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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쓰담 Aug 25. 2022

해도 너무하지 않나요?

이모님 코로나 걸리셨다 #2

하원해주시는 분이 코로나에 걸렸다고 들었어요. 오늘 크다는 보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미술 교실 선생님한 전화가 왔다. 두 번째 수업을 앞둔 날이었다. 아이들 모두 검사했고 음성이었다. 상황을 말씀드렸으나 돌아온 말은 다르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 얘기처럼 요즘 같은 시국에 서로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알겠다고 했다. 우겨서 보낼 일도 아니었고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이해 됐다. 어떻게 아셨을까 싶어서 여쭤봤더니 어떤 엄마한테 들었다 하시며 말을 얼버무리셨다.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교실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지 않은 터라 어렵지 않게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상황이었다.


남편에게 물었다. 다다 등원하면서 코로나 얘기를 했는지 말이다. 버스 기사님이 아이들이 코로나에 걸렸는지 선생님한테 물었고 선생님은 있는 그대로 남편에게 질문을 넘겼다고 했다. 그 버스 기사님은 아마도 코로나 검사를 하러 가는 날에 둘째 작다는 숲 체험에서 홀로 데리고 와주신 분이실 거다.


누가 걸려도 공식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게 된 지 꽤 되었다. 개인정보 보호로 인함이고 이미 시행된 지 오래되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물어봤다니 어처구니 없었다.


상식적으로 아이들이 코로나에 걸렸다면 어린이집 버스에 태울까? 등원을 시킬까? 아이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은 것 같으니 금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대체 왜 그 상황에 그렇게 물어봐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편 상황설명할 필요가 있다 생각에 말을 했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들은 다르다. 예민한 엄마들은 어디에나 있고 주변에도 있다.


 예민한 엄마다. 내 새끼 키우는데 예민하지 않은 엄마가 과연 어디에 있을까. 확진됐단 연락을 받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고 결과는 음성이었다. 등원을 하더라도 증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하원할 수 있도록 남편과 번갈아 가며 재택을 하는 것이 선택권이 없는 우리에게는 최선이었.


미술 교실에서 전화가 온 것은 조금 다르다. 상황만 전해 들으셨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크다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대놓고 들으셨을지도 모다. 생각할수록 후자일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럴수록 서운하고 서럽고 속상했다. 한 동네에서 같이 아이 키우면서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너무한다 싶었다. 가끔 등원이나 하원을 하는 날에 몇 마디 나누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만나면 아이들끼리 놀기도 했다.



동네 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아이들 걱정에 이모님 걱정에 연신 괜찮냐고 묻는 언니가 그저 고마웠다. '어떻게 알았냐'언니에게 다. 니네 학원에 다니는 아이가 와서는 '누구를 하원해주는 이모가 코로나에 걸려서 미술을 못 갈 뻔했는데 울 엄마가 전화해줘서 미술 하러 갔다 왔다'고 말했다고 했다. 심증만 있었던 상황이 덕분에 확실졌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그 엄마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도 해봤다. 그냥 아이 엄마의 판단에 맡겼을 것 같다. 몇 번을 생각해 답은 같았다. 세상 모두를 이해할 순 없다. 그렇다고 이해가 아예 안 되었던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우리와는 달리 그 집은 엄마가 등원과 하원을 모두 하니까 같은 일을 겪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혹여나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 엄마는 어떤 선택을 할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생각지 않았던 하원 위기를 잘 헤쳐나갔다.

우리도 증상 하나 없이 아주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아이들 키우면서 변수가 많아서 어려울 때가 있긴 하지만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라서 괜찮다. 좋다.


한동안 별 일 없이 무탈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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