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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저나무 Sep 22. 2016

이상의날개│의식의흐름

무언(無言)의 말이 걸어오는 대화

[M/V] Wings of the ISANG (이상의날개) - Stream of consciousness (의식의흐름)



음악가 : 이상의날개

음반명 : 의식의흐름

발매일 : 2016.9.6.

수록곡

1. 의식의흐름

2. 붉은하늘

3. 코스모스

4. 신세계

5. 눈

6. 날개

7. 망각

8. 오월

9. 상실의시대

10. 검은바다

11. 공




 편지보다는 메신저가, 만남보다는 전화가 익숙해진 것이 언제부터였을까요. 지하철의 인파에 치이고, 갈수록 오르는 밥값에 치이고, 인생에 치이는 일상 속에서 이젠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을 마주 보며 대하는 일도 줄어들게 되지요. 관계 맺음에 지친 지금, 더 이상 내 어깨를 짓누를 무언가를 만들고 싶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 관계에 지친 우리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는 음악이 있습니다. 일정한 빠르기로 똑, 똑, 똑. 균일한 강도의 노크 소리가 들려옵니다. 수상한 사람이면 어쩌나, 렌즈로 문 너머를 살펴봅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청년이 서 있습니다.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문 너머 나의 존재를 깨달은 것일까, 그가 먼저 말을 걸어옵니다. 나쁜 짓을 하다 걸린 것만 같은 마음에, 무심코 문을 열어주고 맙니다.


 청년은 마주 앉아 나를 바라봅니다. 그가 먼저 말을 꺼내길 기다려보지만, 좀처럼 입을 열지 않습니다. 대신 검은 눈동자가 나를 뚫어져라 향하고 있습니다. 하늘, 바다, 꽃.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눈동자에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말없이 마주 보고 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터라, 금세 고개를 돌리고 맙니다. 괜히 시계를 쳐다보고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리지만 여전히 그의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습니다. 왜죠?


 <의식의흐름>이라는 이름의 청년은 80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청자인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언어는 아닙니다. 눈썹, 입꼬리, 손의 움직임 등이 그것을 대신합니다. 이 무언(無言)의 말이 하고자 하는 것은 설득입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노랫말이나 명확한 기승전결이 아닌 트레몰로(같은 음을 반복적으로 연주하는 주법) 주법 중심의 기타 리프, 변칙 없이 반복·진행되는 곡 구조를 통해 말이죠. 그러나 그 설득의 목적이 어떠한 주장이나 의견은 아닙니다. '의식의흐름'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구체적인 사상을 제시하기보다는 순간의 느낌, 그 느낌을 청자와 공유하는 순간 자체가 바로 음반의 목적입니다. 서두의 표현을 빌리자면 '관계 맺음'에 목적을 두고 있는 음악인 것이죠.


 넓게 보아 포스트록의 범주에 들어갈 이 음악은 어느 순간 우주에서 뚝 떨어져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청자를 위한 배려가 녹아 있습니다. 포스트록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노이즈가 심하게 섞인 기타 톤, 들릴 듯 말 듯 웅얼거리는 보컬 등의 요소는 <의식의흐름>에서 보기 힘듭니다. 각각의 악기는 확실히 구분되는 고유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음반의 포문을 여는 동명의 트랙 '의식의흐름'에서 나타나는 기타의 트레몰로와 아르페지오, 단순하지만 묵직한 존재감을 뽐내는 '붉은하늘'의 베이스 등이 그 사례입니다. 보컬 또한 목소리를 높여야 할 순간에는 망설이지 않습니다.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날개'가 그렇듯 말이죠.


 일견 지적인 듯 보이지만 내면에는 그 어떤 음악보다 깊은 감성을 담고 있는 음반입니다. 그 감성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단 하나입니다. 이 음반을 듣게 될 당신과의 관계 맺음말이죠. 관계만을 위한 관계, 관계 그 자체를 바라보세요. 결과가 없어도 좋습니다. 손안에 남는 게 없어도 좋아요. 여러분과의 관계 맺음이야 말로 이상의날개라는 팀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니까요.


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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