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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저나무 Sep 03. 2016

호란│원더랜드

원더랜드에 던져진 '앨리스'라는 이름의 우리

호란 HORAN - 앨리스 Alice Official M/V



음악가 : 호란(Horan)

음반명 : 원더랜드
발매일 : 2016.8.24.
수록곡
1. 참치마요
2. 다이빙
3. 마리
4. 마리와 나
5. 앨리스
6. 바이바이 원더랜드




 어렸을 적에는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루가 조금이라도 빨리 지났으면 하는 마음에 해가 채 떨어지기도 전에 베개에 머리를 누이곤 했었죠. 그 때는 그 주문이 소용 없는 줄 알았건만, 이제야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지금은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린 것 같거든요. 참 변덕스럽죠? 분명 목소리도 굵어지고, 키도 크고 했지만 마음 만은 아이인데, 세상은 나에게 바라는 게 너무나도 많습니다. 때로는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내려놓고만 싶기도 합니다. 잠시 쉬어가고자 손을 들면 주변에서 말하죠. "어른이 왜 그래?"

그대 나를 찾지마요
도망가지 말아요
난 보들보들 그댈
기다리고 있어요
- '참치마요' 中 -

 <원더랜드>의 이야기는 바로 '부조화'에서 출발합니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 '다름'으로 인해 상처 받은 아이. 때로는 단어로, 때로는 서사(敍事)를 통해 원더랜드에 던져진 6명의 앨리스가 느낄 부조화를 그려갑니다. 첫 곡인 '참치마요'는 제목부터 아주 재미있습니다. 도저히 노래 제목으로 나올 수 없을 것만 같던 이름이 제목에 떡하니 박혀 있기 때문이죠. 오타도 아니죠. 코믹 터치로 진행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곡은 부드러운 보사노바 풍의 진행을 보입니다. 은은하게 깔리는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클래지콰이(Clazziquai)를 연상케 합니다. 달달한 선율과는 달리 곡은 어딘가 쓸쓸합니다. 바로 노랫말 때문이죠. '보들보들 그댈 기다리'는 '나'를 그대는 '나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물론 화자인 '나'도 그것을 잘 알고 있죠. 그대가 와주기만을 바라는 수동적인 화자의 모습이 '보들보들'이라는 사랑스러운 표현, '오지 않는 그대'라는 장치와 맞물려 부조화를 자아냅니다.

 이어지는 곡 '다이빙'은 서두에 언급한 상황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숨이 차지만' 결코 '들켜서는 안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여선 안될 '그들'이란 우리에게 어른이길 강요하는 바로 그들이겠죠. 결국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주인공은 물일지 바닥일지도 모르는 곳으로 몸을 던집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발랄한 사운드 탓이겠죠.

고요한 네 머리속엔
비밀의 친구가 있니
마리야
네 작은 세상에
우리가 너무 크진 않았니
항상
- '마리와 나' 中 -

 '마리', '마리와 나'에서는 세상과의 부조화로 고통스러워 하는 이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마리'라는 아이의 모습으로 말이죠. 노래가 진행되는 동안 마리는 그 부조화를 끊임 없이 자신의 탓으로 돌립니다. '내가 아니었다면 / 처음부터 없었더라면 / 그대는 좀 더 많이 웃었을까요'. 하지만 <원더랜드>에 들어온 여러분이라면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겁니다. 결코 마리의 탓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마리와 나'는 여러분의 그런 목소리를 대변하는 곡입니다. 타인의 기준으로 평가 받는 무정한 세상에 상처 받은 마리를 위로해줄 이가 나타납니다. '네 작은 세상에 / 우리가 너무 크진 않았니'라는 따뜻한 말과 함께 말입니다. 작다는 것이 하찮다는 의미가 아님을 그는 분명 알고 있을 테지요.

 마리로 그려졌던 상처 받은 아이는 드디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합니다. '앨리스'라는 이름의 소녀로 말이죠. 자신이 원더랜드에 던져진 앨리스라는 사실을 자각한 소녀는 수동적이었던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극적이며, 또한 도발적입니다. '참치마요'의 화자처럼 마냥 기다릴 생각 따윈 없습니다. 'Boy'로 그려진 상대에게 입맞춤을 건네며 안달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사랑에 목숨을 걸 생각은 없습니다. '진실은 필요 없'습니다. '기억 따윈 날'린 채 그저 순간을 즐기고 싶을 뿐이죠.

bye-bye, bye-bye
넌 부서져라 웃는다
너는 예쁜 clown

bye-bye, bye-bye
더 이상의 슬픔은 없어
귀찮을 뿐이니까
- '바이바이 원더랜드' 中 -

 순간의 사랑을 끝내고(혹은 잠시 뒤로 하고) 앨리스는 먼 곳을 바라봅니다. 자신을 가둬뒀던 원더랜드를 바라보며 말이죠. '반짝이는 악몽', '예쁜 clown', '달콤한 꿈'. 한 때 앨리스가 동경의 눈으로 바라봤던, 또한 좌절감을 안겨줬던 모든 것들에 작별인사를 건넵니다. "더 이상은 너로 인해 울지 않을거야."라는 선언과 함께 말이죠. 진정한 자신을 찾은 앨리스의 삶 2막이 이제 시작된 것입니다.

 저마다 다른 주인공을 내세운 듯한 6곡이지만 그들은 모두 내면에 같은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원더랜드라는 이상과 '하찮은(줄로만 알았던) 나' 사이의 부조화라는 상처 말이죠. 하지만 결말은 어떤가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깨달은 앨리스는 원더랜드를 뒤로 하고 자신의 길을 떠나죠. <원더랜드>는 이러한 서사가 음악과 맞물려 높은 시너지를 발휘한 훌륭한 음반입니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될 사실이 있습니다. 원더랜드에 작별을 고하는 앨리스의 얼굴이 '얼룩져' 있었다는 사실을요. 얼룩진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앨리스는 스텝을 재촉합니다. 마음 한 구석에 아직 미련이 남아있는 탓이겠지요. 언젠가 그 미련이 앨리스의 발목을 잡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더랜드>의 다음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지는군요.

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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