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벨벳│러시안 룰렛
완성형 아이돌 그룹이 그려가는 큰 그림(Big Picture)
음악가 : 레드 벨벳(Red Velvet)
음반명 : Russian Roulette - The 3rd Mini Album
발매일 : 2016.9.7.
수록곡
1. 러시안 룰렛 (Russian Roulette)
2. Lucky Girl
3. Bad Dracula
4. Sunny Afternoon
5. Fool
6. Some Love
7. My Dear
'디스코그래피(Discography)'란 말을 아시나요? 사전에서 말하길, '작곡가별, 연주가별, 장르별 따위 특정한 목적 아래 그것에 관한 음반을 망라하고, 여러 가지 데이터를 수록한 목록'이라고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음악가 A의 디스코그래피'와 같이 작곡가나 장르보다는 음악가를 기준으로 살펴보는 것에 익숙하죠. 디스코그래피가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정리 작업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머릿 속에 추상적으로만 그리고 있던 음악가의 세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죠. 또한 해당 음악가의 세계가 어떤 식으로 변화했는가, 가령 음악가의 삶이 음악으로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사적(史的)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음악 시장이 앨범에서 싱글로, 음반 구매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재편되면서 디스코그래피는 점차 정리 작업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게 됩니다. 3~4분 내외의 짧은 곡에 담을 수 있는 음악가의 세계가 그만큼 한정되어 있고, 편하게 재생목록을 수정할 수 있는 스트리밍의 특성 상, 40분 이상의 정규 음반을 끝까지 듣고 있는 건 상당히 피곤한 일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레드 벨벳이 아이돌 전성시대 이래로 대중과 평단 모두의 호평을 받고 있는 건, 바로 디스코그래피 단위로 음악을 바라보는 전략을 취한 덕분입니다. 소녀시대가 대중성을 획득함으로써 시장을 열었으며, f(x)가 보인 실험을 통해 아이돌에도 '음악가' 혹은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이 부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레드 벨벳은 바로 이 두 그룹의 장점만을 녹여낸, 이른바 완전체 아이돌에 다가가는 중입니다.
'Red'와 'Velvet', 강렬함과 부드러움이라는 상반된 콘셉트를 번갈아가며 시도해왔던 이전의 음악들과 비교했을 때 <Russian Roulette>은 일견 Red 쪽에 속해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음반은 지금까지의 레드 벨벳 중에서도 가장 중간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한 귀에 들어오는 중독성 있는 선율이 '러시안 룰렛 (Russian Roulette)'를 Red로 규정짓고 있지만, 음악이 청자를 설득하는 방식은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럽습니다. '누가 들어도 레드 벨벳'이라고 생각할 강렬한 훅이 인상적이었던 'Ice Cream Cake'이나 'Dumb Dumb'과는 달리, 그 중심이 악절(樂節) 단위에서 음표 단위로 옮겨갔다는 인상입니다. 음악의 노림수가 좀 더 작은 요소로 옮겨간 만큼 곡의 구조는 격정보다는 차분함으로 펼쳐지게 되죠.
자칫하면 이도 저도 아닌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시도가 긍정적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까닭은 서두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레드 벨벳이 디스코그래피 전체를 놓고 평가 받아 마땅한 그룹이기 때문입니다. 이름에서부터 상반된 콘셉트를 내놓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이들이 청자가 느낄 이질감을 어떻게 한 데 품을 수 있을 지를 봐야합니다. 레드 벨벳이라는 이름 하에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Russian Roulette>은 디스코그래피의 도드라진 점이 아니라, 그 점들을 이어주는 선이라 하는 것이 맞겠군요. 왜 그런 선이 필요하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Red와 Velvet, 그 둘 모두가 레드 벨벳이기 때문이죠. 비록 지금까지는 Red 쪽의 성적이 좋긴 합니다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Velvet으로 돌아올 겁니다. 그리고 그 때, 지금은 '그냥 좋기만 한 노래' 정도로 인식될 이 곡이, 레드 벨벳의 상반된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로서 기능하리라 확신합니다.
4.0/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