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형상

눈 하나와 맞바꾼 것들

by 모모




이미 없는 눈이

아직도 있는 것만 같은_


빛을 굴절시킬 안구도, 그것을 덮을 눈꺼풀도 없는데,

자꾸만 옅은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 같은_



이 기분 나쁜 느낌은

수술을 마치고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도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수술의 흉터와 함께 서서히 아물 줄 알았던 '눈 하나를 잃은 슬픔'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선명해진다.






없는 눈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또 하나의 착각—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눈 한쪽이 사라지면,

언제나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깜깜할 거라 상상했었다.


하지만 반대였다.

눈 한쪽이 사라지고 나니,

오히려 감을 눈이 없어 하루 종일 눈을 뜨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이게… 왜 이러지.'


안대를 갈아 끼우다 문득 알게 됐다. 수술한 쪽의 눈썹이 반대쪽보다 훨씬 위로 올라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붕대를 풀었을 때에는 아무 문제없었는데.

그렇다면 절개나 봉합이 잘못된 것도 아닐 텐데.


올라간 눈썹을 손끝으로 천천히 쓰다듬어 보았다.

바짝 당겨져 있던 눈썹이 서서히 내려갔다.

한숨 내쉬고는 다시 거울을 봤다.

몇 초 새에 눈썹이 다시 올라갔다.


긴장이었다. 무의식적인 수축이었다.

나는 수개월동안, 눈을 부릅뜨듯이 이마와 눈 주변의 근육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수술 이후로, 눈을 뜬 채로 밤을 지새운 것처럼 개운치 않은 날이 많았던 이유가.




안와내용물제거술.


나에게 있어 그 수술은,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수술이,

'너 한 번 죽어 봐라'며 평생 지고 가야 할 고문을 건넨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나뭇잎, 풀, 톱니바퀴, 융털, 물방울...

자잘한 선으로 이어진 형상들. 오묘한 무늬들.



그것을 처음 본 건 수술을 받은 날 밤이었다.


열한 시간의 수술이 끝나고 의식을 되찾았을 때, 겨우겨우 뜬 왼쪽 눈앞에는 뿌연 무늬가 떠다녔다. 침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 남편인지 저승사자인지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눈을 감으면 사라질까 싶었지만, 감은 눈 안에서도 그 무늬는 비문증처럼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쉼 없이 흘러 다녔다. 그 이상한 현상은 열흘의 입원기간 내내 이어졌다.


퇴원 후에는 한동안 그 무늬가 보이지 않았다. 몸이 회복되면서 헛것이 보이던 것이 자연스레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처음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던 날.

차갑게 식은 방사선 기계에 누워 새하얀 형광등 불빛 아래를 지나던 순간, 감은 눈 안에 스며드는 불빛 위로 그 무늬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없어진 게 아니라, 단지 익숙해진 거였어.'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것은 환상목 증후군(Phantom Eye Syndrome)이었다.

눈을 적출하거나 시력을 잃은 후 시신경 혹은 뇌가 만들어 낸 일정한 패턴이 보이는,

1년 이내에 사라지기도,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반복되기도 한다는,

환시, 피로와 두통, 수면장애를 불러 우울과 상실감에 빠지게 만든다는— 몹시도 잔인한 증상.


생각해 보면, 눈 하나를 잃은 뒤로 세상을 선명하게 본 적이 없었다. 늘 물때가 잔뜩 낀 거울처럼 뿌옜다.


참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괴롭힌다.

암이라는 놈.




건조가 끝난 수건을 정리하다, 순간 멈칫했다.


'그것과 닮았어.'


내 손에 들려 있던 건 흔한 반다나 손수건이었다.


창문 앞, 햇빛이 들어오는 자리로 걸어갔다. 눈을 감고 옅은 빛 사이로 그 무늬를 찾았다. 언제나처럼 눈 앞에 무언가가 떠 다니지만, 막상 자세히 보려고 하면 무늬가 춤을 추며 흩어져버렸다.



암 병동에 있을 때, 자꾸만 시야를 가리는 그 무늬를 일기장 한켠에 조금씩 그려 뒀던 것이 떠올랐다.



역시 반다나 수건에 그려진 그것,

페이즐리 무늬와 무척 닮았다.


아니

똑같다.




생명, 씨앗, 영적 에너지... 꽤나 심오한 것들을 상징한다는 페이즐리 무늬. 10세기 이전의 직물, 공예 등에서도 발견되었다는 기묘한 무늬.

누군가 나와 비슷한 형상을 보고, 그것을 기록한 걸까. 어렸을 때에는 그저 기하학적인 문양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건 인간의 뇌가 만들어내는 가장 기본적인 패턴인지도 모른다. 새롭게 생겨난 게 아니라, 항상 있었던 것이 조금 선명해진 것뿐일지도.


요즘 늘 이런 식이다. 어찌 돼도 상관없는 쓸데없는 생각, 과한 의미부여,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멋대로 해석.


그렇게라도 받아들여 보려는 노력. 각고.







참 다양하기도 하다.

수술 후 처음 겪는 감정, 낯선 증상들.



그것이 혼동이든 착각이든 환각이든,


이제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몸에 난 잔털처럼.

애초부터 있어 왔던 것처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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