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사람들이 추천해 준 책들을 차근히 읽기 시작했다.
프랑수아즈 사강..
난 프랑스 문학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번역이 되어도 남아 있는 것 같은 불어 특유의 콧소리나 젠체나 딱히 정이 안 간다. 그래도 이 책은 좋았다. 자세히 읽지 않아서 더 좋았던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누구나 성장의 과정에서 맞닥뜨릴 법한 감정으로 남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좋았다.
| 책 줄거리
18살 주인공 세실은 바람둥이 아버지 레몽과 함께 프랑스 남부 해안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다. 바람둥이인 레몽은 젊고 아름다운 애인 엘자와 함께 휴가를 즐긴다. 그러던 중, 어머니처럼 따르던 아버지 레몽의 옛 친구 안이 방문하면서 분위기는 전환된다.
안은 지적이고 냉철한 여성으로, 레몽과 곧 연인이 되고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세실은 자신의 자유로운 생활이 억압받을 것을 두려워하고, 이 결혼을 방해하려는 계획을 꾸민다. 아버지의 전 애인 엘자를 이용해 레몽의 마음을 흔들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실의 계획은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고, 이 과정에서 결혼을 약속한 레몽의 바람을 목격한 안은 큰 충격을 받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이후 세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죄책감과 슬픔에 사로잡히며, 처음으로 진지한 ‘슬픔‘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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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떤 시기, 특히 폭발적으로 성장/변화를 겪는 시기에 흔히 유독 기억에 남는 사람을 마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게 이성적 끌림이었다면 첫사랑이라는 이름이 될 수도 있고, 배움의 의미였다면 은사가 될 수도 있고 etc..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과 느낌이 사람들에 따라 다르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내 인생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와 관계없이 a를 떠올리면 기억/사실/정보가 떠오르다가 b를 떠올리면 어떤 감정만 떠오른다. 누가 더 좋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b가 내 인생에는 더 인상깊은 인물로 남을 것이다.
주인공 세실에게 본인의 새어머니가 될 뻔했던 안은 후자의 존재였다는 생각이 든다. 방탕하고 격의 없이 지내던 세실 부녀와는 달리, 안은 프랑스 사교계를 잘 알고 본인을 가꿀 수 있는 사람이다. 이지적이고 때로는 냉정한 안의 모습을 세실은 두려워하면서도 일면 동경하고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이중적인 감정을 가진다.
그러다가 정말로 식구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본인이 살아 왔던 방식은 안이 함께하는 가정에서는 성립할 수 없음을 알고 이 결혼을 무산시키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세실의 모습은 치기인 것 같기도, 또 한편으로 지나치게 냉정한 것 같은 안의 모습을 보면 용기인 것 같기도 긴가민가하다.
그러나 결말은 어땠나.. 결국 세실이 계획한 대로 안은 바람둥이 레몽의 외도 장면을 목격하고 큰 충격에 빠진다. 이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망가진 모습을 보이며 세실을 떠난 안은 그 길로 교통사고 (아마도 자살) 로 세상을 떠난다. 안의 장례식에서 세실은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낀다. 시간이 흐르고 세실 부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지만 세실은 안을 언뜻언뜻 떠올리곤 한다.
“마치 원래 정해져 있던 것처럼 이전과 같은 삶이 다시 시작되었다.
함께 있을 때면 아버지와 나는 함께 웃음을 터뜨리고 각자의 연애담을 늘어놓는다. 아버지는 나와 필리프가 플라토닉한 관계가 아닐 거라는 의혹을 품고 있고, 나는 아버지가 새 애인에게 많은 돈을 쓴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하다. 겨울이 끝나간다. 올해는 지난여름의 그 별장이 아니라 쥐앙레팽 근처의 다른 별장을 빌릴 것이다.
다만 파리 시내를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만이 들려오는 새벽녘 침대에 누워 있을 때면 때때로 그 기억이 나를 배신한다. 그해 여름과 그때의 추억이 고스란히 다시 떠오르는 것이다. 안, 안! 나는 어둠 속에서 아주 나직하게 아주 오랫동안 그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솟아오른다.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이름을 불러 그것을 맞으며 인사를 건넨다. 슬픔이여 안녕.”
세실이 안에게 느꼈던 감정은 무엇이었나?
이전에는 세실이 다른 이에게 느끼기 힘들었을 복합적인 어떤 것이 아니었나.. 본인이 선망하는 지적인 여성과 답답하고 냉철한 구속자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안을 인식하는 주축이 된다. 이전 세실이 보아 왔던 인물들은 이렇게 양가적인 감정을 그녀에게 선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랑과 미움을 함께 느끼는 대상을 다시 마주하고, 그 사람이 아버지의 연인이 되어 곧 자신의 새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상황은 세실에게 어떤 존재의 위협이자 공포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결국 세실은 안이라는 인물 자체보다는 그 사람이 본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 — 그 사람이 상징적으로 세실의 삶에 가져오게 될 변화 — 를 안을 통해서 보았던 것.. 세실은 이에 대한 해결책은 변화를 무마하는 것 (아버지의 외도를 안이 목격하도록 해 파혼하도록 하는 것) 이라고 생각했으나 이는 궁극적인 해답이 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와 안의 관계는 끝났지만 안은 죽었고 세실은 이로 인해 복잡다단한 죄책감을 느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떠올랐던 책 두 권이 있는데 그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조제 마우로 지 바스콘셀루스의 <나의 작은 라임 오렌지나무>
둘 다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데미안> 의 주인공 싱클레어가 친구 (사실자기였음ㅋㅋ) 데미안을 바라보며 느꼈던 복합적인 감정.. 그리고 데미안을 만났던 때가 싱클레어가 나름의 격변의 시기를 거치고 있었을 때라는 점
<나의 작은 라임 오렌지나무> 는 성장소설이라고 불리는 만큼 어떤 인간의 성장에 있어 한 인물이 어떻게 형상화되는지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였다. 특히 세실에게 안은 슬픔으로 남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주인공 제제에게 뽀르뚜가 아저씨는 사랑으로 남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랑하는 나의 뽀르뚜가. 오랜 세월이 흘렀어요.
저는 어느덧 마흔여덟 살이 되었답니다. 지금도 저는 종종 당신과 함께했던 행복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곤 합니다. 저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분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저는 당신이 예전에 그랬듯이 아이들에게 구슬과 딱지를 나누어 주고 있답니다. 당신은 저에게 사랑 없이 사는 삶은 무의미하다는 걸 알려 주는 분입니다.
아, 사랑하는 뽀르뚜가.
저는 당신을 잃고 너무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영원히, 안녕!”
공교롭게도 여기서도 “안녕” 으로 끝을 맺는다 ..!?
차이가 있다면 제제는 뽀르뚜가에게 작별을 고했다면 세실은 안이 불러일으키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맞아들이는 (bonjour) 인사였다는 점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를 생각해 보기에는 너무 피곤하구
사람한테는 살면서 유독 어떤 감정으로 남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그게 슬픔이든 기쁨이든..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사람을 떠올릴 때 내가 느끼는 그 감정이 ‘그 사람’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특성과 + 과거 내가 가졌던 복잡다단한 감정과 변혁의 투영이 혼합된 하나의 상징으로 인식하곤 하는데
어찌되었든 이런 감정으로 남은 사람을 떠올리며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조금 더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라는 느낌이 드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