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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y Oct 05. 2023

옛날 즈음이 그리워지는 요즘이야 [추억의 노래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독 옛날 팝송, 옛날 노래들을 좋아했다. 화려하고 뛰어난 지금의 음악도 좋지만, 서정적이고 섬세한 과거의 음악에서는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시절의 어떤 향수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80, 90년대 한국의 가요들은 지금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EDM 요소는 거의 없이 '오리지날'로 승부하던 시대,

날이 갑자기 쌀쌀해진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보자니 한국의 옛날 즈음을 떠올리고 싶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들을 몇 가지 적어 보았다.


사랑일기 (With 하덕규) - 조성모

새벽 공기를 가르며 날으는 새들의 날개 죽지 위에

첫차를 타고 일터로 가는 인부들의 힘센 팔뚝 위에

광장을 차고 오르는 비둘기들의 높은 노래 위에

바람 속을 달려 나가는 저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

사랑해요 라고 쓴다 사랑해요 라고 쓴다

...

가을 아침이 생각나는 노래다. 특히 세련된 도시보다는 어딘가 투박하고 정겨운 동네 골목이 떠오른다.

가사도 그런 분위기이다. 일상 속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보다는, 그냥저냥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소시민들을 따스한 눈길로 담은 듯한 가사와 잔잔한 멜로디는 조금씩 쌀쌀해지는 가을 아침, 높은 하늘을 올려다 보며 듣기 딱 좋은 노래 같다.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 변진섭

불빛 없는 거릴 걸으며 헤메이는 너에게

꽃 한 송이 주고 싶어 들녘 해바라기를

새들은 왜 날아가나, 바람은 왜 불어오나

내 가슴 모두 태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고등학교 3년 중 절반 정도 나의 프로필 뮤직을 책임졌던 로맨틱한 곡...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다정하게 말하는 가사가 너무도 좋아서 정말 수도 없이 들었다. 

 변진섭의 목소리는 내게 특별하다. 특별한 기교나 높은 음을 내지 않지만, 포근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목소리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변진섭의 목소리는 내게 80년대 그 자체 같다...

 이 노래를 듣다 보면 문득 해바라기가 좋아진다. 해바라기는 한 번도 받아본 적도 없고 준 적도 없는데! 이 노래와 함께 해바라기를 선물해준다면 그것도 나름 운치있을 듯 하다.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 김건모

이젠 나의 희미한 기억 속에 너는 점점 더 멀어져 가고

너의 슬픈 미소만이 나의 마음 속에 가득 남아 흐르고 있어

이렇게 비가 오는 밤이면 너를 나를 더욱 슬퍼지게 해

언제나 즐겨듣던 그 노래가 내 귓가에 아직 남아 있는데

 김건모는 김건모다... 그의 목소리는 얇은 듯 높으면서도 김건모만의 감정이 잘 살아 있는 듯하다. 가을이라기보다는 늦여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 처량하게 소주 한 병 까는 무드지만, 우울한 상황에서도 청량하게 노래하는 김건모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 좋다.



내사랑 내곁에 - 김현식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 때

이렇게 아픈 그대 기억이 날까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 줘 ,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힘겨운 날에 너 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혹자는 결말을 몰라야 더 감질맛 난다고 하지만, 때로는 결말을 알아 더 절절하게 와닿는 경우가 있다. 과음으로 인한 간경화로 사망하기 직전 녹음한 이 곡에는, 처절하면서도 애절한 김현식의 목소리가 잘 드러나 있다.

 '내사랑 내곁에'라는 제목과는 달리 지금 사람들의 곁에는 없는 가수이지만, 화려한 기교 대신 투박한 손길을 건네는 듯한 목소리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가수이다.

 개인적으로 이 노래를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꼭 들었던 것 같은데, 가을날 오후 햇빛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들었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쓸쓸하면서도 운치 있는 김현식의 목소리와 가을의 날씨는 참 잘 어울린다. 개인적으로 한겨울에 들어도 참 좋을 듯하다!



매일 그대와 - 들국화

매일 그대와 아침 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

매일 그대와 잠이 들고파

매일 그대와

 나에게는 약간 거친 '상남자'의 이미지로 남아 있던 들국화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는 곡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일어나자마자 눈을 맞추고, 함께 잠들고 싶다는 소박하면서도 따스한 고백이 잘 담겨 있다.

 조금은 쌀쌀해진 가을 햇살을 받으며 일어난 아침,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면 이런 곡일까? 현실은 아닐 것 같기는 하지만.. ㅎㅡㅎ 그래도 들국화의 이런 따스한 들꽃 감성이 참 좋다.

 나에게는 좀 비슷한 느낌의 곡은 김창완 밴드? 의 '너의 의미'라는 곡이다. 둘 다 잔잔하게 사랑하는 상대방을 '자신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잘 묘사해 주고 있는 것 같아 함께 들으면 비교하는 재미가 나름대로 쏠쏠하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 윤도현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 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 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

 마무리는 중학생 때인가 가창 수행평가 곡이었던 ...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을 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가을은 왠지 모르게 센치해지는 계절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생각이 많아지고, 나만의 생각에 젖어들 수 있는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래 속 인물도 '그대'를 기다리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지, 홀로 설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생각에 빠진다.

 노래에 나오는 '우연한 생각'이라는 단어가 참 좋았다.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각에 빠지고 고민할 수 있는 계절인 가을에,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이 노래를 들으면 한 번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보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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