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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y Feb 28. 2024

파헤치는 것과 해치는 것 [파묘]

우리나라의 무속신앙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본 적 있는가?

나는 현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무속신앙과는 거리가 멀다. 굿을 본 적도 없고, 작명도 그냥 우리 아빠가 해 주셨으며, 끽해봐야 길거리에서 재미삼아 사주를 본 것이 전부다.

그러나 <검은 사제들>부터 시작된 오컬트, 혹은 무속/민속신앙과 관련된 영화는 꽤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이번 <파묘>도 망설임 없이 보러 갔다.





[줄거리] 스포 0

무당 화림 (김고은)과 봉길 (이도현)은 어느 날 LA에 있는 '날 때부터 부잣집' 이 겪는 기이한 사건을 의뢰받게 된다.

엄청난 부잣집이니만큼 확실한 수익을 챙길 수 있을 것... 화림은 이 집안의 장손들이 겪는 현상은 선조의 묘가 잘못된 곳에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며 파묘와 이장을 제안한다.

무덤을 파헤치고 관을 옮기기 위해서는 풍수사 상덕 (최민식)과 장의사 영근 (유해진)이 필요하기에, 이들은 돈을 위해 힘을 합친다.

하지만 묘가 있는 곳에 도착한 상덕과 화림의 얼굴이 심상치 않다. 간단한 파묘와 이장이 아닌, 무언가가 잠들어있다!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묘는 굿과 함께 진행된다.

절대 관을 열지 말고 화장해 달라는 유족의 아이러니한 부탁과 함께 일은 무사히 끝나나 싶었지만... 파헤쳐선 안 될 것을 캐내어 해치는 존재가 사람들을 습격하기 시작한다.

한국적인 공포


사실 나는 외국의 공포영화들이 그렇게까지 공포스럽지는 않다.

신발 신고 침대에 눕는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데 그곳의 공포는 더더욱 동떨어져 있다. 물론 생긴 게 무섭긴 한데... 별로 공감되는 공포는 아니다. 그저 깜짝 놀라는 것과 흉측한 몰골, 그리고 어두침침한 배경과 음산한 음악이 주는 공포를 느끼는 게 대부분의 외국 공포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외국의 공포영화 중에서도 가끔 정말로 무서운 게 있다. 어떤 공감대가 형성되는 순간 무서워진다. 하물며 한국식 공포는 끔찍한 몰골을 제외하고라도 충분히 무섭다.

굿을 할 때의 긴장감과 낯섦과 익숙함의 공존,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을 풍수지리와 각종 민속신앙들까지... 우리가 공감할 만한 요소가 충분히 들어있다. 막판에 가서 나오는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내용은 단순히 미신이라고 여기는 분야뿐 아니라 민족이 공유하는 사실까지 첨가되며 현실적인 공포감을 조성한다.

익숙함과 낯섦의 절묘한 조화는 한국적인 공포를 느끼기에 좋았다.


사필귀정과 권선징악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사필귀정과 권선징악을 느끼게 된다.

영화 초반, 이 네 사람들이 한 팀을 꾸리게 만든 의뢰인의 무덤은 가장 기이한 곳에 세워져 있었다. 손자는 할아버지의 무덤 터는 당대 풍수지리를 잘 안다고 유명했던 한 스님으로부터 추천받았다고 말했으나, 사실 이 스님은 일본인이었다.

'밑도 끝도 없는 부자'의 기원은 바로 이 할아버지, 즉 유명한 친일파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랬기에 묫자리 역시 일본의 유명한 스님의 말을 따른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악터를 추천해 준 것일까?

영화를 보면 알게 되지만, 사실 이 할아버지의 무덤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었다. 조선의 허리 (풍수지리적으로는 정기)를 끊기 위해서 일본 장수의 시신을 매장한 다음 부유한 친일파의 무덤을 위에 덮어 독립운동가들의 '파묘'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무덤의 잘못된 기운으로 인해 후손들은 고통받기 시작한다. 천황의 무궁한 영광을,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여러 친일 행위를 저질렀던 인물은 큰 부를 축적했을지는 몰라도 울음을 그칠 수 없는 아이와 매일 환청에 시달리는 후손을 보게 된 것이다.

나중에 이 영화의 해설을 보며 추가적으로 알게 된 것이지만, <파묘>에는 상당히 독립운동의 키워드가 많이 들어가 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독립운동가에서 유래했고 (ex. 이도현 - 윤봉길) 차 번호 등도 항일에 중요한 키워드가 되던 날짜였다. 그런 의미에서 감독은, 나라를 버렸던 친일 행위는 어떤 식으로는 그 업보가 돌아온다는 하나의 사필귀정이나 권선징악의 키워드를 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두 번의 테마


이 영화는 크게 두 개의 스토리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는 의뢰를 받고 파묘를 진행하는 친일 가문에 관한 것, 그리고 두 번째는 그 밑의 첩장 (무덤이 겹쳐셔 있는 것)이 발견되면서부터 시작되는 일본 악귀와의 싸움이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스토리가 훨씬 긴박감 넘치고 재미있었다. 두 번째 스토리는 예상과 다른 대로 재미있었지만!

두 개의 큰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영화가 더 입체적으로 변하고, 첫 번째 스토리로는 영화 끝까지 이어가기 어려웠을 것 같아 좋았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의 정기를 막기 위해 곳곳에 말뚝을 박아 두었다는 이야기와 무속 신앙 그리고 각종 풍수지리까지 만나니, 오로지 한국이 만들 수 있는 오컬트를 본 것 같아 흥미로웠다.

이외에도 현재와 과거의 절묘한 조합은 신선했다. 온몸에 문신을 하고 헤드셋을 한 트렌디한 이도현의 모습과, 컨버스를 신고 굿을 하는 김고은의 모습 등이 참 인상깊었다.

사실 이 감독의 전작인 <검은 사제들>, <사바하>를 모두 관람해 보았을 때 주관적인 느낌으로 <파묘>가 1등이라고 할 순 없지만, 이런 종류의 영화가 계속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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