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그랜드백화점

추억으로만 남지 않으려면

by 파퓰러

30년 전의 일산은 신도시라고 불렸다.

서울에서 이사 온 나는 일산의 모든 것이 신기했다.

아파트도 새것, 상가도 새것.

학교는 짓다 말았지만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한 학년에는 3개 반 밖에 없으니까.

새로 맞춘 교복은 TV에서 광고하는 교복이다.

공원길이라고 불리는 거리는 육교가 연결되어 있고 횡단보도가 없다.


일산에 백화점은 두 개가 있었다.

롯데백화점과 그랜드백화점.

그랜드백화점에서는 백화점 셔틀버스도 운영했다.

주엽역에서 내리면 그랜드백화점 무료셔틀버스를 이용해서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내 첫 직장도 어떻게 보면 그랜드백화점이었다.

경품 행사 나눠주는 알바를 시작하며 그랜드백화점 직원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알바 처음 해보는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나를 그랜드백화점 대리님은 살뜰히도 챙겨주셨다.

계속 알바를 하고 싶어 하는 내게 지하 2층에 있는 고려당의 빵 판매 알바를 소개해줬다.

가끔 빵에서 벌레가 나와 항의하러 온 손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SNS에 공개되고 난리 나겠지만 당시에는 빵을 바꿔주거나 환불하면 그냥 넘어갔다.

당시 고려당은 백화점 사장 딸이 운영하는 거라고 했다.


그랜드백화점은 중저가 브랜드를 저렴하게 팔았기 때문에 옷을 사러 많이 갔다.

요가와 같은 문화센터 프로그램도 저렴해서 종종 이용했다.

한때는 거대한 유니클로도 입점해 있었다.

내가 알바를 했던 2층 고려당 자리는 상호만 바뀌었을 뿐, 계속해서 빵집이 들어왔다.

최근에는 뚜레쥬르가 있었다.

뚜레쥬르에서 할인 빵을 사며, 여전히 사장 딸이 이 공간을 운영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최근 발길이 뜸해지긴 했다.

가야 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인 것도 있다.

막상 가도 살 것이 없었고, 나의 부모님 세대도 백화점 대신 인터넷으로 옷을 사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나마 자주 가던 탕짜면 팔던 중국집도 사라졌다.


30주년이 되었을지도 모를 올초.

그랜드백화점은 문자로 폐점소식을 알렸다.

폐점소식에 안타까웠지만 역대급 고별전을 한다는 소식에도 그랜드백화점을 찾지 않았다.

가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불 꺼진 그랜드 백화점.

그랜드백화점이 사라진 그랜드백화점 부지.

마음 한켠도 휑하다.

일산에서의 추억의 장소가 사라져서일 것이다.






백화점 대신 예식장이 들어선다는데, 결국에는 베뉴지 웨딩홀이 들어오려나보다.

기사를 찾아보니 백화점도, 예식장도 결국 패밀리 비즈니스였다.

제대로 전략을 수립해서 들어오지 않으면 또 업종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 쇄신하지 않은 경영 행보가 많이 실망스럽다.

가족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혁신을 모색했더라면 오늘날의 모습과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랜드백화점을 사랑했던 우리를 조금 더 생각했더라면 지금 조금 더 나은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조선비즈. 2024. 02. 29.

그랜드백화점은 한때 신촌의 터줏대감이었던 그랜드마트 등 서울 곳곳에 지점을 운영하던 유통 회사입니다.

창업자인 김만진 회장이 1971년 설립 이후 1986년 그랜드백화점 강남점을 시작으로 마트와 할인점, 백화점 등 유통 사업에 집중했지만, 2000년대 들어 대형 유통기업에 밀려 사세가 급격히 기울면서, 현재는 일산 주엽역에만 오프라인 점포가 한 군데 남아있습니다.

지난 2016년부터는 아예 운영사 사명을 베뉴지(VENUEG)로 바꾸고 골프장부터 웨딩홀과 부동산 개발 등 사업 다변화를 추진했습니다. 유통사업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레저사업으로 재기를 노린 것입니다. 써튼호텔을 인수하며 호텔사업에도 손을 뻗었습니다.

하지만 중견 유통기업으로 2012년 1000억원을 웃돌았던 매출액은 여전히 거의 반토막이 난 상황입니다. 2022년 기준 베뉴지는 총 약 590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여전히 백화점에서 약 250억원(42.5%)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골프장이 199억원(33.7%), 예식장이 115억(19%)으로 그 뒤를 잇는 모습입니다.

코스닥 상장사인 베뉴지(2,065원 ▼ 10 -0.48%)는 김만식 회장과 특수관계인 지분이 50%를 넘고, 막내아들인 김창희 베뉴지 총괄이사로의 2세 승계 작업도 비상장사인 정도진흥기업을 지렛대로 완성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지난해 베뉴지 연결 기준 매출액은 650억4722만원으로 전년보다 10.38% 증가했지만, 고물가 등으로 영업이익은 외려 줄어들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끝난 영향으로 골프장 등 레저 부분과 유통업 등 매출이 모두 늘었지만, 전성기 영광을 되찾기에는 멀었다는 평가입니다.

레저 산업 역시 5년째 확장이 멈추면서 매출이 정체 상태에 놓여있단 지적이 나옵니다. 베뉴지는 2018년 9월 계열사인 부국관광이 골프장 베뉴지 CC를 연 이후 5년 이상 추가적인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사이 회사 자본이 외려 삼성전자나 이차전지 주식들에 투자되면서 소액주주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습니다.

골프장이나 웨딩홀 모두 미래 사업성이 뛰어난 사업은 아니라는 점도 문제입니다. 경영을 이어받게 될 2세 김창희 이사의 어깨가 무겁다는 평가입니다. 베뉴지는 본업인 유통업 경쟁력 강화에도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입니다. 회사 성장을 위해서는 본업을 등한시해서는 안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죠.

다만 경쟁력이 이미 약화된 오프라인 점포 확장이 아니라 최초로 온라인 플랫폼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습니다. 카페24와 손을 잡고 그랜드백화점 온라인몰 사이트를 정비해 지난해 8월 새로 온라인 사이트인 그랜드백화점몰을 열었습니다. 아직 매출이나 영향력은 미미하지만, 베뉴지가 그간 보인적 없던 새로운 행보라 귀추가 주목됩니다.

베뉴지 관계자는 “그간 그랜드백화점 자체 온라인 쇼핑몰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단독 플랫폼을 만들어 운영하게 됐다”면서 “매출 규모가 크지 않아도 꾸준한 성장세다. 본업인 유통업 경쟁력 확보에 무게 추를 옮긴 행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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