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ppy Sep 03. 2023

어바웃 1인분

어바웃 시리즈

 식당에 가서 밥을 시킨다. 1인분을 시켰을 때, 그만한 양이 나오면 적정 / 그보다 더한 양이 나오면 푸짐 / 그보다 적은 양이 나오면 야박하다고 생각하는 게 사람들의 대부분이다. 오죽하면 편의점 도시락을 홍보하는 연예인의 이름을 따 푸짐한 것에는 '혜자', 야박한 것에는 '창렬'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까지 했을까?

 그렇다면 '나'는 과연 1인분을 하고 있을까?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들게 되었다.

 대학을 집에서 다니는 '통학러'에게 쟁취할 대상은 바로 자취이다. 나도 통학러인 만큼, 가장 가까운 역 기준 서울대입구까지는 5호선 5정거장 - 8호선 3정거장 - 2호선 10정거장 - 셔틀로 이동 이라는 어마어마한 통학의 길이 펼쳐졌다. 1학기 때는 1교시 수업을 듣기 위해 6시에 기상해 7시에 집에서 나가는... 고등학생보다 더 부지런한 삶을 살아내기도 했다.

 수많은 직장인들과 함께하는 등굣길이 전부는 아니다. 저녁 약속에 가서도 끊임없이 막차 시간을 계산해야 하고, 막차 시간이 끊기면... 어마무시한 택시 야간할증이 기다리고 있다. 또 학교에는 수업만 들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틈틈이 동아리 활동, 학교 활동 등 학교 근처로 향할 이유는 많기 때문에 통학러의 삶은 결코 쉽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즈음 나는 본격 자취 찡찡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오늘은 기어이 10페이지짜리 자취 문서를 만들어 엄마에게 선보이기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엄마와 많은 이야기 (를 가장한 언쟁으로 시작해 다행히 이야기로 끝남)를 나누게 되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느낀 점이 많아서 글을 쓰고자 했다.

 엄마가 자취를 반대?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점이 있었다. 바로 내가 1인분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첫째, 1학기 때의 나는 통학을 한다는 이유로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평일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약속이나 밴드 합주가 있는 날에는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렇다 쳐도, 주말에는 약속에 나가거나 그냥 쉬느라 자연스럽게 가사일을 돕지 않을 핑계가 생겼다. 

 통학은 분명히 힘들다. 그리고 이야기 도중 엄마도 내 통학길이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 눈물날뻔 통학 진짜 힘들어요) 같이 신나게 놀다가도 먼저 나와야 하는 슬픔, 애매하게 긴 통학길을 거치고 나면 하루가 이미 다 가 버리는 저녁 시간의 박탈... 통학의 불편함은 꽤 많기 때문에 부모님은 가정에서 나의 나태함을 눈감아 주셨다.



 둘째, 나는 돈을 전혀 벌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절박하지 않은 이상 그냥 학교생활에 집중하며 다니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하신 것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알바나 과외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주변의 대부분은 과외를 통해서 돈을 조금씩 벌고 있었지만, 아직 대학 1학년이라는 이유로 딱히 돈을 벌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심각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얼마 전, 동네 음식점에서 같은 중학교를 나온 친구를 보게 되었다. 대충 얼굴만 기억이 나는 정도였는데, 그 친구는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많은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어린아이들을 피해서 음식을 나르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기분이 묘했다. 어렸을 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멀리 떨어진 어른들이라는 기분만 들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누군가의 일하는 모습을 보니까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반성 아닌 반성을 하게 되었다.

 올해 상반기를 되돌아보면 나는 참 많은 걸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문득 내가 1인분을 하면서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릴 수 없었다. 학생으로서 많은 활동을 하고 좋은 학점을 받는 것만이 성인으로서의 1인분은 아닌 것 같다. 돈을 버는 게 1인분의 지표가 될 수는 없으나, 성인이라는 건 그 외의 귀찮고 하기 싫은 일들까지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 가장 접근성이 높은 방법인 설탭을 시작해 볼까 한다. 시급이 짜고 돈을 얼마 벌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기도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 같아서이다. 물론 설탭을 한다고 1인분의 성인이 되는 건 아니지만 2학기를 보내면서 더 치열하게 고민해 보고 싶다.

 성인이 되고 나는 나 자신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혜자'까지는 아니어도 1인분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1인분은 무엇인가요?

작가의 이전글 사랑은 함께 노를 젓는 것 [안나 카레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