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아도
진료실 구석에 있는 프린터가 종이 한 장을 툭 뱉어냈다. 주치의는 망설임 없이 도장을 찍었다.
그렇게, 내가 눈 하나로 일을 시작해도 된다는 증거가 만들어졌다.
"다음 달 중순에 산업의(産業医:기업, 사업장 등에서 근로자의 건강을 관리하는 전담 의사) 면담이 있겠습니다."
복직 수속이라는 이름의 긴 터널 속에서, 겨우 '1번, 진단서 제출'을 마쳤을 뿐이었다. 그런데 다음 단계까지 또 한 달을 기다리란다.
열댓 개에 달하는 절차를 모두 통과하려면 두 달, 어쩌면 두 달 반에서 세 달.
짧다면 짧고, 길다면 끝없이 길게 느껴지는 시간 앞에서 멈춰 섰다.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진단서를 회사에 제출한 이튿날, 산책 겸 운동 겸 집을 나섰다.
동네 산책로를 천천히 걷다가 작은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돌아오는 길에는 슈퍼에 들러 저녁거리를 샀다.
대단할 것 하나 없는 외출이었다. 피곤할 일도 없었다. 그런데 왜인지 길을 걷는 도중에 눈꺼풀이 돌덩이처럼 무겁게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감으면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일단 걸었다.
겨우겨우 집에 도착해 계단을 오르려는데, 이번에는 코앞에 번개가 떨어진 듯 눈앞이 번쩍 하는 바람에 발을 헛디뎠다.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다. 마음은 계단을 데굴데굴 굴러 나동그라졌지만.
뇌가 자꾸 없는 오른쪽 눈을 찾으려 해서 무리한 걸까.
복직이라는 단어가 몸을 긴장시키는 걸까.
아니면, 그동안 버티던 긴장이 이제야 풀려서일까.
참 어렵다.
‘나았다’와 ‘괜찮아졌다’는 말의 기준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처음 그렸던 복직 무렵의 내 모습은, 두 눈이 붙어있는 얼굴이었다.
에피테제를 단단히 붙이고, 정면을 응시하는 연습도 충분히 되어 있는, 그래서 누가 보아도 자연스러운 얼굴.
상상 속의 나는 담담했고, 단정했고, 준비가 끝나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현실은 상상에서 한 발쯤 비껴 선다.
오랜 시간, 눈구멍의 피부는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했다.
괜찮아졌다고 안도하면 다시 예민해졌고, 그 예민함은 주변 피부에까지 번져 붉은 테두리를 만들었다.
에피테제를 붙이기 위해 각종 보호 연고를 발라 보고, 접착제를 최소한으로 줄여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래도 저래도 피부는 그만 좀 하라고 신호를 보내듯 벌겋게 달아올랐다. 병원에 물어도 별다른 방도는 없었다. 인류가 발견한 가장 혁신적인 항염증제라 불리는 스테로이드 연고마저 듣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자주 시도할 수 없으니 양쪽 눈의 시선을 맞추는 연습도 몇 번 하지 못했다. 피부 상태가 조금 나아 보이는 날 용기를 내어 에피테제를 붙여 보면, 움직이지 않는 가짜 눈과 나도 모르게 반응해 버리는 남은 눈 사이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어긋남이 생겼다. 그 불일치를 의식한 탓인지 단 오 분, 십 분만으로도 뒷목이 단단히 굳으며 뻐근한 통증이 올라왔다.
앞으로의 생활은, 앞으로의 일은, 어쩌면 모든 것이 연습이고 훈련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깊이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상상 속의 나는 늘 준비가 끝나 있어도, 현실의 나는 번번이 그 예상을 비껴갔으니까.
그러니 이번에도, 그저 하루를 통과해 보는 정도로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걷고, 커피를 마시고, 저녁을 차리고.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아주 미세한 변화가 쌓여, 어느 날 문득—아무런 각오도 하지 않은 채 출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계절이 바뀌듯 조용하고도 자연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