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루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 하지만 내 삶이 방향성 없이 그냥 그렇게 지나가게 두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억지로라도 생각해보기로 했다.
MBC의 <아무튼 출근>에 나온 이동수 씨가 <언젠간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라는 책을 냈다. 나는 그를 몰랐다. 책을 읽으며 이동수 씨의 나이를 추측하면, 얼핏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철부지 직장인처럼 보인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40대에 아이가 둘이나 있는 가장이었다. 아이를 낳고 아빠로서 당당하게 육아휴직을 하고 네덜란드에서 살아보기도 한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조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온전히 자기 스스로를 위해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단 말인가.
그를 보며 이렇게 결론을 냈다.
40대의 직장인이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자신감 때문이다.
나는 원래부터 자신감이 없었다. 어렸을 때 생활기록부를 보면 다 좋은데 자신감이 없다는 말이 많이 적혀있다.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을 못 가게 되면서 내 자신감과 자존감은 점점 더 떨어졌고, 그것이 취업과 회사생활에, 그리고 커리어를 쌓아가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감추고 싶은 콤플렉스가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만나게 되는 고학력, 고학벌들의 당당함을 보며 더 위축되곤 했다.
자신감을 가지려면, 나 스스로를 인정하고 나를 사랑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그래야 할 당위성도 찾지 못했다. 계속 과거 속의 후회에 빠져 어둠 속에서 허우적 댔다.
낮아진 자신감과 자존감을 조금이라도 회복하는데 도움을 준 것은 일의 경험이다. 내게 일을 한다는 것은 자신감이 요구되는 일이다. 맡은 일을 제대로 처리하려면 마음속에서는 내 일의 목표와 방향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했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는 겉으로 보이는 자신감과 당당함이 중요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내게 자신감을 장착하게 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이내 현타는 온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싶지, 싶은 거다.
그러면 우울해지고 창피해지고 부끄러워진다.
그래도 이것이 사회생활인 것 같다. 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려면 창피함을 무릅쓰고 더 당당하게 이 세상을 마주해야 한다. 자신감을 갖고 내 멋대로 의견도 내고, 당차게 행동을 해야 하며, 그래야 사람들도 그 모습을 인정해 준다.
그럼에도 이것이 반복되면, 지친다. 삶이 고되게 느껴진다. 계속해서 지쳐간다.
그래서 이동수 씨와 같이 삶의 원동력, 자신감의 원동력을 만들어보고자 따라해 봤다. 나만을 위한 나의 40대 버킷리스트.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가.
1. 뉴욕 혹은 바르셀로나에서 1년 살기
뉴욕이나 바르셀로나에서 1년을 살아보고 싶다. 뉴욕은 내가 원래 좋아하는 도시니까, 바르셀로나는 가보지는 않았지만 다들 좋다고 하니까 있어보고 싶다. 홋카이도는 까마귀만 빼면 살고 싶은 곳인데, 1년 이상 살고 싶은 곳이니까, 1년 살기 목록에서는 빼겠다. 무작정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 당당하게 살아보기 하고 싶다. 글을 써보는 것도 좋겠다.
2. 직장인으로서 나의 인사이트를 담은 칼럼을 기고하기
요즘 나의 전문성에 대한 고민이 많다. 나는 무엇을 잘하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멋있다고 말해줄까. 어떤 주제로 글을 쓰면 사람들이 내게 전문성이 있다고 생각해줄까. 그러기 위해서는 무언가에 대한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것은 나만의 독특한 시선이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전문성은 없다. 하지만 내 없는 전문성도 알아주는 어딘가가 있었으면 좋겠고, 그곳의 요청에 의해 글을 기고해보고 싶다.
3. 그래서 정식 작가가 되기
책은 억지로 만들어내고 싶지 않다. 글이 조금 모였을 때 누군가로부터 제안을 받고 싶고, 그리고 그렇게 글을 써 나가고 싶다.
4. 많은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강연하기.
이건 정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한 자신감을 갖기도 어려울뿐더러 많은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강연하기의 결과는 조금이나마 있었떤 자신감도 없게 만들 수도 있다. 나는 말을 정말 못 하고, 대인공포증도 있고, 무대공포증도 있다. 그런데 웬일인지 최근 들어 한번쯤은 대중 앞에서 말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잘하든 못하든 강연을 준비해보고 나의 가능성을, 나의 현재를 판단해보고 싶다. 그러려면 일단 남들의 눈을 보고 말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얼굴은 빨개지지 말아야 한다.
5. 서울에 내 집 마련하기.
지금 집의 위치도 내겐 편하고 좋지만, 서울의 쾌적하고 멋진 곳에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 모든 인테리어 아이템은 내가 정한 것이어야 하고, 이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협찬이 우수수 쏟아졌으면 좋겠다.
6. 내 부캐로 브랜드 하나 론칭해보기.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부캐 브랜드를 활용한 공간 하나를 운영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카페라든지, 책방이라든지. 진상 손님이 없는 소소한 수익을 내는 나만의 작업실, 혹은 내맘대로 공간이다.
7. 회사에서 하루 6시간만 일해도 붙잡을 중요한 사람 되기
회사가 나를 소중하게 다뤘으면 좋겠다. 내가 나가면 큰일 날 것으로 생각하는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 그러려면 일만 열심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수년간의 직장생활에서의 결론이다. 학벌 콤플렉스는 낮은 자신감의 원천이며 사내 정치는 내 성질과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나는 하루 6시간만 회사 일을 해도 붙잡을 중요한 사람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