자신의 정체성을 내 주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사이보그보다 나은 게 아무것도 없는 자신.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 저건 사람도 아니지만 나보다 낫다.

"어디까지를 묻다" (구병모)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부모님의 지원을 받았지만 결국 실패하고 카드 회사의 상담원으로 취직한 '나'. 갈수록 말수가 없어지지만 택시 기사의 '어디까지 가느냐'는 질문에 미친 듯이 말을 토해낸다. 수많은 고객들에게 욕설과 폭언, 성희롱에 시달려야 하는 일상 속에서 그녀는 무방비한 감정 노동에 노출된다. 오래 하면 이 일도 익숙해질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녀는 과연 이 감정노동에 익숙해졌을까?

"코끼리" (김재영)

 가난한 이주노동자의 아들. 조선족 출신인 어머니는 이 가난을 견디지 못해 가정을 떠났고,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쪽방촌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의 고향에서는 분명 아버지도 신성한 코끼리였는데, 돈을 벌기 위해 이 땅으로 돌아 온 이후부터는 우주를 떠받치는 기둥이 되었다는 슬픈 코끼리의 전설을 따라 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P" (윤고은)

 회사의 강압 아닌 강압으로 새로 출시된 건강 검진을 체험해 보지만, 오히려 건강 검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회사에서 정직 처분을 받게 된다. 나의 잘못이 아닌 '산업 재해'인데도 그 고통은 고스란히 피해자에게로 넘어가는 상황. 그는 끝끝내 복직할 수 있었지만 같은 처지의 동료는 결국 죽음을 택한다. 

"알바생 자르기" (장강명)

 친절하지도,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 가난한 알바생. 이 여자아이를 자르려고 했더니 노동법을 얘기하며 적반하장으로 자신의 모든 권리를 요구한다. 퇴직금부터 4대 보험비까지, 여자아이를 자르려던 쪽만 난감해질 뿐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불쌍해하며 받아줬건만,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지 말라는 말처럼 자신이 필요한 것만 쏙 빼먹고 가는 여자아이는 언제부터 이렇게 살아왔던 걸까.



1. 내 아니꼬움의 근원은 : 어비 (김혜진)

 이야기 중 '나'는 어비의 먹방을 보고 불쾌함을 느낀다. 자신은 하루 종일 공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데, 먹는 모습만 보여주고 돈을 버는 어비와 같은 모습은 '노동'에 속하지 않는 것 같아서이다. 그게 과연 정당한 노동인가? 이야기 속의 '나'의 모습은, 내가 평소 느꼈던 인터넷 방송인들의 모습과도 나름 흡사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왜 그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꼬와?

 먹방을 보는 것을 즐겨 하지만, 기타 인터넷 방송 (ex. 아프리카tv) 은 한 번도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인터넷 방송인들을 전부 포괄해서 말하겠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싫다'라는 소리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설령 그게 상대방과 나와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 것일지라도! 하지만 나는 인터넷 방송인들을 '싫어'했다. 그들의 돈 버는 방식이 아니꼬웠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고, 다행히 잘 했다. 그래서 공부를 잘 하면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일자리를 얻고, 엄청난 부자는 아니더라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정직한 노력과 노동의 대가로 정직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데 10년 사이 급부상한 인터넷 방송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 높은 학력이나 학창 시절의 노력이 아니라, 외모나 입담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수많은 돈을 쓸어담았다. 그리고 이들이 하는 대부분의 방송은 주로 수위가 높거나, 폭력적인... 즉 원초적인 콘텐츠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나뿐만 아니라 저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비례의 대가만 받는데, 그들은 지나친 반비례의 대가를 받는 것 같았다. 저렇게 원초적인 콘텐츠로, 수준 낮은 욕설을 섞어 가며 (때로는) 저급한 콘텐츠를 다루는데 노력하는 '우리'보다 높은 대가를 받는 것이 싫었다. 나는 그들의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기 싫었다.

 

  그때의 나를 돌이켜보면... 두려움이었는지도 몰랐다. 공부를 제일 잘하는 걸 우선시하는 사회에서, 내 가장 큰 자산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라는 것이었는데, 인터넷 방송인들은 이 판도에 역행하는 사람들이었다. 뛰어난 외모와 입담으로 공부를 웬만큼 잘해서는 벌어들일 수 없는 수익을 내는 그들의 모습은 내가 뒤처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선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그들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물론 아직도 그들의 직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귀천의 문제에서가 아니라 선호도에 따른 문제로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전만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끊임없이 콘텐츠를 개발하고, 시청자들을 유지하고, 쉼 없이 자신을 노출해야 하는 직업의 특성은 또 다른 종류의 '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넷 방송에서 일어나는 각종 원색적인 비하 발언이나 지나친 노출에 대한 시선까지 바뀌었다는 말은 아니다. 은행 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은행의 회계 부정까지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 느낌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에는 몇 종류만의 확고한 '땀'이 있었다면, 이제는 각자의 땀을 흘리며 살아가야 하는 시대. 다른 땀냄새는 본능적으로 경계하고 싫어할 수 있지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노동'과 '땀'에 대해 우리는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 짜증나는 약자 : 알바생 자르기 (장강명)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분명 사회적 약자이고 내가 배려해 주어야 하는 사람인 건 맞는데, 어느 순간 내 호의를 자신의 당연한 권리로 여기거나 그만한 고마움은 커녕 제대로 된 인사도 받지 못할 때. '짜증나는 약자'를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배려하는 게 맞고 당연한 건데 내 배려에는 고마워해 줬으면 좋겠으면서도...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이기적인 것 같은 순간이다.

 이 이야기에서도 그렇다. 가난하고 사회적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알바생은 정시에 출근하지도 않고, 병원을 핑계로 점심시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근무를 하지 않는다. 해고를 명령하는 앞에서는 눈물을 떨구지만, 돈과 관련된 이야기가 오갈 때에는 누구보다 냉철해진다. 열심히 살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그 '열심히'가 잘 피력이 되지 않는 타입인 것 같기도 하다.

 '짜증나는 약자'는 많은 사람들의 딜레마다. 배려에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 맞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나도 선뜻 다가갔다가, 오히려 당황하고 물러서서 마음의 문을 조금 더 닫게 된 경우도 존재한다. 

 50을 해 주면 똑같이 50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20의 고마움은 표현해 주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게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20마저도 참 쉽지 않더라. 

 중학교 때 같은 무리에 있다가, (나는 그 문제에 관련되지는 않았지만)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며 학교에 잘 나오지 않았던 친구가 있었다. 수업을 잘 듣지 않다 보니 필기는 당연히 허술했을 것이고, 그래서 시험 며칠 전날 급하게 나에게 연락을 해 왔다. 필기를 좀 찍어보내 줄 수 있느냐고 말이다. 내 하는 것도 바빴지만, 그래도 배려를 해 주어야 할 것 같아 수십 장에 이르는 필기를 직접 찍어서 보내 주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조금 띠용했는데, 결정적인 건 수행평가에서 터졌다. 국어 시간에 동영상을 만드는 수행평가에서 같은 조가 되었다. 그 친구는 편집 역할을 맡았는데, 기한이 다가와서 말을 하니 '집에서 usb를 가져오지 않았다' '집에 가서 보내 주겠다'는 말만 할 뿐, 마감 당일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결국 모든 컷을 내가 다시 그리고 찍어서 편집했는데, 제출 시간이 지나서야 '다 하지 못했어... 내가 진짜진짜 미안해 ㅜㅜ' 라는 답변만 받았다. 난 어이가 없었다. 원하는 역할을 배분해 줬고, 시간도 여유로웠는데 대체 왜? 그래서 그 이후로는 그 친구에 대한 관심을 아예 꺼 버렸다. 

 그래서 가끔 그들에 대한 배려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기보다는, 그들을 괴롭히지 않는 선에서만 지내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금 나는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이게 궁극적인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때 그 친구와의 스토리는 내 인생에 또다른 참고 자료가 되었고, 그 사람에게서 20을 받지 못하더라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20의 호의가 그 자리를 채워 준다는 점. 내가 배려를 베푸는 사람 모두에게 20의 호의를 받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다른 사람에게 20의 호의를 주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배려는 필요하다. 약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받지 못할 20의 호의를 내가 대신 꾸어 주기 위해, 또 내가 갚지 못할 20의 호의를 채우기 위해서. 서로 메우고 메워주는 선순환이 벌어질 때, 그리고 이걸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될 것 같다.



3. 밥벌이의 지겨움에 대하여

 이 책은 모두 '노동'을 공통 주제로 담고 있다. 아마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 종사하게 될 '노동'. 그것이 비록 이전부터 이어져 왔던 노동이나, 새롭게 등장해 생소해 보이는 노동이나, 이전부터 꾸준히 노동이라고 인정받지 못했던 노동일지라도 모두의 노동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김훈 작가의 책이 있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ㅎㅡㅎ) 제목이 인상깊어서 쓰고 싶었다. 밥벌이는 지겹다. 대한민국 사람들 대부분의 밥벌이는 흥미보다는 지겨움일 것이다. 어렸을 때는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통학러로서 (ㅜㅡㅜ) 평일 아침 2호선의 직장인들을 보면 이제는 대단해 보인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이기는 모든 노동자들의 정당한 노동이라는 가치를 서로가 인정해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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