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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저나무 Feb 02. 2017

자이언티│OO

이젠 우리가 자이언티를 들여다볼 차례

Zion.T(자이언티)│OO│THE BLACK LABEL, 2017.

음악가 : Zion.T(자이언티)

음반명 : OO

발매일 : 2017.02.01.

수록곡

1. 영화관

2. 노래

3. Comedian

4. 미안해 (Feat. Beenzino)

5. 나쁜 놈들

6. Complex (Feat. G-DRAGON)

7. 바람 (2015)

8. 영화관 (Inst.)


 폰트가 깨진 것 같기도 하고, 이모티콘 같기도 한 기묘한 음반명이다. 마땅히 붙일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던 찰나, 첫 번째 정규 음반 <Red Light>의 아트워크를 떠올린다. 붉은 중절모를 머리에 얹고 둥그런 안경을 쓴 채 스톰트루퍼의 소총 같은 것(?)을 우리에게 겨누는 사내의 모습. 그 얼굴 위로 떠오른 구겨진 미간과 턱의 주름이 날카로운 시선을 암시한다. 즉, 청자가 자이언티의 시선을 따라가는 경험이 음반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음반의 포문을 여는 트랙 "O"의 노랫말이 '너'를 바라보는 '나'의 서술을 중심으로 쓰였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OO>는 다르다. 원색의 강렬함은 빛이 바랬으며 잔뜩 찌푸렸던 얼굴도 무표정으로 바뀌었다. 외알 렌즈 대신 자리 잡은 쌍안경 너머의 사내의 시선은 허공을 향한 듯하다. 그렇다면 본작이 제공하는 경험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져봄 직하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말해 틀린 표현이다. 음악 속 자이언티는 어떠한 경험도 '제공하지' 않는다. '너'로 표상되는 외부를 향해 시선을 던지는 화자는 더 이상 없다. 이제는 청자가 움직일 차례다. 쌍안경 너머 그의 마음을 향해.


Zion.T - ‘노래(THE SONG)’ M/V

 기타 선율을 타고 들려오는 보사노바 리듬의 "영화관"은 청자가 자이언티의 내면으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일종의 신고식이다. '나'와 '너'라는 인물 구도는 여전하지만 중심 내용은 상대방이 아닌 그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심리'에 맞춰져 있다. '너의 한마디 대사에 집중'하며 언제까지 두 사람만의 영화를 찍어갈 수 있을까 걱정하는 화자의 심리 말이다. 자극적인 기계음 대신 기타, 베이스 등 리얼 세션의 비중을 높인 것은 청자의 깊은 이입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다. 본격적인 밴드 포맷으로 전개되는 "노래" 또한 평범한 연가(戀歌)와는 다르다. 'It's your song'이라 말하지만 노랫말이 담아내는 것은 상대방의 아름다움이 아닌 화자의 마음인 탓이다. 여기에 "꺼내 먹어요"를 떠올리게 하는 '주머니 속에 꼭꼭 숨겨놓았던 이 노래'와 같은 소박한 표현이 그 마음에 매력을 더한다.


 음악 속 자이언티가 재치와 긍정으로만 충만한 것은 아니다. '난 어쩌면 카메오가 아닐까'라며 존재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가 하면("영화관") 내면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껍데기만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Comedian"). 그러한 마이너스적 요소가 응축된 순간이 바로 "나쁜 놈들"이다. 자이언티 스스로 욕망에 대한 이야기라 밝힌 이 곡은 상대방의 사랑을 얻고 싶은 심리를 '부자'와 '벌다'라는 표현을 빌려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나 '그래 근데 너보다는 / 내가 중요하지', '금방 토가 나올 것 같은데도 / 더 집어넣고 싶어'라는 화자의 거친 말들은 마냥 순수할 것 같았던 사랑의 심리를 소유의 욕망으로 물들인다.


 전작에 비해 대중적이라는 비난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이언티는 주제의식의 강화를 통해 이를 상쇄한다. 수동적으로만 느껴졌던 태도를 점차 의지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양화대교 그 가수'라는 수식어를 콤플렉스에 빗대어 이를 벗어던지고 싶어 하며("Complex (Feat. G-DRAGON)"), '아무것도 아닌 놈'인 자신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주길 바라는 '음악가 자이언티'의 모습 말이다("바람 (2015)"). 자이언티라는 인물을 함부로 정의 내리기에는 쌍안경 너머 그의 세계가 제법 깊다.


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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