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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y Aug 25. 2023

사랑은 함께 노를 젓는 것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작

 문학 좀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보았을 '안나 카레니나'. 이번 상반기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라는 과목을 수강하게 되며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작품이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웠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비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나에게 훨씬 더 쫀득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여운이 깊다. 상반기를 대표했던 책인 '안나 카레니나'를 리뷰하면서 또다른 하이라이트가 기다리고 있을 하반기를 준비해보자!


(스포 o)

 이 책의 줄거리는 크게 세 쌍의 커플들로 이루어져 있다.

(1) 안나 카레리나 & 카레닌

 페테르부르크의 고위 공직자인 카레닌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아내인 안나는 '세료자'라는 아들을 낳고 살아가고 있다. 유부녀이지만 아름다운 외모와 품격을 지니고 있는 안나는, 오빠인 스테판 오블론스키 집안의 불화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모스크바에 방문했다가 '브론스키'라는 젊은 장교와 사랑에 빠진다. 이들의 밀회는 극에 치달아, 결국 러시아에서의 모든 위신을 버리고 해외로 도피하며 아이를 낳기까지에 이른다. 하지만 도피 이후, 안나는 계속해서 브론스키의 감정이 변했다고 여겨 그를 의심한다. 이뿐만 아니라 서로가 포기해야 했던 것들에 더욱 집중하게 되며 이들의 관계는 점점 악하되고, 결국 안나는 기차역에서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며 이들의 인연은 끝이 난다.

(2) 레빈 & 키티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귀족 레빈과 그가 연모하고 있는 젊은 아가씨인 키티. 도시의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레빈은 키티에게 청혼하기 위해 도시로 돌아오게 된다. 스테판 오블론스키와 절친한 친구였던 레빈은, 키티가 스테판의 처제라는 점을 통해 그녀와 접점을 만들고자 했으나, 키티의 마음은 이미 '브론스키'라는 장교에게로 향해 있다. 

 레빈에게는 다행으로, 브론스키는 어느덧 안나에게 관심을 돌리며 키티는 버림받은 신세가 되었고, 이후 시간이 흘러 결국 키티는 레빈을 사랑하게 되고 결혼에 성공한다. 서로에게 익숙한 환경이 아니었기에 갈등도 존재했지만, 이들은 아이를 낳고 시골에서의 삶을 영위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3) 스테판 오블론스키 & 둘리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는 스테판은 능글맞은 성격으로 사교계에서도 인기가 많다. 동시에 형편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 돈 씀씀이와 불륜 관계는 오히려 그의 가정을 불행하게 만든다. 스테판이 가정교사와 외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둘리로 인해 가정은 큰 위기를 맞지만, 스테판의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가정은 겨우겨우 봉합된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다양한 금전적 문제에 휘말리고 난 이후이다.



1) 물에 비친 나를 사랑했던 거야

 안나와 브론스키는 서로에게 열정적으로 빠져든다. 사랑에 빠진다? 금단의 관계에서 시작된 이 둘의 감정을 보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그들은 정말 '서로를' 사랑했던 것일까?

 어쩌면 브론스키는 안나의 아름다운 외모와 타고난 매력 외에도,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더 구미가 당겼을지도 모른다. 안나는 아름답고 정숙한 유부녀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든다면, 명성과 위신이 중요한 그녀가 자신에게 빠진다면 그건 정말 짜릿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꺾기 어려운 존재일수록 승부욕과 정복욕을 가지기 마련이다. 저토록 매력적인 여자가 사랑해주는 매력적인 '나'라는 이미지를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안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사교계에서 많은 이들의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하지만 안나는 이미 한 남자의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자신에게도 여전히 뜨거운 열정으로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는 남자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이미지를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온전히 상대방만을 향한 감정이 모든 것을 차지하기는 힘들다.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마음과 동시에 상대방을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나르시시즘의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2)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사랑은 변한다. 책 속에서 브론스키의 심정을 잘 표현해 준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그녀를 그리도 매력적이게 만들었던 요소들이, 이제는 도리어 하나하나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들로 바뀌었다'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는 자신을 떠나는 이영애에게 외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그리고 피천득은 '인연'에서 아사코와의 세 번째 만남은 없는 것이 나았다고 말한다.

 이것이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을 보여 준다. 사소한 부분이라도 끊임없이 주변 환경이 바뀌게 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심적 변화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제아무리 숭고한 마음이더라도 변화 앞에서는 별 수 없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서로를 향한 뜨거운 열정에 불탔겠지만, 서로만을 생각하는 시간이 지나고 그들의 마음이 변하다 보면 이제는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처음 사랑에 빠졌던 때와는 달리 이 사랑으로 얻은 것이 아닌, 잃은 것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브론스키는 군에서 전역해야만 했고, 안나는 한 때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은 채 칩거 생활을 하며 아들도 보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또한 외국에 나가서도 같은 러시아인들과의 친목 도모가 불가능해졌다. 이들은 애써 단점을 외면하며 서로에게 좋았던 날만을 가지고 사랑하려 해 보지만, 이게 어디 쉬울까? 결국 그들 사이에는 조금씩 조금씩 앙금이 생긴다.

 변화할 수 밖에 없는 관계 속,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면 결국 괴로움이 남는 것만 같다.



3) 그래도 사랑이 필요한 이유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영원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언젠간 마음이 변할 사랑이라면,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찾은 답은 '아니다'이다.

 마음이 변한다고 해서 사랑이 식었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하는 방식이 변화할 뿐이다. 변화하는 기반이 얼마나 튼튼한지, 서로의 신뢰가 얼마나 굳건한지가 관계의 존속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안나와 브론스키는 서로의 불신 아래 맺어진 관계이다. 안나는 자신의 남편을 배신했다. 브론스키는 어머니의 끊임없는 회유라는 압박 속에 살고 있다. 서로에 대한 기반이 온전히 갖추어져 있어도 모자랄 판에 이들은 모래성 위에 쌓인 관계와도 같았던 것이다.

 반면 책 속 다른 커플인 키티와 레빈을 살펴보자. 이들도 결혼 생활을 하면서, 청혼할 때만큼의 뜨거운 열정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는 않다. 연인이 아닌 부부로써 한 가정을 꾸려 나가며 이제는 각자 해야 할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빈은 자신의 아내에게 너무 모진 말을 했다 싶으면 하인들 몰래 아내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남편이다. 그리고 키티는 자신의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존중할 수 있는 아내이다. 앞으로도 이들의 사랑의 형태는 변하겠지만, 서로를 사랑한다는 점은 변치 않을 것이다. 각자의 기반이, 가족이 굳건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4) 삶에서 중요한 건 스포트라이트보다는 초점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레빈'이라는 인물이다. 어째보면 나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낯을 많이 가리고, 기존 사교계에 썩 능숙한 인물이 못 된다. 사람들 앞에서 뚝딱거리기도 하고, 이 때문에 집에 와 홀로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깊었던 것은 그가 결혼식을 준비하며 보인 태도였다.

 그는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는 드물게) 무신론자이며, 자신의 결혼식은 여타 사람들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하지만 막상 결혼 준비를 하자,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지의, 자신이 꿈꾸던 결혼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복해했다.

 이걸 보며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생각을 되짚어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나의 인생은 무엇인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설정한 우상을 보며, 혹은 tV나 영화를 보며 자신은 주인공과 같은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다. 나는 영화배우만큼 대단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고, 억만장자만큼 많은 돈을 가진 것도 아닌, 어렸을 때는 영화에서 쳐다 보지도 않던 조연 중 한 사람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프러포즈도, 결혼식도,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럼 그 사람은 실패한 걸까? 확실히 그 사람은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다. 히트작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레빈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삶을 꿈꾸었지만, 결론적으로 그는 세상의 유부남과 별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레빈은 행복하다.

 결국 삶의 행복에서 중요한 것은 주조연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카메라는 나를 비추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를 바라봐 주는 곁의 사람 한 명이 그 카메라로부터 쏟아지는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만큼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다면 말이다.

 나는 책 속에서 레빈이 가장 현실적이고 현대 정서에 맞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 그 외 이야기들

(1) 스테판 오블론스키와 그의 아내 둘리

 이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남편은 잘생긴 호남형 인간이었지만, 둘리는 평범한 여인이었다. 그것도 몇 번의 출산을 겪으며 아가씨들과는 달리 거의 아줌마가 되어 버린 외양을 가진 여인 말이다! 남편은 여러 여자와 바람을 피웠고, 둘리는 이 사실에 격노한다. 게다가 소설 말미에 이르게 되면 스테판은 돈도 거의 다 써 버리 나머지 집안 살림을 거의 거덜내 버리고 만다.

 이 부부의 이야기를 읽으며, (물론 둘리의 뜻에 따라 결혼이 진행된 것은 아니겠지만) 한 사람의 내면과 생각을 들여다 보기 이전에 그 사람의 외양을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나, 단순한 외양적 특성에 따라 /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나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은 참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안나의 죽음 이후에도 삶은 이어진다

 이 책은 안나의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그 점이 좋았다. 보통 소설에서는 극적인 연출을 위해 주인공의 죽음으로 결말을 맺고, 주변인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주인공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안나의 죽음 이후에도 사람들은 '아무튼' 살아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안나의 죽음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단순히 '불륜은 나쁜 것이다'는 교훈만 얻기에는 책이 너무 길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느낀 건 한 가지다. 

 우리는 행복을 신나는 서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책에서의 행복은 잔잔한 물결이 흘러가는 호수 속 노젓기라는 것이다. 단순히 나의 능력으로 멋있게 파도를 타는 것이 아니라,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과 얼마나 조화롭게 노를 젓는지, 물결을 흐트러트리지 않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비단 연인 뿐만이 아니다. 내 보트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그때그때 다를 수 있다. 친구, 가족, 연인... 상대에 관계없이, 잔잔한 호수 속 즐거운 뱃놀이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우리 삶의 행복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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