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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저나무 Nov 10. 2016

에이퍼즈(A-FUZZ)│UNDERWATER

오선지 위에 섬세하게 수놓은 에이퍼즈의 수중 세계

[온스테이지] 260. 에이퍼즈 - Scene#1


음악가 : A-FUZZ(에이퍼즈)

음반명 : UNDERWATER

발매일 : 2016.11.04.

수록곡

1. Drown

2. 숨 Breath (Feat. 최삼)

3. Forgotten City

4. Man From The East

5. Underwater

6. Scheherazade

7. Bye Blur Blues

8. Horizon

9. Dive

10. Undercurrent



*편의상 경어체는 생략합니다.

*관련 영상이 없는 관계로 부득이하게 타 음반 수록곡으로 대체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이야기가 범람하는 시대다. TV에서 들려오는 정치가의 스캔들, 예능 프로그램의 한 코너, 블록버스터 영화의 영웅적 일대기 그리고 친구와 소소하게 떠들던 농담까지. 우리는 이제 한시라도 이야기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음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발라드,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포크, 기성세대의 권위에 대한 저항을 외치는 록 음악 등 음악 또한 음악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노랫말의 형태로 담아내는 것이 (대중의 입장에서) 주류가 되어가고 있었다.


 때문에 A-FUZZ라는 그룹은 시작부터 페널티를 안고 갈 수밖에 없었다. 노랫말 없이 연주곡으로만 승부를 보는 그룹에게 서사에 익숙해진 대중들이 얼마나 호응을 보낼지는 미지수니 말이다. 리싸(leeSA), 고영배가 각각 목소리를 빌려준 지난 두 싱글, "Mr. 수박 (With leeSA)"과 "좋아 (Feat. 고영배)"가 타협처럼 느껴졌던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시장에서의 한계를 느낀 이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숨 Breath (Feat. 최삼)"을 제외한 전곡이 연주곡만으로 채워진 에이퍼즈의 첫 정규 음반은 연주곡만이 가질 수 있는 음악의 서사를, 느리지만 매우 섬세하게 구축해 간다.


 <UNDERWATER>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은 소리의 균형에 있다. 보컬 없이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만으로 구축해가는 수중 세계는 너무나도 안정적이다. 이미 그 실력으로 정평이 나 있는 김진이(기타) 뿐 아니라 세션 활동을 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멤버들임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주도권을 독차지하려들지 않는다. 리듬 파트는 묵묵히 리듬이라는 지반을 다져가며 기타와 키보드는 적절히 공수(攻守)를 주고받는다. 그렇기에 "Drown"이 들려주는 헤비메탈 리프에 놀랄 필요는 없다. 이는 어디까지나 외피일 뿐, 마음을 진정시키고 소리의 질감을 느끼자. 묵직한 리듬 위로 키보드가 피아노와 리드 사운드 등을 오고 가며 소리를 수놓는다. 청자를 압도하는 감각이 '물에 흠뻑 잠기다'라는 제목과 더없이 잘 맞아떨어진다.


 물에 잠긴 '그(서사의 주체)'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호흡'이다. 음반에서 유일하게 목소리를 담은 곡인 "숨 Breath (Feat. 최삼)"은 어두운 물속에서 쉬게 된 숨을 사랑에 빗대 표현하고 있다. 영롱한 건반음과 함께 어쿠스틱하게 진행되던 곡은 4분 즈음에 이르자 속도감 있는 전개를 보인다. 첫 숨을 들이쉰 그가 제대로 수중 세계를 직시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순간이다.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Forgotten City", 말 그대로 잊힌 도시다. 유려한 리드 사운드와 함께 그는 미지의 세계를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한다.


 이어서 그의 시선이 다다른 곳은 그 자신이다. 악기의 격렬한 즉흥연주와 함께 낯선 세계에 던져진 자신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 순간("Man From The East"), 그는 더욱 깊은 곳으로 침전한다("Underwater"). 수록곡 중 가장 긴 길이를 갖게 된 것은 주체에게 엄습한 고독이 그만큼 무겁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유감스럽게도, 그 이후 서사의 주체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Scheherazade", "Horizon" 등 이어지는 곡에서는 주체가 아닌 수중 세계로 시선이 옮겨 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앞선 트랙들과의 유기성이 다소 떨어졌다고 생각될지 모르겠으나, 음반의 서사가 특정 인물의 시점에서 그려지기보다는 수중 세계 자체를 구축하고자 했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약점이라 보기는 어렵다.


 메시지를 읽어내려는 청자의 적극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연주곡은 불친절한 음악이다. 하지만 세상 일이 쉽게 쉽게 풀려만 간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숨겨진 보석을 발견하는 쾌감이야말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청자에게 연주곡이 선사하는 최상의 즐거움이다. 그러한 즐거움을 경험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UNDERWATER>가 구축한 섬세한 세계는 훌륭한 안내자가 될 것이다.


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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