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끝에서 배운 그것
익숙함.
눈 하나가 되고서야
절실히 깨달았다.
그 단어 속에는 인간이 가진 그 어떤 능력보다도 무서운 힘이 숨어있다는 걸.
눈 하나로 붐비는 길을 걷는다—
처음엔 좁은 시야와 둔해진 거리감각 때문에 사람이 많은 곳에 발을 들이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그러나 매일같이 붐비는 전철을 타고 병원에 오가며 나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쏟아지는 신주쿠역이든 시부야 한복판이든 남들보다 한 템포, 아니 두 템포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바쁜 사람들은 흐르는 물처럼 알아서 나를 비껴간다는 것을.
'보통'이라고 믿었던 속도에서 한 발짝 물러나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면 오히려 더 안전하게, 때로는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늘 눈 하나를 가리고 다닌다는 것도 그렇다—
처음엔 사람들의 시선이 참 싫었다. 그것이 걱정 어린 눈빛이든 애써 못 본 척하는 표정이든 그냥 다 싫고 불편했다.
하지만 그것도 조금씩 스며들었다. 집 앞에서 여러 번 마주치고도 내가 안대를 하고 있었는지조차 몰랐다는 이웃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세상 사람들이 나만 보고 있다는 망상부터 지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씩 하나씩 불편한 마음을 덜어내고 보니, 어느덧 나는 나만의 안대를 찾겠다며 인터넷을 뒤지고, 직접 도안까지 그리고 있었다.
익숙해진다는 것.
여러 번 거듭해서 능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조금씩 배워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눈 하나가 되고 처음 경험하는 일들.
눈이 둘이었을 때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들.
그래도 이제는 제법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딱 하나—
눈에서 피가 흐른다는 것.
이것만큼은 몇 달이 지나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귀한 손님을 모시듯 눈구멍을 어르고 달래며 관리한 덕분에 출혈이 잦아들 때도 있었다. 세척 후 물기를 닦아낼 때 살짝 묻어나는 정도에 안도하며 평화를 꿈꾸기도 했다
방심했기 때문일까. 집요한 옛 연인이 "설마 나 잊은 거 아니지?"라며 얼굴을 내밀듯, 며칠 전부터 다시 피의 양이 많아졌다.
'이놈의 눈구멍은 낫기는 낫는 건가?'
핏빛 거즈를 담은 비닐봉지를 짜증스럽게 쓰레기통에 내던진 순간,
실처럼 얇은 레이저 검으로 머리를 반토막 낸 것만 같은, 찌릿하고 소름 끼치는 통증이 느껴졌다.
평생 경험해 본 적 없는 아픔에, 그대로 주저앉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멈추지 않는 피에,
이젠 아프기까지?'
자꾸만 없는 기대를 만들어 내느라,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희귀암에 걸렸고,
멀쩡한 눈을 제거해야 했으며,
회복마저 남들보다 훨씬 더딘,
지독하게도 운 없는, 그런 사람이라는 걸.
"정확히 어디가 제일 아프세요?"
"여기, 눈구멍 안쪽 위부터 오른쪽 벽까지요."
"그러니까... 수술 후에 처음으로 느끼신 거죠?"
"네. 얼얼함이나 둔하게 위화감을 느낀 적은 있어도, 이렇게 크게 아픈 건 처음이에요."
내 말을 들은 주치의는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말 다행입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뭐지?
수술 후 종종
이 모든 것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져서,
내 눈을 뺏아 가려고 세상 사람들이 다 같이 짜고 사기를 치는 게 아닌가…
라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정말이었나?
"수술부위가 아프다는 건 좋은 소식입니다.
그동안 마비가 너무 심해서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회복이 잘 안 돼서 마비가 영구적으로 남으면 훨씬 더 힘들어지는데, 이제는 통증을 느꼈으니까 좋아질 일만 남았어요."
없던 통증이 생긴 것이 아니었다.
눈이 있었던 자리,
그곳에 이식한 피부와 남은 신경들이
비로소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는 신호였다.
"또 달라진 점은 없나요? 수술 후 나타났던 두통이나 마비감도 포함해서…"
그 질문을 받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며 하나하나 또렷해졌다.
반년 이상 이어졌던 저릿한 두통도,
얼굴을 움직일 때마다 살갗 위로 전기 스파크가 튀는 듯했던 통증도,
돌처럼 굳어 눈썹을 잡아끌던 이마 근육도,
단단하게 섬유화가 진행되어 종일 쑤셔댔던 얼굴과 목도—
눈구멍의 염증과 출혈에 온 정신을 빼앗긴 사이,
대부분의 증상들은 신경 써서 느끼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조용해져 있었다.
"이제는 정말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셔도 되겠어요.
열심히 일하며 빛났던, 그 일상이요."
그동안
'반복'의 굴레에 갇혀 있다고만 생각했다.
이를 악물고 버티고 버텨도 리셋.
'나아진다'는 말 하나만 믿고 참아도 늘 제자리.
하지만
그건 제자리가 아니었다.
천을 튼튼하게 고정하기 위해 뒤로 한 땀 돌아갔다가 다시 다음으로 꿰매어 가는 박음질처럼,
나는 조금씩,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분명
또다시 뒤로 되돌아가야 할 때가 오겠지.
모든 것이 지루한 반복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을
'리셋'이라고,
'또 제자리'라고 말하며 절망하지 않을 거다.
주저앉아 슬퍼하지도 않을 거다.
익숙하니까.
이젠 그게 아니란 걸 아니까.
잘 가라, 리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