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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퓰러 Aug 22. 2022

마음이 답답할 땐 - 아이스크림

내가 좋아하는 음식

지금도 취업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그때도 취업은 참 어려웠다.


 기대를 안고 썼던 서류도 휴지조각이 되고, 애써 잡은 필기시험도 탈락하고, 겨우겨우 면접까지 가서 기뻐하다가도 면접에서 또 떨어지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지만 취업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두꺼운 벽이었다.


당시의 나는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었다. 종종 아이스크림 한 통이 저녁을 대체했다. 쓰린 마음을 달래고 싶었는지 아니면 긴장한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는지 저녁만 되면 학교에서 돌아와 늘 스킨라빈스 파인트 한통을 사서 혼자 다 먹었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다시 지원 서류를 썼다. 그러면서 기대했다. 내일은 괜찮아질 거야. 내일은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그러나 아이스크림이 내 상황을 나아지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난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나는 계속해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추운 겨울이었다. 한동안 아이스크림을 잊고 살았다. 10년도 더 지나 새롭게 입사한 회사에서 10년 전에 하던 야근을 다시 해야 할 일이 생겼다. 10년 전에 비해 책임은 더 무거워졌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시간도 없었고, 엄청난 스트레스와 중압감으로 그 많던 식탐도 잊고 매일 밤늦게까지 혼자 남아서 일했다. 그게 반복되자 나는 아이스크림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난방도 잘 되지 않던 낡은 건물의 사무실에서 야근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돌아와서는 차가운 하겐다즈 혹은 나뚜루 녹차 아이스크림을 한통씩 비웠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 하루의 첫끼였다. 녹차맛을 시작으로 다른 여러 종류의 맛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맛을 섭렵할 때쯤 나의 야근도 끝났다. 그리고 봄이 왔다.


함께 일하다가 1년 뒤 퇴사를 한 사원은 내게 스킨라빈스 파인트 쿠폰을 보내왔다. 그 아이스크림 쿠폰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겨우 소진했다.  




요즘 나는 다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하는 일이 잘 안 풀려서 아이스크림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은 내가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찾게 되는 음식인가 보다.


그간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아이스크림을 먹는다고 해서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다. 원래의 외형적 답답함은 이어졌다. 취업은 계속 안 됐고, 야근은 계속됐다. 지금 하는 일도 여전히 잘 안 풀린다. 그래서 나는 아이스크림이 행운을 가져다주는 음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은 내가 우울할 때 나와 함께해 준 음식이다. 답답한 나의 속내를 시원하게 달래줬다.


오늘은 퇴근길에 스킨라빈스 아몬드봉봉 레디팩 두 통을 사들고 집에 들어갈까 한다. 레디팩은 한 가지 맛을 파인트 정도 크기의 통에 담은 기획상품이다. 역시 아이스크림은 유지방이 가득해야 제맛인가 보다. 칼로리가 낮은 아이스크림도 많이 먹어보았지만 한 통을 모두 먹기 힘들다. 그러나 레디팩은 한 통을 다 비울 수 있다. 레디팩 한 통을 다 먹어도 여전히 한 통은 냉동실에 있을 테니 마음도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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