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없는 몸
밤 열 시.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작업.
삐져나온 거즈의 귀퉁이를 조심스레 잡아당긴다. 공처럼 동그랗게 뭉쳐 있던 거즈 덩어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거즈가 눈구멍을 빠져나오는 순간, 미리 준비해 둔 키친타월로 재빨리 감싸 쓰레기통에 넣는다.
눈앞을 스치는 검붉은 얼룩. 보았지만, 못 본 척한다.
'내가 안 봤으면 없는 거야.'
어릴 적에는 무르팍이 깨져도 조금만 누르고 있으면 피가 멎었다. 다친 사실을 잊고 신나게 놀다 보면 금세 나아있곤 했었다.
하지만, 마흔 살 암 환자의 눈구멍에서 흐르는 피는 다르다.
원인 모를 출혈이 이어진 지 2주째.
이제 좀 괜찮아졌나 싶다가도, 다시.
이번엔 확실하다 싶어 닦아 보면 또,
또다시 묻어나는 피.
피부 염증과 진물.
저릿한 통증과 마비.
원인을 알 수 없는 출혈— 의 반복 또 반복.
그래도 내 몸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못 본 척 넘어갈 수도 있고, 마음을 굳게 다잡고 기다릴 수도 있다.
정말 버거운 건,
내 몸 밖에서 일어나는 반복이다.
"눈이 왜 그래요?"
"아… 제가 좀 큰 수술을 받아서요."
"무슨 수술이요? 다래끼?"
"아... 그게 아니라… 사실은 눈 밑에서 암을 발견해서요.
…그래서 제거하는 수술을……
맞아요. 처음 들어보실 거예요. 무척 드문... 케이스거든요. 하하."
왜인지 내가 내 몸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애쓰는 대화.
이 기나긴 설명을 할지. 진실을 전할만 한 사람인지, 아닌지. 고르고 나누는 순간의 반복.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생각한다.
내 몸에서 잘라낸, 새끼손톱보다 조금 작은 암 덩어리—
그 녀석이 자리 잡았던 곳이 눈이 아니었다면,
먼저 말하지 않으면 눈치채기 어려운 곳이었다면,
지금 내 마음이 조금 덜 지쳤을까.
조금이라도 나았을까.
이상하다.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하다.
눈앞이 뿌옇고 침침하다.
자꾸만 보이는 사실도 못 본 척, 부정해서 그런가?
세상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건가?
그런데…
이건…
... 큰일이다.
하나밖에 없는 눈의 시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이거, 작년에 여기서 맞췄던 안경인데요. 눈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렌즈만 바꾸려고요."
"그거 떼고 오셔야 해요."
"네?"
"그거, 눈에 붙이신 안대요.
질환이나 부상이 있어서 한쪽 눈만 사용하면 시력이 불안정할 수 있거든요. 다 낫고 오세요."
'이제는 뭐 하나 쉬운 게 없구나.'
급히 마음속 계산기를 두드린다.
이 사람에게 안대 너머의 진실을 전할 것인가?
전한다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떤 표정, 어떤 말투로…
"저… 제가 최근에 눈을 적출했거든요."
"네?"
"그래서 평생 안대를 하고 다녀야 해요. 지금 시력으로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아… 저희가 그런 경우는 해 본 적이 없어서요.
죄송하지만 좀 더 큰 곳이나 경험이 있는 곳으로 가 보시겠어요?"
충분히 조심스럽고 간곡한 말투다.
상대는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세상 그 누구보다 나를 신경 쓰며 배려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야구 배트로 얻어맞은 것보다 더 차갑고, 더 아프게 느껴질까.
안경점, 병원, 약국, 미용실… 지극히 일상적인 장소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말을 듣는다.
— 그거… 왜 그래요?
— 그 안에는 어떤 상태인 거예요?
— 그게 어떤 영향이 있을지 알 수가 없어서...
— 병원에서도 괜찮대요?
— 죄송하지만, 더 잘 알만 한 곳으로 가 보세요.
두 눈이었을 때는 겪어본 적 없는 염려와 거절.
하지만, 지금은 자연스레 반복되고 있는 현실.
재빨리 암을 제거하면
곧장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예전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술 후 내게 남은 것은—
비밀이 없는 몸.
시선과 관찰로 시작되는 만남.
하나도 일상적이지 않은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