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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퓰러 Jan 26. 2023

안식월, 안식년처럼

안식여행의 시작

회사에 안식월이란 좋은 제도가 생겼다.

5년 근속을 하면 5년마다 10일의 안식휴가가 나온다.

개인휴가 10일을 더 붙여서 20일, 거의 한 달을 공식적으로 쉴 수 있다.

그래서 안식월이다.


아무리 회사에서 안식월 제도를 위해 배려를 해준다 해도 어느덧 중견 사원이 된 직장인이 한 달을 쉰다는 것은 쉽지 않다.

- 내가 없어서 이 업무가 제대로 안 돌아가면 어쩌지.

- 평가를 좋게 못 받으면 어쩌나.

- 나중에 밀린 일 처리하느라 고생할 바에는 그냥 아무데도 가지 않고 쉬면서 조금씩 처리하는 건 어떨까.

- 안식월 갈 걸 뻔히 알면서 왜 자꾸 일을 주는 거지. 가지 말라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실제로 이 제도는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젊고 능력 있는 사원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생긴 제도다. 그래서 수많은 시니어들은 안식월 사용을 일찌감치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성과를 위해, 팀장이 되고 쭉쭉 승승장구 하기 위해, 회사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같은 시니어임에도 이 제도가 불경기를 핑계로 조만간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나는, 안식월을 당당하게 사용하고 심지어 안식월이 있는 올해를 안식년인 것처럼 보내기로 했다. 안식월의 해에 감사하며, 안식월에 매일 들떠하며 한 해를 즐거운 마음으로 재충전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안식월이니 봄이나 가을, 날씨 한창 좋은 때 한 달 전체를 쓰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었다. 업무도 업무이거니와, 업무를 멀리하고 너무 당당하게 한 달을 내려놓기에는 중견 사원으로서 눈치가 보였고, 업무에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쉬는 내내 불안할 것 같았고, 나중에 와서 일에 허우적거리는 나의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늦겨울과 초겨울, 두 번에 나눠서 쓰는 걸로 스스로 타협했다.


첫 번째 안식휴가는 2월에 떠난다.

안 가본 곳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돌아볼까 했던 나의 막연한 생각동행인이 생기면서 포르투갈 1개국으로 확정됐다. 포르투갈은 회사에서 열일하고 야근하는 동안 만난 신입사원이나 친구들에게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또 안식월이 없다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다면, 가보기 어려운 곳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동행인은 나와 사회초년생 시절 지금의 회사를 같이 다녔던 C다.

나는 지금의 회사를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고, C는 나와 같이 다니던 회사를 나가 항공사로 이직했다.

C는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 대비, 이직한 회사의 느슨한 업무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안식월이 있는 나보다 안식월이 없는 C가 더 신나서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계획을 미리 짜 놓아야 안심하는 대문자 J 성향의 C 덕분에 비행기표도, 숙소도, 축구 티켓과 버스티켓도 여행을 떠나기 2개월 전 구매와 예약을 마친 상태다. 심지어 내가 안식월 대상자라는 것을 통보받기도 전에.


나는 안식월이 있는 올해.

안식년을 보내는 마음으로 많은 에세이를 써보려고 한다.

안식휴가 여행이 많은 영감을 줄 것 같다.   


출발해 보자!

안식월이 있는 해, 안식여행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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