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타의 정원 리뷰

[책리뷰 두번째]

by 구시현

제목: 리타의 정원

작가: 안리타

출판사: 디자인이음


“신이 얼마나 재능 있는지 잊게 될 때, 나는 바다를 본다." - 우피 골드버그 (미국의 영화배우)


바다보다 숲을 좋아하는 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을 때 주저 없이 나무들 곁으로 간다. ‘리타의 정원’ 또한 그럴 때 가끔 찾는 책이다. 초록빛 녹음과 상쾌한 미풍이 느껴지는 듯한 감각적인 묘사들을 보고 있으면 바쁜 현실 속에서 잠시 벗어나 고요해진 기분이 든다. 하지만 안리타님의 책들은 모두 우울감이 여기저기 숨어있기도 해서 너무 울적할 때 읽으면 눈물을 쏟을 가능성 또한 있다. (예전에 내가 그랬다) 그만큼 풍부한 감성에 깊게 몰입해서 보기 좋으나, 이성적인 기분이 강하게 들 때에 읽으면 너무 감정적이고 과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쉽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자연의 묘사나 감정과 자신만의 철학을 드러내는 표현력이 뛰어나서 매 차례 감탄을 하며 보게 된다. 마치 꼭꼭 숨겨진 비밀의 정원을 엿보는 기분. 나도 언젠간 이런 감각적인 글을 써보고 싶다.




아래의 글은 상쾌한 미풍이 불던 어느 봄에 의릉 산책길에 잠시 앉아 끄적인 글이다. 리타의 정원과 어울려 꺼내본다.


이 고요함 속에서 바람이 저 멀리서부터 가까워져 오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마치 바람이 의지를 가진 듯하다. 저 멀리 북동쪽에서부터 다가오다가 중간에서 멈춰서 우회하고, 북서쪽에서부터 다가오다가 내 앞의 소나무들만 흔들고 지나가는 것이 바람이 이리저리 신나서 춤추며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다. 바람이 무언가를 알아 달라는 듯이 이곳저곳에서 부는데, 그저 봄이 다가오는 것이 기뻐서 웃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어서 숲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있는 건지 바람의 의도를 알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인위적이지 않은 불규칙한 바람 소리,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는 소리, 맑게 울려 퍼지는 새소리, 거기에 근심 걱정들을 모두 녹여주는 따스한 햇살까지. 초록빛 녹음 속 손 등 위를 찰랑이며 스치는 바람이 시원하다.


리타의 정원을 읽기 전에 쓴 글인데, 그때에도 난 자연을 사랑했었나 보다. 글 취향이 나랑 잘 맞는, 자연을 사랑하는 작가님이 우리나라에 계시다는 사실이 몹시 기쁘다. 봄맞이 초록빛 녹음이 물씬 풍기는 감성 넘치는 에세이를 찾고 있다면, 안리타 작가님의 ‘리타의 정원’을 추천한다.




1. 타인은 놀릴 수 있는 상상이지만, 이 정원이야말로 메마른 현실의 내가 가진 유일한 동화라는 생각이 든다. p.14 리타의 정원


2. 아무도 찾지 않는 곳, 아무도 모르는 곳, 이곳은 낙원이다. 이곳은 천국이고, 마음이다. 이곳은 내 전부이고, 내 삶이다. p.15 리타의 정원


3. 나는 내게서 더 멀리 떠나가는 것들을 이렇게 혼자서 바라보곤 했다. 나의 내력이 투시된 것들, 가령 노을, 달빛, 아무도 모르는 강가, 서로의 거죽을 비비는 억새, 그런 것만이 내게 생의 의지를 가져다줬다. p.23 유년의 기억


4. 그 시절 나는 이미 여러 번 죽었으며, 여러 번 태어났다. 삶이 반복될수록 타인이 아닌 나를 살려는 마음이 점차 강해져갔다. 이 길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 오랫동안 나를 위로했던 자연 속에서 단 하나의, 내 삶의 시간을 향유하며 맑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p.25 유년의 기억


5. 여전히 눈을 감으면 나는 거기에 있고, 그 속에서 땀을 흘리던 내가 있고, 울었던 내가, 가만히 부는 바람을 맛보던 내가, 꽃향기에 취한 내가, 휘파람을 부르던 내가, 빗소리를 듣는 내가 있었다. p.31 기억의 정원


6. 봄의 손길이 닿은 곳마다 생명이 살아난다.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햇볕을 쬐면, 빛들이 몸의 구석구석 언 세포들을 깨우며 혈관을 타고 돌았다. 자연의 혼이 바람을 일으켜 인간의 혼을 깨우는 기운이 생동하는 계절이었다. p.32 초봄


7. 매 하루 새로이 태어나 본연의 일과를 다하며 사시사철 변화하는 자연처럼 나도 차분하게 오늘을 살고 싶다. p.35 변화하는 그림


8. 모든 빛나는 것들은 저렇게 망망대해와 험준한 고개를 넘어온다. 모든 빛나는 것들을 보기 위해 나 역시 막막 심산과 고난을 넘어왔다. p.37 밤하늘의 별빛들


9. 매 순간 인간의 손으로 지어지지 않은 것들을 유심히 바라보라. 하나의 산, 하나의 별, 구불거리는 강줄기. 그곳에서 지혜와 인내가 너에게 찾아오리니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시드니 레베트 p.38


10. 수면 위로 따사로운 햇볕과 물장구치는 바람의 유혹을 견디고 수심의 깊이에 닿을 때만이 느낄 수 있는 적요의 세계, 안으로 안으로 더 깊숙이 침잠하며 더는 물길이 흐르지 않는 심중에서 마주한 고독, 이런 것들을 참고 당도해야 하는 세계가 있다는 신념으로, 떠밀려 가는 물줄기를 역류해 끊임없이 나아간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나를 휘두르는 물살이 없다는 것을. p.41 쑥차


11. 기다리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아는 꽃들은 긴 시간 온통 피워내고야 말겠다는 정신을 잃은 적 없고, 반드시 그것을 해내고야 마니까. 곧, 증명해 보여줄 것이다. 최선을 다해 봄이다. 나도 피어나야지. p.70


12. 봄은 아주 먼 곳에서부터 숲의 살결을 쓸어내리며 당도한다. 거대하지만 온순한, 짐승이 깨어나듯 숲의 등은 봄의 손이 닿는 곳마다 마술처럼 연둣빛으로 물든다. 오래 기다린 봄이다. p.76 봄을 기다리는 동안


13. 인적 드문 야산의 한 귀퉁이에 작게 피어난 아기 봄맞이꽃이 그 사소하고 작은 아름다움이 나를 발견한다. 꽃이 보잘 것 없는 이 한사람의 오후에 기여함에 감사하다. 참 살만한 하루가 되었다. p.78


14. 어떤 어려움 곁에서도 자연은 늘 나에게 가만히 인내하며 자리를 내어줬다. 자연은 한 번도 나를 타박하지 않는다. 보채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걱정하지도 않는다. 등 돌리거나 멀어지지도 않는다. ... 언제나 혼란스러운 심경 속에서 외면하고 등진 것은 나였다. p.96 자연의 존재와 위로


15. 발목을 휘도는 햇살도, 오며 가는 저 바람도, 풀잎을 쓸어내리는 저 계절의 손짓도 다 나의 삶이다. ...기왕이면 더 높이, 더 멀리, 바라보고 싶다. 또한 유순하고 둥근 것들을 가까이 하고 싶다. 많은 것들을 내면에 담아내며 더 깊고 커다란 삶을 살고 싶다. 현실로 제한한 헙소한 삶은 나에게 큰 작용을 하지 않는다. 나의 세상은 늘 이곳, 광대하고 드높은, 그러나 부드럽고 순한 풍경들 가까이에서 세상 모르게 지속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p.123 영원


16. 관계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고통의 시작이 나 스스로 만든 경계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알면 나와 남이라는 분별이 얼마나 무모한 건지도 알게 된다. p.150 자신의 경계


17. 성인은 깊은 산속에서 토굴 수행을 하는 스님이나 신전의 성자들이 아닌 이 현실 속에 발을 담근 채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자신의 조각들을 끊임없이 깎는, 그러나 사회에 물들지 않는 사람들일 것이다. 타인의 울림을 좇지 않으며 스스로가 그런 울림이 되고자 전 생애를 몰두하는 사람들 말이다. 어떤 마음에도 스미며 따스한 빛으로 온기를 채우는 사람들이 있다. p.163


18. 내 필름의 기록을 따라 자신을 믿고 머물며 나를 수집해간다 p.163


19. 스스로가 나의 세계를 살지 못한다면, 마음이 왠지 늘 불안하고 불행해지고 마니까, 나는 마음의 중심에 늘 고독의 축대를 놓는다. p.164


20. 사물을 사랑의 시선으로 가늠하는 것은 외로운 시간을 고요 속에서 보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 헤르만 헤세 p.169


21. 우리는 떠나 보내지 못하는 감정으로부터 자주 아프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의 유속을 자꾸만 나라고 오인하기 때문이다. 감정을 흘러가지 못하게 가두고 고립시키기 때문이다. 토양을 바라보지 않고 격변하는 것을 자꾸만 나라고 믿는다면 혼돈은 가중되고야 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오고 가는 마음들을 남김없이 흘려보내야 한다. p.170


22. 행복하여지자면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한다. - 알베르 카뮈 p.181





https://youtu.be/uXdUxr04M48?si=RKs5Qy9mRECCX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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