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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퓰러 Jan 14. 2024

잔소리꾼 아버지와 운전연수

10년도 넘게 안 했던 운전을 다시 하기로 했다.

네이버 여행 인플루언서로서 국내 여행을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차를 렌트할 일이 많아지기도 했고, 새 차를 뽑았기 때문에 그 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라도 연수가 필요했다.




나는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자신하는 아버지에게서 운전을 배웠다.

운전면도 아버지가 종용을 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따게 됐다.


도로주행시험에서의 불합격 경험이 있다. 주행시험을 보기 전날 MT를 가서 주량을 확인한다며 병째로 소주 3병을 연달아 마시고 토를 하면서 왔고,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면허시험장에 도착했다. 음주측정을 안 한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술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을 봤기 때문에 어쩌면 '음주시험'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도로주행시험을 봤고, 결과적으로는 아슬아슬한 불합격이었다.


나의 불합격은 아버지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아버지는 재시험 전날 시간을 나를 위해 도로주행시험과 똑같은 코스를 돌도록 하면서 연수를 시켰고, 덕분인 건지 그다음 시험에서 나는 당당히 합격했다.


운전면허를 딴 이후의 실전 운전연수도 아버지가 시켜줬다.

스스로를

-베스트 드라이버

-아무리 운전을 해도 피곤을 못 느끼는 사람

-운전을 즐기는 자

라고 자부하던 아버지는 온갖 잔소리를 해대며 운전연수를 시켰다.


"사주경계! 사주경계!"

"신호 봐야지!"

"아직도 시야가 좁아!"

"브레이크!"

"옆에 탄 사람을 신경 써야지, 지금 내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지금 너무 오른쪽 라인에 붙어있잖아. 차의 왼쪽 모퉁이와 차선을 맞춰서 달리라고."

"뒤에 차가 있는데 안 보이니까 오른쪽으로 차선 변경할 때는 뒤도 한번 보고!"

"언덕에서는 서서히 가속 페달 밟고, 내려올 때는 서서히 발 떼고!"

"같이 탄 사람을 편안하게~!"


아버지 덕에 그 누구보다도 빨리 운전을 시작한 나이지만 그렇다고 운전을 썩 잘하지는 못했다. 길도 자주 잘못 들어서 수원 가는 방향에 에버랜드를 거쳐 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종종 부모님 차를 끌고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고 했던 나는 우리 집의 그나마 작은 차였던 산타모를 팔면서, 운전이 귀찮기도 하고 사고가 날 까봐 무섭기도 해서 운전을 멀리했다. 그리고 그렇게 운전을 안 하게 된 지 10년이 넘었다.




이제 70이 넘은 아버지는 내가 운전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자 기꺼이 운전 연수에 나선다.

"늘 사주경계!"

"똑바로 보라고!"

"어어~ 지금 뭐 한 거야!"

아버지의 잔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잔소리를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다.

예전에는 옆에서 아버지가 잔소리를 하면 할수록 짜증만 나고 혼자 운전하고 싶었다면, 이제는 아버지의 잔소리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아버지의 잔소리에서 '시야가 좁다'는 말은 빠졌다.

이제는 나보다 나이가 든 아버지의 시야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옆에 앉아 잔소리를 하면 가끔 코끝이 찡하다.  

이런 잔소리도 먼 훗날에는 들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19세의 나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지만, 이제는 항상 잔소리만 하는 아버지를 태우고 운전하고 싶다. 아버지가 옆에 없으면 운전하고 싶지 않다.


혼자 운전을 하고 있을 때면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주경계!"

"백미러 보고~"

그리고 이내 서글퍼진다.


사주경계를 잘하고, 신호를 잘 보고, 과속방지턱 앞에서는 부드럽게 속도를 줄여서 함께 탄 사람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베스트 드라이버 경지에 오른다 하더라도... 영원히 아버지에게 운전연수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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