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관리]
여론이 갈릴 주요 정책은 반드시 발표 전에 쟁점 관리 협의
지금의 정부상징 문양을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태극 문양을 참고로 해서 만든 이 ‘정부 상징체계’는 원래 기관마다 다르게 쓰던 것을 2016년 통일한 것이다. 정부의 중앙행정기관(부처), 그 소속기관, 국립기관들이 명칭은 각각 다르게 표기해도 문양만은 같은 디자인을 사용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상징체계 10문 10답 : 네이버 블로그
이 정부 상징체계 디자인은 문체부가 맡았는데, 당시 문체부 대변인이었던 김태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내게 디자인 과정부터 공식발표까지 적극적으로 지원하라고 당부했다. 김 교수님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내가 공직자 중 정책홍보 감각이 가장 뛰어나다 꼽는 분. 나는 이 지시를 ‘정부 상징체계의 부정적 쟁점화를 미리 대비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이해했다.
비슷한 시기에 문체부에서는 ‘국가 브랜드 개발’도 특별 전담 조직(Task Force Team, TFT)이 설치돼 추진 중이었다. 신년 업무보고를 통해 밝힌 그해 주요 정책과제였기에 안팎으로 관심이 높았다. 난 여기에도 지원에 나서게 됐는데, 결과적으로 이 큰 두 디자인 프로젝트의 희비는 극명했다.
내가 두 디자인 프로젝트의 담당자들에게 요청한 내용은 같았다. 대개 디자인 관련 발표에 대한 부정적 이슈화는 ▲예산 집행상 문제점, ▲소요 예산 규모, ▲표절 등 디자인의 절차상 하자, ▲새 디자인이 갖는 설득력과 대중 반응 정도에서 나오니 이에 대한 사전 대비를 꼭 해주십사 하는 것. 경험에서 나온 일종의 ‘나만의 체크리스트’ 같은 것이었다.
우선, 정부 상징체계 발표는 성공적이었다. 발표 담당 부서가 선제적으로 나선 게 제대로 먹혔다. 아예 태극 문양을 응용한 유사한 로고들을 기자들에게 먼저 언급해버린 것. 당시 대한항공과 대한체육회 로고가 그 예시였는데, 이들과 정부 상징체계 디자인과의 차별점을 차분히 설명했다. 덕분에 표절 시비를 제기한 언론 기사는 하나도 없었다. 흥미로운 건 누리꾼(네티즌) 반응. SNS와 뉴스에 “펩시콜라 로고를 닮아 친근하고 귀엽다”라는 재미있는 댓글들이 주를 이뤘다.
그렇다면 국가 브랜드 발표는? 부정적 반응 속에 디자인 공개 일주일 만에 조용히 사라졌다. ‘다이내믹 코리아’ 이후 처음으로 국가 브랜드를 바꿔보려던 야심 찬 시도는, 내가 미리 주의를 부탁한 모든 부정적 이슈를 얻어맞고서 녹다운돼버렸다. ▲의심스러운 쪼개기 계약, ▲예산 낭비 주장, ▲프랑스의 정부 브랜드 카피와 디자인표절, ▲디자인에 대한 호응과 공감대의 부재 등등. 유념해야 할 모든 쟁점 관리에서 완전히 실패했던 것. 사실 담당 공직자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실무진들의 오랜 고민을 뒤엎어 버린 비선과 윗분의 결정 때문이었다.
긍정적인 여론 만들기도 중요한 쟁점 관리
부정적 여론을 예방하는 것뿐만 아니라, 긍정적 여론이 ‘붐 업(Boom Up)’되도록 기획하는 것도 ‘쟁점 관리’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3화에서 밝혔듯이, 내가 코로나19 시기에 캠페인을 통해 제작한 ‘K-웹툰 마스크’를 대통령에게 착용하게 하려 한 것도 마찬가지. 등교하는 청소년들에게, 불편해도 마스크를 꼭 착용해야 한다는 여론을 우호적인 분위기로 이슈화해보자는 시도였다.
긍정적인 쟁점화를 도모하는 건 홍보 메시지를 만드는 데서도 중요하다. 사업을 홍보하는 보도자료의 제목을 언론이 잘 받아쓰도록 효과적으로 수정하고, 사업 슬로건을 새로 만드는 것도 모두 긍정적인 이슈화를 위한 일상적인 홍보 업무다.
2014년 초 ‘문화가 있는 날’을 처음 론칭 할 때다. 당시 문체부 문화정책국장으로 계시던 나종민 전 차관님이 사업 발표와 홍보 전략을 상의하고자 부르셨다. ‘문화가 있는 날’은 많은 국민이 일상에서 문화를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각종 공연, 전시 등 문화와 프로스포츠 경기 관람을 무료 또는 할인가로 제공하는 사업이다.
당시 고민은, 이미 비슷한 이름의 ‘문화의 날’이 있었다는 것. 문화의 의의와 중요성에 관한 관심을 확산하기 위해 매해 10월 셋째 토요일에 지역을 바꾸며 기념식을 열고 있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문화계에선 인지도가 있는 사업이었기에 새로 시작하는 ‘문화가 있는 날’을 ‘문화의 날’과 차별화 해 홍보하는 게 관건이었다.
우선, 입에 붙고 눈에 익어야 했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정한다’라는 사업계획의 포인트를 단순화해 ‘매달 마지막 수요일’로 리듬감을 살리고, ‘매마수’라는 줄임말을 보태어 홍보 초기부터 활용했다. ‘문화가 있는 날’이라는 후렴구가 반복되는 후크송을 로고송으로 만들기도 했고, 귀여운 캐릭터 ‘문화’ 양과 ‘융성’ 군의 카카오톡 ‘애니콘’도 제작해 서비스했다. 난 정부에서 만들었던 카톡 이모티콘 중 최고라고 자부한다. 여론 역시 사업 초기부터 긍정적인 분위기를 이어갔음은 물론이다.
이 사업은 박근혜정부 당시 ‘창조경제’만큼이나 실체가 잡히지 않았던 국정기조 ‘문화융성’의 브랜드 사업이 되었다.(유진룡 전 장관님의 대표 업적이기도 하고.) 문화부 15년 근무 중 ‘스포츠 7330’, ‘유소년 축구 리그’, ‘여행 (주간)가는 달’ 등과 함께 가장 성공한 정책브랜드로 기억한다. 마침 작년이 ‘문화가 있는 날’ 10주년이었다. 문체부 차원의 홍보가 점차 줄어서 국민 관심도 작아진 듯 보이지만, 이 사업은 지역문화진흥원이 맡아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2006년 소위 ‘바다이야기’ 사태를 기억하십니까.
쟁점 관리를 넘어선 위기관리에 대한 처음 고민하게 된 사건도 있다. 2006년 보수 메이저 신문들은 당시 문화관광부에 총공세를 퍼부었다. ‘바다이야기’라는 사행성 게임의 확산을 수수방관했다는 것. 하지만 실제 목적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매일 모든 신문과 TV 메인뉴스가 청와대와 문화부 비판으로 도배된 기간이 한 달 이상 계속됐다. 당시 문화부는 이미 사행성 게임 근절책을 발표한 직후였기에 마땅한 추가 대책을 내세우기도 어려웠고, 발표한다 해도 ‘뿌리 뽑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언론의 빤한 먹잇감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난 그때도 부내의 사행성 게임 근절 TFT에 참여했다. 그때가 첫 TFT 참여였고 유일하게 인사발령까지 받았다. 그런데 그 TFT 지원을 지시했던 상사 팀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모든 신문에 나오는 문화부 기사를 모조리 스크랩해서 간부들에게 돌리게 했는데. 너무 양이 많으니 스크랩 당번들도 다른 업무를 볼 수 없을 지경이었지만, 매일 수백 쪽의 기사 복사본을 읽는 간부도 없었을 터.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그 팀장이 언론 오보에 대한 보도설명(해명) 자료나 대언론 브리핑과는 다른 얘길 대외적으로 떠들고 다녔던 것. 한 마디로 ‘누구 편인지’ 모를 행태를 보인 거다. 동료들이 언론으로부터 억울한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데, 사실 확인도 안 된 ‘뒷담화’로 동료들 뒤통수를 쳐댔다.
내부의 치부를 숨기자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내부의 사실을 은폐하거나 거짓으로 외부에 알리는 건 위기관리 상황에서 가장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외부의 왜곡된 정보에 대해 바로 잡아야 할 홍보 부서장이 사실관계 확인은커녕 뒤에서 비난에 동조한 것은 충격이었다. 내부 직원들조차 기관의 억울한 사정을 알지 못하고 심지어 외부 비난 여론과 같은 내용의 입소문(바이럴)을 낸다면 누가 그 기관의 공식 입장을 수용하겠는가. 위기 상황에서 외부로 나가고 있는 사실관계를 내부 동료들부터 공유케 해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낀, 내게는 너무나 씁쓸한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