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선 감독 작
(줄거리, 스포 o!!!!)
언젠가 빛 보기를 기다리며 연기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 남편 현수 (이선균)와 출산이 가까워진 아내 수진 (정유미). 그러던 어느 날, 현수는 '잠'을 자던 중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단순 잠꼬대가 아니라 심각한 사태임을 인지한 수진은 남편을 데리고 수면 클리닉을 방문한다. 좋은 약도 먹고 생활 습관도 바꾸어 보지만 위험한 밤은 계속되어 간다.
여기에 갓 태어난 아이까지 더해지며 더욱 긴장감이 고조된다. 자물쇠를 걸고, 화장실에 있어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 속 수진의 어머니는 용한 무당을 불러온다. 남자 하나가 더 붙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수진은 아무래도 얼마 전까지 아랫집에 살던 할아버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공교롭게도 아랫집에 새로 이사 온 모자는 할아버지의 딸과 손자였고, 얼마 전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는 소식.
하지만 이런 상황을 제쳐두고서라도 수진의 상태는 점점 이상해진다. 결국 수면클리닉에 입원한 현수와 정신병원에 입원한 수진. 뇌파가 정상으로 돌아왔기에 더 이상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현수와는 달리 수진은 아직 이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며 초조해 보인다. 현수의 몸에서 나가라고 흉기를 들며 협박하는 수진에 결국 현수의 몸 속 있는 것 같은 할아버지는 '이제 떠나겠다'고 한다. 과연 이들의 '잠'은 왜 고통받아야 했던 것인가?
[개인적인 소감]
단순히 취향 문제에서 생각한다면, 나는 이 영화가 너무너무 좋았다. 긴장감 넘치는 화면과 주인공들의 등골 서늘한 연기를 보는 게 참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요소들을 설치해 놓고 수습할 역량이 되지 않아 애써 열린 결말을 만든 것이 아닌, 끝까지 관객들이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도록 만든 것 같아 더욱 좋았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에서 현수의 몸에 정말 할아버지가 있었던 것인지, 혹은 현수가 수진을 안심시키기 위해 연기를 했던 것인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연기라고 생각한다. 극 중 현수의 직업이 배우였으며, 기존에 연기로 수상했던 이력을 영화 초반부에 비추어 준 것으로 보아 이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말 뿐 아니라 전체적인 이야기의 전개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더 다루도록 하겠다!
[이상한 건 누굴까?]
영화 초반에는 '현수'의 이상행동이 주가 된다. 하지만 영화가 전개되면서, 내 눈에 이상하게 비친 것은 아내인 수진의 모습이었다. 남편의 수면장애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과 집착은, 후에 아이를 낳게 되며 모성애까지 더해지며 더욱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사람을 흉기로 협박하고 상해를 가하면서까지 자신의 "딸"을 지키고자 하는 수진의 광기는 한국 민속신앙과 연결되어 기괴하게 뒤틀린 분위기로 다가온다.
수진의 모습을 보니, 과연 영화 초반에 나왔던 현수의 수면장애 증상도 과장된 것이 아닐까? 이것도 수진의 망상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아직 이상심리학 초반이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환청/망상 등의 증상을 동반하는 정신장애를 앓고 있지 않을까... 라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누가 이상했는지'에 대한 결론을 확실히 내리기는 어렵다. 이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를 감상하고 짧게 생각해 본 바로는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함께'에 대한 집착]
극 중 수진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인물이다. 또 영화 초반부터 현수와 수진의 집에 걸려 있는 가훈은 '둘이 함께라면 부부는 못할 것이 없다' 이다. 이는 영화 중간중간 계속해서 등장하며 멀어지고 있는 현수와 수진을 억지로 한 자리에 묶어놓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수진의 이런 모습이 집착 같았다.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자라나며 느꼈을 슬픔, 혹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항상 함께해야 한다'는 집착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말 뿐이다. 극 중반 자신의 수면이상의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집에서 5분 거리에 방을 구해 거기서 잠을 자겠다는 현수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던 것처럼 말이다.
부부는 항상 '함께'여야 할까?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답은 없다. 이는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 많은 시간 함께하고 의지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이지, '떨어질 수는 없다'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집착은 '부부 사이의 지켜야 할 덕목'이라는 미명 하에 강조되었던 수진의 생각에서 잘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극의 마무리로 가면 이제 수진의 방향성은 딸에게로 옮겨 간다. 아랫집 여자 (극 중 전 아랫집 할아버지의 딸)에게 흉기를 들고 협박하며 "네 아빠가 남편 몸에서 나가든 나가지 않든, 우리 딸이 사소하게 넘어져서 다치기만 해도 난 그걸 네 아빠 탓으로 돌릴 거야. 당장 너를 찾아가서 죽여버릴 거야."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제 그녀의 복수는 지향점을 잃었음을 보여준다.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시작했던 그녀의 움직임은 이제 철저한 증오와 폭력으로만 남게 된 것이다. 어느 것이든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면 방향성을 잃기 마련이다.
[코리안 오컬트?]
<검은 사제들>과 같은 코리안 오컬트를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작품성도 좋았지만 이 영화의 분위기 자체도 너무 좋았다. 특히 한국의 주술, 무당과 같은 소재와 연합해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는 측면이 특히나 인상깊었다.
기괴한 뒤틀림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코리안 오컬트적인 영화 <잠>은 올해 본 영화 중 손꼽게 좋았던 영화로 남을 것 같다!-!
글이 짧지만... 기록에 의미를 두고 써 봤어요 ㅎㅡ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