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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저나무 Jan 11. 2017

3호선 버터플라이│Divided By Zero

우연으로 가득 찬 나날을 보내는 우리에게

3호선 버터플라이│Divided By Zero│ORM Ent., 2017.

음악가 : 3호선 버터플라이

음반명 : Divided By Zero

발매일 : 2017.01.06.

수록곡

1. 나를 깨우네

2. Put Your Needle On The Groove

3. Sence Trance Dance

4. Ex-Life

5. 선물

6. 호모 루덴스

7. 신호등

8. Zero

9. 내 곁에 있어줘

10. 안녕 안녕

11. 봄바람

12. 감정불구


 이야기가 없는 세상을 생각하곤 한다. 용감한 영웅이 마왕을 무찌르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 따위의 서사가 없는 세상을 말이다. 이야기, 달리 말해 명확한 서사가 없는 세상에서는 제 아무리 용사라 해도 안전하지 않다. 신호를 무시하고 폭주하는 자동차 따위에도 비명횡사하는 일이 가능하다. 누군가의 손이 빚어낸 이야기와 달리,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불확실으로 가득 찬 까닭이다. 우연성 혹은 불확실성이라 불리는 것에서 한 발짝이라도 더 멀어지고자 우리는 끊임없이 발버둥 친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악이 어딘가 어긋나고 뒤틀린 듯한 인상을 줬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며 아등바등하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불확실성'에 온전히 몸을 던지고 있었다. 명확한 서사보다는 순간의 인상을, 치밀한 상징보다는 파편적인 단어의 나열을 노래해왔다. 만약 <Divided By Zero>를 경험한 당신이 그로부터 유의미한 무언가를 도출해내려 고민한다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조각조각난 채 음표 사이를 부유하는 생각의 파편을 느끼는 것. 그것이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악을 즐기는 방법이다.


"위화감이 빚어내는 쾌감"
3호선 버터플라이 3rd Line Butterfly - 나를깨우네

 희뿌연 장막을 걷어 올리는 곡은 "나를 깨우네"다. 11분에 달하는 대곡의 시작을 반복적인 베이스 리프가 장식한다. 그러나 청자를 감싸는 것은 명료함보다는 기묘함이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일렉트로니카의 향취 때문이다. 단순한 효과음으로 치부하기엔 그 잔상이 남기는 선율이 제법 인상적이다. 잔상은 이어지는 트랙, "Put Your Needle On The Groove"에서 비로소 온전한 형상으로 거듭난다. 음산한 신스 사운드가 청자를 휘감는 순간 탈출은 불가능하다. 그루브에 몸을 맡길 수밖에.


 관능미를 담은 댄서블한 트랙 "Sense Trance Dance"을 지나 마주한 "Ex-Life"에서는 서사와 사운드가 충돌을 일으킨다. 돈에 얽매여 바보처럼 살았던 과거(즉, Ex-Life)를 현재의 시점에서 반추한다는 (비교적) 명확한 서사를 극적으로 풀어낼 법도 하건만, 그저 그러한 내용을 나열하는 것에 그친다. 현재의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 길이 없는 탓에 음악과 서사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 채 뒤엉킨다. 하지만 그것이 빚어내는 위화감이 몽환적인 곡의 분위기와 어울려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는 보컬 남상아가 남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은 "선물"에서도 마찬가지. 3호선 버터플라이의 서사란 음악과 유기적으로 맞물리기보다는 그 자체로 독립적이다.


"무(無)로 나뉘다"
3호선 버터플라이 3rd Line Butterfly - 감정불구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의미에 걸맞게 포스트 펑크의 에너지를 담아낸 "호모 루덴스", 괴기스러운 보컬이 마력을 내뿜는 "신호등"을 지나면, 음반의 주제의식을 응축한 "Zero"가 몰아치기 시작한다. '무(無, 0)로 나뉘다'라는 함정과도 같은 명제에 사로잡힌 나. 언젠가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자신을 어리석다 이야기한다. 하지만 결코 좌절하진 않는다. 그 답이 무엇인지 찾으리라는 굳은 의지를 품고 화자는 악을 쓰고 기어간다. 우리가 애써 회피하고자 했던 불확실성을 배제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세상 그 누구보다 의지로 충만하다.


 그렇기에 깊은 곳으로 침전하는 "내 곁에 있어줘",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안녕 안녕" 등에서 절망, 체념 따위의 감정을 읽어내려 해서는 안 된다. 세계가 품고 있는 불확실성을 정면으로 마주하고자 마음먹은 그들이기 때문이다. 음악이 풍기는 기묘한 분위기는 절망보단 오히려 세계를 바라보는 그들만의 방식에 가깝다. "봄바람"을 들어보자. 상쾌한 플루트 선율과 함께 날려 보내는 메시지는 부드럽지만 또한 의지적이다. 불확실성의 바다를 헤엄치는 나비는 추운 겨울이 아닌 기분 좋은 봄날을 향해 나아간다.


 <Divided By Zero>는 '무언가'를 노래하지 않는다. 5번째 정규 음반에서 3호선 버터플라이가 노래하는 것은 포착된 어떤 대상이 아닌, 불확실성(밴드는 이를 '우연성'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 자체이다. 음반의 아트워크가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만들어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우연 속에서 빚어진 여러 가지 환상. 우연이 빚어낸 비합리적인 표현. 우리가 기를 쓰고 쟁취하려는 필연의 평형추는 그들에게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내 맘이 얼어버리는' 그 순간이, "감정불구"가 되는 그 순간이 온다 할 지라도 나비는 날갯짓을 멈추지 않을 것이므로. 언젠가는 '무(無)로 나뉠 그 순간'을 기대하며.


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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