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연습

아무 일 없던 그곳으로

by 모모



거울 앞에 섰다.

삐뚤어진 안대를 바로 잡고, 크게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오늘도 잘 지내보자.'


실내 자전거에 올라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타이머를 맞춰 둔 것도 아닌데, 십 분정도가 지나면 어김없이 신호가 온다. 오른쪽 머리끝부터 오른쪽 쇄골 위까지, 신경 하나하나에 전선을 감아놓은 듯 찌릿찌릿한 느낌.

처음에는 여기저기에서 스파크가 일 듯한 강한 전류로 시작해서, 서서히 얼얼한 잔향으로 변해간다.


눈구멍에 땀이 맺히고 머리의 마비감이 풀리기 시작하면 자전거에서 내려와 옷가지를 들고 욕실로 향한다.


하루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시간.

눈 하나가 되고부터는 가장 견디기 힘든 시간.

샤워할 때마다 흥얼거리던 콧노래도, 거울 앞에서 천천히 얼굴을 매만지던 여유도, 이제는 없다. 안대를 벗은 내 진짜 얼굴과 마주하는 것도 싫고, 빈 눈구멍을 구석구석 살피며 씻어야 하는 것은 더 싫다.

그래도 해야만 한다. 기괴한 얼굴보다 더 무서운 건 감염이니까.


쓴 약을 삼키듯 몸을 씻고 나와 외출 준비를 했다.

특별한 약속이 없어도 이틀에 한 번은 꼭 밖으로 나간다. 그렇게라도 세상의 냄새를 맡아야 그 느낌을 잊지 않을 것 같아서. 동네 산책로를 걷다가 돌아오는 날도 있고, 전철을 타고 몇 정거장 나가서 도심의 공기를 들이켜는 날도 있다.


도쿄 중심부로 나가는 전철은 늘 붐빈다.

아주 간혹이긴 하지만 나를 보고 자리를 양보해 주는 사람도 있다. 대게는 눈 하나를 가린 것만으로도 얼마나 불편할지 잘 알고 있을 법한, 연세가 지긋한 사람들이다.

마터니티 마크(일본 후생노동성에서 제작한 임산부 마크)를 달고 다닐 시절에도 나만한 딸이나 손녀가 있을 것 같은 연배의 사람들이 자리를 내주곤 했었는데.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이해하는 걸까.

그때는 멋쩍어서 사양할 때가 많았지만, 이제는 그저 고마워하며 앉는다. 내 안대와 행색을 살피며 얼마나 고민하고 주저했을지 아니까.


붐비는 거리는 사람 구경을 하기엔 좋지만, 좁은 시야를 가지고 오래 걷기에는 조금 위험하다. 오늘따라 사람이 많다 싶을 때에는 아예 가격대가 높은, 대신에 자리가 있을 법한 카페를 찾는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일기를 끄적였다. 그리고는 노트북을 꺼내어 일기장에서 주운 몇 가지 주제로 글을 썼다. 사실 뭔가를 쓴다기보다도, 눈 하나로 모니터를 견디는 연습에 가깝지만.


그러다 보니 어느새 오후 서너 시. 퇴근 러시아워가 시작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튀어나온 턱에 발을 한 번 찧긴 했지만 상처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오른쪽에 벽에 끼고 걸은 덕분에 사람들과도 부딪치지 않았다.


특별한 사고 없이,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보냈다.




이 정도면—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병원에 가는 날이다.

정기 진료가 아닌, PET-CT결과를 듣기로 한 날.


눈을 제거한 후 전신 PET-CT검사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확히 말하면, 처음이 되도록 애써 미뤄뒀다.

수술 부위는 정기적인 MRI, CT검사로 문제없다는 것을 확인해 왔지만, 전신 검사는… '다음에 받겠다'며 여러 번 피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들었던 눈꺼풀암 선고.

마음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내려진 눈꺼풀과 안구의 제거 권고.

온몸의 피가 식어버리는 듯한 그때의 느낌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서, 또 무언가 있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서,

그래서 몇 번이고 도망쳤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검사를 받기는 했지만,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그야말로 지옥 같았다.

역시 받지 말 걸.

그냥 모르는 행복을 택할걸.




"아주 깨끗하네요. 방사선과 소견도 문제없음으로 나왔습니다."


꽉 죄고 있던 나사가 풀리듯, 몸속의 긴장이 스르르 흘러내렸다.


대단한 걸 찾아냈다는 것도 아니고,

어마어마한 것을 없앴다는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없다'는 말 한마디로 먹구름이 걷히고 빛이 내려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몇 번이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던 메시지를 겨우내 완성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송신 버튼을 눌렀다.


"부장님, 출혈로 연기했던 복직에 대해

다시 상담드리려고 합니다."



수요일 연재
이전 26화잘 가라 리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