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관문

흐른다, 피눈물이

by 모모


'개의치 않는다.'


서른 해가 넘도록, 이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고 여겨왔다. 그런 성격이라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나 보다. 하나하나가 다 신경 쓰인다.


틈만 나면 나와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 혹은 비슷한 수술을 받은 이들을 찾아본다.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가리지 않는다. 찾고 또 찾는다.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사이에 누군가 더 나타나지는 않았을까 싶어 다시 검색창을 연다.

개의치 않기는 무슨, 나는 제법 집요하게 개의하고 있다.


나와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을 찾는 일은,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 같은 빛을 내는 별 하나를 가려내는 일과 닮아 있다. 눈꺼풀암은 참 비열하게도 피지선이나 진피, 땀샘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시작되어 발견하기가 어렵다. 설령 발견되더라도 시간이 지나 발원부위를 특정하기 어렵거나, 얼굴 피부암쯤으로 뭉뚱그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의료 통계를 제외하고 스스로 '눈꺼풀암에 걸렸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나마 어떤 이유로든 눈 한쪽, 그러니까 안와에 있던 내용물을 제거했다고 공개한 사람들은 간간이 찾을 수 있다. 그것도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다 뒤져도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찾아낸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사진마다 얼굴이 조금씩 달라 보인다는 것. 눈을 제거한 자리의 모양이 몇 번이고 바뀌어 있다.

수년, 수 차례에 걸쳐서 피부이식 재수술을 받은 것이다.


왜?

왜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거지?


눈구멍을 비우고 살을 채운다는 것.

눈꺼풀과 안구를 제거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

‘일단 암만 제거하면 된다’고 여겼던 나의 단순한 생각과는 달리, 그것은 무척 번거롭고, 지겹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여행일지도 모른다.






리셋인지, 제자리걸음인지 당최 알 수 없는 눈구멍 속 염증은 여름을 지나 가을, 겨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며칠이고 진물을 뿜어대다가, 금세 가라앉았다가, 안심할라 치면 이내 눈 주변이 붉게 달아오르며 염증을 예고했다가…

반복학습의 효과일까. 피부의 상태와 함께 격한 그래프를 그리던 내 마음은, 비슷한 과정을 네댓 번 겪으면서 조금씩 무뎌졌다. 나의 미지근한 반응에 눈구멍의 피부도 폭주할 의욕을 잃었는지, 다행히 염증의 기세 역시 서서히 약해졌다.


'그래, 이렇게 나아지는 거겠지?'



살기 위해 눈 한쪽을 제거한 지 여덟 달.

암의 작은 찌꺼기조차 남기고 싶지 않아 얼굴에 방사선을 쏴댄 지 넉 달.

수술을 막 결정했을 때의 계획대로라면, 이미 일상으로 돌아와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어도 남을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멈춰 있다. 남들보다 더딘 회복과 사그라들지 않는 통증 탓에, 아직도 진물을 닦고 진통제를 삼키며 집을 지킨다.

그래도 괜찮다. 어떻게든 버텨 왔으니까. 이대로 조금씩 나아지기만 하면 되지.






—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따라 축축하다.

눅눅하다.

눈 주변이 얼얼하고 욱신 거린다.




또 시작인가?




서둘러 거울 앞에 섰다.

평소와 같이 안대를 살짝 들쳐 보았다.


'이게… 대체 뭐야?'


요즘 들어 이상한 무늬가 시야를 자꾸 가린다 싶더니, 이제는 헛것이 보이는 걸까? 눈이 침침해서 색깔 구분이 안 되는 건가? 왼쪽 눈을 비비고 다시 떠 보지만 다르지 않다. 거즈를 흠뻑 적신 건 누런 진물도, 투명한 분비물도 아니었다.





새빨간,


피였다.








눈구멍의 피부가 낫지 않아 침울해할 때마다, 성형외과 선생님은 같은 말로 나를 위로했다.


"진물은 피부가 나으려고 애쓰고 있는 거니까, 괜찮아요. 피만 아니면 돼요."


그런데 피가 났다. 어느 한 군데도 아니고 눈구멍 여기저기에서, 꽤나 많이. 며칠 전만 해도 거의 아문 것처럼 보였던 눈구멍 속 벽은, 밟아 짓이겨진 낙엽처럼 해져 있었다. 바르라는 연고도 잘 발랐고, 주기적으로 부드럽게 세척도 했고, 사람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는데, 대체 왜?


한 걸음에 달려간 병원에서는 출혈의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방사선 부작용으로 보이긴 하지만 단정할 수 없고, 포비돈 요오드 연고를 묻힌 거즈를 눈구멍에 채워 두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어릴 적, 까진 무릎에나 바르던 빨간약이 최선이라니.


"무엇보다도 감염이 우려됩니다.

… 쉽지 않으시겠지만, 매일 비누 거품으로 가능한 박박, 깨끗하게 긁어내듯이 씻어주세요. 그렇게 2주 정도 해 보고 다시 상태를 봅시다."


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안대를 떼고 텅 빈 눈구멍을 마주할 때마다 거울도 나도 깨부수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고 있는데, 이제는 피가 흐르는 눈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긁어내란다. 그것도, 박박.



처음에는 눈 하나를 내어주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안면마비와 피부 부작용이 마지막이라 믿으며 버텼다.

그리고 이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눈물을 닦고 있다. 진짜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을.




마침표 없이 쉼표만이 이어지는 이 시간.

출구가 없어 빛 한 점 스며들지 않는 터널.



참 길다.

정말이지 지겹다.




수요일 연재
이전 18화이상한 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