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언니네 집에 콕 박혀 미국 TV를 보고, 가끔은 마트를 가고, 가끔은 학교에도 놀러 가고 도서관도 가면서 지내던 나는 사촌오빠가 공부하고 있는 보스턴에 놀러 갈 기회가 생겼다.
보스턴은 이타카와는 많이 달랐다. 도시였고, 그래서 관광할 것도 많고, 쇼핑몰도 많았다. 하버드를 포함한 많은 학교가 볼거리이기도 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야구팀에서는 김병현 선수가 뛰고 있기도 했다. 사촌오빠가 이것저것 구경을 많이 시켜줘서 재밌게 놀았다. 이타카에서 자연환경만 보다 이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접하다 보니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사촌오빠와의 시간을 뒤로하고 뉴욕 맨해튼을 거쳐, 다시 사촌언니가 있는 이타카로 갔다. 이타카로 돌아가는 길에 본 맨해튼도 너무나도 근사했다. 보스턴에서 출발한 버스가 내려준, 약간은 삭막해 보이는 맨해튼 차이나타운도, 34번가도 화려하고 재밌게 느껴졌다.
보스턴, 맨해튼을 거쳐 이타카에 오니 나는 더 심심해졌고, 게다가 우울해졌다.
의지할 곳이라곤 사촌언니네 가족의 외출 계획뿐이었다. 혼자라도 되도록이면 어디론가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있는 곳은 학교, 도서관이 있는 시내로 한정되어 있었다.
어서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이 답답한 시골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었다.
집에 돌아갈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아마도 코넬대 학생들의 자살률이 높은 것은 심심해서일 것이다. 무료해서일 것이다.
나는 이후로 사촌언니네 집에 다시 놀러가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게 되고 해외출장도 잦아졌다. 돈을 모아 유럽으로의 여행도 갈 수 있었다. 여러 도시의 경험을 하고나니 점점 24시간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대도시에 대한 선호가 뚜렷해졌다. 24시간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 뉴욕과, 밤이 되면 술독에 빠진 사람들이 배회한다는 런던을 좋아하게 됐다. 오스트리아 빈은 저녁 10시쯤이 되면 너무 조용해져서 가고 싶지 않은 도시가 되었다. 서울의 도심도 24시간 화려하니 나는 서울도 좋아한다.
최근 읽었던 책 <스누피는 왜 그럴까?> 에는 이런 말이 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람들을 피해 혼자 있으면 배척당할 가능성은 없겠지만 외로움이 따른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도 괴롭고 혼자 있는 것도 괴로우니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때 해결책은 혼잡한 대도시에서 사는 것이다. 정서적으로는 삭막할 수 있지만 그래도 집단의 일원이라는 환상은 갖고 살 수 있다."
내게 딱 맞는 말인 것 같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가끔 너무 외롭고 심심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와 함께 있다 다시 혼자 있고 싶어지는 것은 집단의 일원이라는 환상을 갖게 해주는 대도시에서의 삶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언제나 시끌벅적한, 나의 외로움을 상쇄해줄, 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대도시에서 활동해야 한다. 그리고 싫든 좋든 대도시에 있는 회사를 다녀 그들과 끈끈한 유대를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