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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저나무 Sep 03. 2016

넬(NELL)│C

새롭게 갈아입은 몽환의 외피

[MV] NELL(넬) _ Dream catcher


음악가 : NELL(넬)
음반명 : C
발매일 : 2016.8.19.
수록곡
1. 습관적 아이러니
2. Day after day
3. 시간의 지평선
4. Dream catcher
5. 어떤 날 중에 그런 날
6. Home
7. 이명
8. Full moon
9. Sing for me
10. 희망고문
11. Let the hope shine
12. Too late (Only for CD)




몽환적 (夢幻的) [몽ː환적]
[관형사·명사] 현실이 아닌 꿈이나 환상과 같은. 또는 그런 것.


 '몽환적이다'. 예술 작품을 형용하는 표현으로 종종 접하게 되는 말입니다. 뜻부터 알 듯 말 듯한 기운을 풍기지만 포털 검색에만 '몽환적인 사진', '몽환적인 영화', '몽환적인 팝송' 등 다양한 표현이 연관 검색어로 출력될 정도로 익숙한 단어지요. 이 묘한 단어가 우리 주위를 끊임 없이 맴도는 까닭은 그것이 가지는 '느낌적인 느낌'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형태가 그려질 듯 그려지지 않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아슬아슬한 상태를 사람들은 즐기고 있는 것이지요. '경계'의 어느 지점에서 무지와 각성 사이를 헤엄친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몽환적이란 것은 단순히 작품을 그럴 듯 하게 포장하는 어휘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경계 너머 어딘가에 주체가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이 반드시 있어야 하지요. 작품의 메시지 혹은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명확한 주제 의식 없이 그저 몽환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만 빌려온 작품은 속 빈 강정이 되기 쉽습니다. 감상의 주체가 간신히 손을 뻗은 순간, 자신이 찾던 주제가 아닌 껍데기 뿐인 상태를 발견한다면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과연 특유의 몽환감을 통해 팬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넬은, 7번째 음반에서 청자들에게 기쁨을 안겨줄 수 있을까요?

 첫 곡인 '습관적 아이러니'부터 넬 특유의 몽환감이 발휘됩니다. '습관처럼 너의 그 이름, 그 모습 찾게 되지만' 정작 '니가 없는' 상황을 몽환적으로 노래합니다. 주목할 점은 몽환감을 실어나르는 방식이 전자음에 대폭 의지하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전자음이 넬의 음악에서 드러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만, 음반 전체의 방향키를 전자음이 쥐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특히 전작 <Newton's Apple>의 첫 번째 트랙 'Fantasy'와 비교했을 때 더욱 그렇습니다(인트로 격인 'Decompose'는 논외). 전자음이 보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음악을 주도하는 것은 밴드 사운드였습니다.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대표되는 구성이 말이죠. <C>에서는 이러한 구성이 역전됐습니다. 전자음이 전면에 드러나 곡의 주제(선율)을 그려갑니다. 밴드 사운드는 전자음이 미처 채우지 못한 소리의 여백을 채우며 조력자 역할에만 집중합니다.

 타이틀 곡 'Dream catcher'가 이 점에서 흥미 있게 바라보아야 할 곡입니다. 통통 튀는 느낌의 전자음이 서두를 여는 이 곡은 행진곡을 연상시키는 드럼이 긴장감을 고조시키다 풍성한 코러스가 함께하는 후렴으로 이어지는 진행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록 밴드보다는 교회 합창단의 장엄함을 품은 것이 록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지만은 않겠다는 팀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다음으로 주목할 만한 곡은 '이명'이 있습니다. 제목처럼 기이한 소리가 곡을 끌어가는데(아마도 보코더를 이용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다양한 소리를 추구하려 했던 넬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사운드 만큼이나 노랫말의 변화도 눈에 띕니다. 'Day after day'를 보겠습니다. 'I'll sail through the pouring rain / 물론 다 흠뻑 젖을 테지만 그러면 어때'. 몽환감과 더불어 특유의 우울함으로 청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넬의 노랫말과 어딘가 다르지 않나요? 분명 '당신이 없는 상실의 상황'은 그대로 입니다. 그러나 화자의 태도는 이전과 다릅니다. 절망의 밑바닥을 기어가던 화자가 고개를 들어올립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립니다. 고개를 들고, 가야할 곳을 찾은 화자는 그 어느 때보다 굳은 의지로 충만합니다. 말하자면 '상실 속의 긍정'이라고나 할까요. 이어지는 트랙 '시간의 지평선'에서도 이러한 태도는 이어집니다. '과분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순간들'. 과거의 일이지요. 하지만 어떤가요? 여기서도 화자는 마냥 절망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반추하고 있지요. 어떤가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 화자가 연상되지 않나요?

 충격적인 음반은 아닙니다. 그러나 훌륭한 음반입니다. 다른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우리가 알던 넬이 있습니다. 팀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쉽사리 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넬에게 그런 우려 따위는 필요 없었나 봅니다. 새롭게 갈아입은 몽환감의 외피 속에 넬만의 색깔이 그득하지요. 실험은 변심이라는 비난이 되고, 스타일의 고수는 도전의식의 부족이라는 조롱이 되어 돌아오는 까다로운 대중에게 밴드는 <C>로 보기 좋게 한 방을 날리고 말았습니다.


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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