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집에서 나서니 어느새 날씨는 옅은 입김이 나오는 날씨로 변해 있었다. 정말로 겨울이 오고 있구나...를 마주하며 바쁘지만 꼭 써야겠다고 다짐한 오늘 글의 주제는 '근시안'이다.
'근시안적인 사고를 버려라' '나무가 아닌 숲을 보아라'는 우리가 살아가며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말이다. 세상을 넓게, 그리고 멀리 바라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태도가 언제나 좋다고만 할 수 있을까?
요 며칠 나름대로 정신없고 심란한 나날을 보내며 든 생각이다. 나름의 결론을 내려보자면, 우리는 감사함을 느끼기 위해, 버티기 위해 때론 근시안적 사고가 필요한 것 같다.
우리의 남은 인생, 거쳐가야 하는 단계를 죽음까지 쭉 바라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압도당할 것만 같다. 수많은 시험을 거치고, 대학에 들어가고, 취업을 하고, 누군가와 함께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하고, 노후를 보낸 후 마무리짓는 인생을 떠올리면, 굵직한 키워드들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인간관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가족, 친구, 연인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계속해서 미래만을 그려 나가게 될 때가 있다. 그래서 더 걱정되는 마음에 잔소리를 하기도 하고, 꾸중을 하기도 한다. 부모님이 공부를 하지 않는 자녀가 걱정되어 '공부하라'고 조언하고,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냈던 친구가 무기력해져 있는 것을 걱정해 '나가서 뭘 좀 하고 자격증 좀 따라'고 조언하고, 더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하고 싶은 연인에게 '이런 습관을 좀 고치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장기간을 떠올리면 굵직굵직한 사건들, 그 중에서도 내가 힘들 수 있는 일들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한 강의에서는 유리병에 가능한 많은 돌을 담기 위해서는 모래가 아닌 커다란 돌을 많이 담은 후 작은 조약돌, 마지막으로 모래로 채워야 병이 온전히 채워진다고 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어떠한 형태의 병을 채우기 위해서 큰 돌을 찾아 헤멘다.
여기서 내가 최근에 답을 찾지 못해 괴로워했던 문제들이 떠오른다. 큰 돌을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사고, 모래를 우리 생활의 작은 요소인 근시안적 사고라고 칭한다. 큰 돌을 채우려다 보니, 모래에 소홀해진 것이다. 큰 돌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큰 돌만으로는 나의 유리병을 온전히 채울 수 없다. 때로 우리는 모래를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지프 신화가 나온다.
시지프의 형벌은 끝이 없다. 만약 그가 형벌의 끝을 생각하고 이 형벌을 견딜 생각을 했다면 시지프는 이 형벌을 완수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이 형벌을 '죽기 전까지'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죽음은 정답이 될 수 없다. 이는 현실로부터의 도피이며, 근본적 해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시지프가 되어 본다면 어땠을까? 나는 누구보다 근시안적으로 살았을 것이다. 이 돌을 힘겹게 굴려도 이내 다시 떨어질 먼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내딛는 발 한 걸음에 누구보다 집중하며 돌을 굴렸을 것만 같다. 원시안은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지만, 근시안은 우리가 말 그대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만 같다.
도입부에서 말했던 인생의 테마로 되돌아온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인생은 너무나도 가혹하고 힘들다. 지금 내가 이 일을 완수해도 전체 인생에서 완수해야 하는 임무의 1/100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기억한다면 그건 아마 행복한 인생이 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내가 오늘 이 과제를 제출하고 나 자신에 대한 보상으로 오랜만에 맛있는 야식을 먹는다면? 혹은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 수 있다면? 더 가까이는 오늘 점심 메뉴에 내가 딱 좋아하는 오므라이스가 나온다면?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되짚어본다. 공부하지 않는 자녀의 미래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엄마아빠를 위해 어깨를 주물러 주는 자식이라면, 지친 부모님을 위해 조그마한 서프라이즈나 저녁 한 끼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센스 있는 자식이라면 조금 더 기특해지지 않을까?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되더라도 지금까지 좋은 추억을 만들었고, 만날 때마다 나를 웃게 만들 수 있는 친구나 연인이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고맙지 않을까?
이게 요즘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원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돌만을 찾다가 모래를 놓칠 수도 있는 생각들이다. 최근 엄마가 나에게 팁을 하나 알려 주셨다. '앞으로 1주일만 더 한다고/본다고 생각해'
지난 주 전선 과목 하나를 드랍할까 진지하게 고민했을 때에도 (ㅎㅡㅎ 드랍 안 했습니다) '한 번만 더 간다고 생각하자'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임하니 훨씬 편해지고 숨통이 트였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의 마음가짐으로 임하면, 훨씬 홀가분해지고 상대방의 행동 하나하나를 얽매지 않으며 그 자체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돌굴리기의 가혹한 인생 속 우리 가까이에 있는 모래들을 바라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어느덧 입김이 나오는 요즘은 더 그렇다. 모두들 멀리 있는 횡단보도 초록색만 보지 말고 얼어 있는 땅 조심해서 밟고 다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