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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근 Sep 30. 2015

토터스 : 정보생성자 (15)

TOTERS : Who making information

 아너스 데이(Honor's Day)의 중국(中國)과 워터리그(Water League)가 무력충돌을 일으킨 남극기지. 남극에 대한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워터리그는 네덜란드 지부 CEO 히로세 카조우를 중국으로 파견해, 황제와 교섭을 시도했다. 몇 시간의 교섭 끝에 워터리그는 인질로 잡고 있는 토터스 - 파워 국장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중국과 협상을 이루어냈고, 중국 암살집단 십이지의는 남극기지에서 철수했다.

 히로세 카조우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자마자 자금성을 떠났다. 목적을 이룬 후였기에, 더 이상 머무를 필요가 없기도 했지만, 제일 큰 이유는 황제를 접견하려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 토터스 - 시각의 국장 자리에 있는 자일스 E. 레드펜더도 있었다. 내쫒기다 시피 했던 히로세와 달리, 자일스는 중국 황제에게 환영받는 존재였다. 그 이유로 여러 가설이 있었다. 그 중 황제가 그의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제일 유력한 가설로 인정받고 있었다.

 70년 전, 2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에는 가치로 인한 대립보다 먼저, 경제공황이 닥쳐왔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산주의를 표방하던 중국은 한국 지역에의 개입 후 다른 어떤 전쟁도 치르지 않았다. 100만에 이르는 군사가 실업자가 된 것이었다. 세상은 ‘거꾸로의 시대’ 시작이었다. 중국 황실은 갈등에 휩싸였다. 군비축소를 하자니, 군사정권의 압박이 두려웠고, 가만히 두자니, 군비의 재정적 수요를 감당하지 못 했다. 중국 황실이 이도저도 못 하는 사이, 나라 경제는 더욱 피폐해져갔다.

 중국 황실은 시장 경제를 이해하지 못했고, 공산주의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지도 못 했다.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경제상황에 대해, 주변국의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들을 쳐다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전쟁 후, 틀어질 대로 틀어진 사이였기에, 도와줄리 만무했다. 세계은행도 망해가는 나라에 투자할 리가 없었다. 결국, 중국은 나라부도를 선언했고, 국가 신용도는 밑바닥으로 곤두박칠 쳤다. 국민들은 기아에 허덕였고, 나라의 대신들은 그런 국민의 원성을 어찌하지 못 했다.

 그리고 그때, 북쪽에서 홍건적이 일어났다. 중국 황실이 내세우던 공산주의와 달리, 평등과 평화를 외치는 홍건적의 사상은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탄력을 받은 홍건적은 기하급수적으로 세력을 확장시켰다. 남하에 남하를 계속하던 홍건적은 마침내 수도 베이징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세계의 관심이 홍건적에 쏠렸다. 그 리더가 누구인지 궁금해 했다. 그런데, 홍건적의 리더는 가지고 있는 이름이 없었다. 대신 스스로를 주원장이라 불러주길 원했다. 과거 명 태조의 이름인 주원장을 말이다.

 홍건적의 리더 주원장은 수도를 점령한 즉시, 나라의 이름을 바꿨다. ‘중화민국(中華民國)’ . 오늘날의 ‘중국(中國)’ 으로 말이다.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나라의 분위기도 다시 살아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경제도 살아나는 듯 했다. 하지만, 주원장을 대표로하는 이들도 돈 앞에선 예외가 아니었다. 50만에 이르는 농민 군를 먹여 살릴 방책이 없었다. 수도 베이징을 점령할 때까지는, 농민들이 각자 들고 온 식량으로 버틸 수 있었는데, 이젠 아니었다. 돈. 돈이 문제였다. 세계은행은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다른 나라의 원조는 받기 싫었다. 그는 고심했다. 그는 다른 도움 없이 자신들이 스스로 일어나길 바랬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나라의 경제는 점점 기울어져갔다.

 그때, 나라가 무너지려는 그때, 주원장을 도와주겠다는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오토거스 E. 레드펜더. 토터스 - 영상(Image) 국장이자, 자일스의 아버지였다. 오토거스와 주원장이 만나고, 중국은 기적적으로 되살아났다. 그리고 10년 뒤, 중국은 아너스 데이에 가입하였고, 그 후 5년 뒤, 중국패왕 주원장은 사황제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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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너스 데이(Honor's Day) - 중국(中國) 베이징 시.


“껄껄껄.”


 위엄 있는 웃음소리가 자금성에 울려 퍼졌다. 황제는 단상에, 그리고 자일스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그래서 생전에 아버님께선 나에 대해 뭐라고 하셨나?”


“허풍이 심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크하하하.”


황제는 한참을 웃었다.


“웃기는 사람이었지. 재미있는 인간이었어. 지금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군.”


“아버지께서도 보고 싶어 하실 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건 그렇고. 내겐 무슨 일로 오셨나? 토터스 시각 국장.”


“아시는 군요. 제가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았다는 것을.”


“당연하지. 그리고 그 저주받은 능력도 이어받았다는 것도.”


“제가 무슨 능력을 말입니까?”


 자일스는 짐짓 모른다는 듯 발뺌을 했다. 하지만, 상대는 중국패왕이었다. 숱한 전쟁을 겪어온 그는 암살을 당할 뻔한 상황도 많았다. 자일스가 숨기고 있는 것을 모를리 없었다.


“네놈 머리 위에 권총이 있지 않나. 착시 현상을 일으키면 모를 줄 알았나?”


 자일스는 황제의 눈매에 놀랐다.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것을 그는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자일스는 금속 탐지기의 허점을 노려 머리 위에 착시현상을 일으킨 뒤, 그곳에 권총을 숨겨왔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황제 앞에서 들켜버린 것이었다.


“대단하시군요.”


자일스는 자신의 머리 위를 쳐다봤다. 여전히 착시현상은 발동되고 있었다.


“어떻게 아셨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E 를 가진 네놈들은 특이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지. 주변의 시각현상을 왜곡 또는 굴절 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야.”


“전. 어떻게 아셨냐고 여쭸습니다.”


 자일스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아니, 어쩌면 그가 그의 눈 근처의 공기를 왜곡 시켜, 매섭게 보이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크하하하. 그런 배짱은 어디서 나오나? 여전하군. E 를 가진 레드펜더.”


 그때, 자일스가 머리 위를 쳐다봤다. 주원장이 웃자, 머리 위에 올려서 가져왔던 권총이 떨리고 있었다.

‘떨린다. 주원장의 웃음소리에 파장이 일어나 내가 왜곡시킨 공간이 울고 있어. 그런 거였냐. 이제야 알겠군.’

 소리는 그것이 통과하면 그것의 파장에 의해 진동이 일어난다. 그래서 자일스의 왜곡 공간이 주원장에게 들킨 것이다.


“제가 만든 공간이 웃음소리에 의해 들켜버렸군요. 아쉽습니다.”


“날 죽이고 싶었나?”


“당연합니다. 제 아버지의 원수이니.”


“몇 번을 말해야 알겠나. 그건 오해야.”


“뭐라 하든 상관없습니다. 전 당신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요.”


“껄껄껄. 그렇지. 난 네 놈의 그 점이 맘에 들어. 올라가보지도 못할 나무를 계속 시도하는 그 헛짓이 말이다.”

황제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래서. 내게 원하는 것이 뭐지? 원하는 것이 있으니까 나를 찾아왔을 것 아닌가.”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크하하하. 괜찮으니 말해 보거라.”


“워터리그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워터리그를 무너뜨리자는 말. 이 엄청난 말을 자일스는 서슴치 않게 말했다.


“겨우 그따위 일로 날 찾아 온 것이냐.”


 하지만 도리어 황제는 비웃을 뿐이었다. 그의 비웃음에 자일스는 매서운 살기를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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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터스 - 파워 기지 - 브라질


 끼이이익.

 처형인이 문을 열었다. 여자 화장실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매캐한 냄새가 코끝을 찔러왔다. 일반적인 화장실 냄새는 아니었다. 처형인은 코를 막은 채,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 세면대에 안나가 있었다.


“우우욱.”


 세 번째였다. 더 이상 위에서 나올 곳도 없었다. 구토로 인해 그녀의 몸에 수분이 부족했다. 수분이 부족해 현기증까지도 생겼다. 눈앞이 멍해졌다. 바닥이 어디인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앉다가 무릎이 벽에 부딪혀 약간 찢어졌다.


“우우욱.”


 그녀가 또다시 게워냈다. 검초록 빛의 액체. 위액이었다.


“사...사람이. 내 앞에서 사람이 죽었어.”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시체뿐이었다. 총상에 관통당해 있는 토터스 - 파워 요원들의 모습이었다. 


‘살려줘.’


‘이대로 죽기 싫어.’


‘으아아악.’


 그녀의 상상 속의 사람들. 그녀는 시체가 된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 그녀의 몸을 잡는 환상을 꾸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회의감. 그녀는 피그 부대원들에게 죽은 파워 요원들의 모습에서 전쟁과 살인에 대한 혐오감을 느꼈다.


“안나. 안나. 정신 차려.”


 하지만, 그녀는 좀처럼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어.’


“안나. 정신 차려.”


 점점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사람이...’


“안나!”


 호흡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죽었어...’


“안나!”


 심장이 멈추고 있었다. 


 촤아아아.

 그녀의 얼굴에 찬 물이 뿌려졌다. 처형인이 뿌린 물이었다. 


“푸아. 하아. 하아.”


 물이 효과가 있었는지 다행히도 그녀의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처형인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말할 수 있어? 말해봐. 아무 말이나 해봐.”


“콜록. 콜록.”


“정신이 들어?”


 그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떨고 있는 손은, 그녀가 아직도 두려움에 떨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시체...처음 봤어요.”


 처형인은 말없이 그녀에게 어깨를 빌려 주었다. 안나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의 팔을 꼭 잡은 채로... 뉴질랜드로 당장 출발해야 했지만, 그도 인간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보여준 그녀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이 상태로 출발해 봤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잠시 동안은 이렇게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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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뭘 하겠다는 거냐?”


 주원장은 여전히 자일스를 의심했다.


“토터스 - 파워 국장 화이트베어가 토터스 - 자료에 인질로 있는 것은 아시겠지요?”


 그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워터리그가 교섭내용으로 화이트베어를 거론했기에, 그들이 생포한 줄 알았던 것이었다. 황제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히로세가 했던 말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워터리그는 자기네들이 잡았다고 했고, 이 놈은 토터스- 자료가 백곰을 잡았다고 했다. 누가 맞는 말이지? 어떻게 된 거야?’


“난 워터리그에게서 자신들이 생포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네놈은 토터스가 잡았다라...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데? ”


“맞는 말입니다. 토터스 - 자료와 워터리그가 손 잡았으니까요.”


“뭐?” 


“확실합니다. 그들이 같은 군대를 운용하는 사진까지 증거로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구만. 사실이었어.”


 황제는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워터리그와 자료가 손잡았다면, 떼고 생각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난 그들에게 7일 뒤, 그러니까 지금부터 5일 뒤에 워터리그와 만나기로 했다. 백곰을 넘겨받기로 했어.”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네놈은 어떻게 다 알고 있는가? 아니면 아는 체만 하는 것 아닌가?”


 황제가 자일스를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말끝마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대화를 전개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자일스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을 필요가 없었다. 따지자면 자일스는 토터스 국장이었으니까.


“자료의 팀장 중 한명이 저의 정보원입니다.”


“흥. 그런가.”


“그렇다면, 내가 워터리그를 만나러 스위스에 가는 것도 알고 있겠군?”


 황제는 그를 떠보기로 했다. 짐짓 거짓말을 하여 상대가 속아넘어가는 가 살펴보고자 했다. 하지만, 자일스도 만만치 않았다.


“틀리셨습니다. 황제께서는 워터리그와 뉴질랜드에서 만나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뉴질랜드 수도 월링턴에서 오페라 공연을 보기로 되어있으시겠죠. 저를 의심하고 있으신 것 압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전 황제께 도움을 요청하러 왔습니다. 그런 저의 입장에 거짓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한 발치고 나가는 자일스. 황제는 그의 말을 듣고 속으로 놀랐다.


‘토터스 - 자료 쪽에 정보원이 있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군. 내가 뉴질랜드에 가는 것도 정확히 알고 말야. ’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저 녀석이 원하는 것이 뭘까.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 뭣 때문에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지? 도움이라면 같은 편인 토터스 - 파워에게 요청하는 것이 더 수월할 텐데 말야. 무슨 생각이냐. 자일스.’


 둘 간에 한동안 대화가 없었다. 황제가 말없이 혼자 생각에 잠겨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러는 시간이 자일스에겐 낭비였다. 결국, 보다못한 그는 먼저 말을 꺼냈다. 


“전 아직 대답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래서 네가 얻는 것이 뭐지?”


“무슨 말씀이신지?”


“네가 무슨 목적으로 이러는지 모르겠단 말이다.”


“이미 말씀드렸을 텐데요. 전 당신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상, 당신을 무너뜨리는 길은 한 가지, 당신의 야망을 무너뜨리는 것이죠. 당신의 목표는 세계정복, 따라서 저의 목표도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워터리그를 무너뜨려야하는데. 그것이 혼자로는 어려운 것이죠.”


“크하하하”


황제가 크게 웃었다.


“비웃는 겁니까.”


“크하하하. 웃기지 않은가.”


“제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십니까.”


“그러면 우리 아너스 데이는 만만해 보이나?”


“아너스 데이가 그렇게 단단한 결속력을 지닌 집단입니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황제는 다시한번 자일스의 눈을 바라봤다. 그의 아버지와 똑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주원장!’


황제는 잠시 그의 아버지를 떠올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자일스를 쳐다봤다.


“크하하하. 마음에 든다. 난 네놈의 그 배짱이 참 마음에 들어.”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12척이 넘는 그의 키는 보통사람의 1.5배는 되었다. 그런 거대한 황제의 거동에도 자일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네 부친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네놈도 아버지의 명성에 걸맞는 남자지.”


황제는 자일스의 어깨를 잡았다.


“워터리그를 무너뜨리자고? 나와 손잡고 무너뜨리겠단 말이냐.”


“네.”


황제가 자일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좋다. 어디 네놈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 네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내가 평가해주겠다. 내가 무엇을 도와줄까. 꼬마.”


 황제의 말에 자일스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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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요.”


 사람에겐 공포와 추위가 같이 온다. 안나는 추위까지 떨고 있었다. 비교적 따뜻한 건물 안이었는데도, 그녀는 몸을 떨었다. 


“사람들이 왜 서로를 죽여야만 할까요. 왜 죽이지 않으면 안 되죠?”


 죽음에 대한 의문.


“그럼 내가. 내 자신이 죽으니까.”


 죽음으로부터의 자기보호.


“말로 설득은 해보셨나요? 시도라도 해봤냐고요.”


 안나는 결정적으로 모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왜 서로를 죽이려하는 지. 처형인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느꼈다.


“안나. 지금 이럴 시간 없어.”


 그는 ‘그때’ 를 놓쳐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었다.


“말 돌릴 생각 마세요. 지금 난 당신의 생각을 묻고 있다고요.”


“…….”


“왜 또 전쟁을 하러 가요? 왜! 왜! 왜!”


 안나의 언성이 높아졌다. 이건 이성에 의한 논의가 아니었다. 감성에 의한 싸움이었다.


“잠시 내 말을 들어봐.”


“왜!!! 왜! 왜...”


 그녀의 언성이 낮아지더니, 울기 시작했다.


“울지 말고 내말 좀 들어봐.”


“놔둬요. 지금 머릿속이 복잡해 죽겠으니까.”


“내말 좀 들어봐.”


“놔두라니까. 어서 가버려!”


 하지만, 처형인은 갈 수 없었다. 자신의 역할은 토터스 - 자료 쪽 사람들을 만나 국장을 구출해오는 것이었다. 자료 쪽에 아는 사람이 없는 그로서는 안나를 데려가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앉아서 울고 있는 안나 옆에 처형인도 앉았다.


“내가 이야기 하나 해줄게.”


 안나는 그의 말과 상관없이 계속 울었다.


“듣건 말건 상관없어. 이야기 해주고 싶은 것이 있어.”


 처형인은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는 떨어질 듯이 위태로운 전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30년 전이었지. 내가 아주 어렸을 때였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 잊을 수가 없는 기억이지... 그때 나는 다른 애들과 마찬가지로 화목한 가정에 살고 있었어. 그런데, 그런 어느 날. 평화스럽게 지내던 어느 날이었어.”


 콰과과광.

 비가 쏟아졌다. 하늘이 배가 아픈 듯 꾸룩꾸룩 거렸다. 이때는 화장실 가야지 하늘아. 라고 외치고 싶었다. 난 7살난 혜근. 조혜근이다.


촤아아아.

 비가 내렸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 밖에 있으면 감기에 걸린다고 엄마가 그러셨다. 그래서 난 집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가긴 싫었다. 왜냐하면 내 친구들과의 축구가 아직 덜 끝났기 때문이다.


 “와! 골! 골이다!”


 골을 넣었다. 난생 처음으로 축구에서 골을 넣었다. 비록 우리가 지긴 했지만, 옆 동네 애들도 우리가 이제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을 것이다. 나는 들뜬 마음에 비가 오는 것도 잊고 천천히 걸어갔다. 가능하면 이 골 맛을 잊어버리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엄마, 학교 다녀왔어요.”


 그런데, 이상했다. 돌아온 집에는 엄마가 없었다. 아빠도 없었다. 게다가 집 전체가 무너져 있었다. 가족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무너진 집 뒤로 집채만한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무서웠다.


꽈과광. 콰광.

 그랬다. 이 소리는 천둥이 아니었다. 탱크. 탱크가 발포하는 소리였다. 전쟁의 막바지가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때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집도. 가족도. 평화도. 


“으아아앙.”


 나는 울기 시작했다. 두려움에 떨었다. 혼자 남았다는 공포에.

“으아아앙.”


 그런데 그때, 멀리서 한 병사가 다가왔다. 미군 병사였다.


“팀장님. 여기 한 꼬마가 살아있습니다.”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 이사람. 그렇지만, 친근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생존자라면 어서 후방으로 넘겨. 걸리적 거린다.”


 탱크 위에서 말하는 이가 이 무리의 대장 같았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의 부하같았다.


“꼬마. 이름이 뭐냐.”


그가 내 이름을 물어봤다. 그러나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영어였으니까.


“으아아앙”


“이름이 뭐냐고!”


“이봐, 에드워드. 너무 그러지마. 꼬마 앤데 왜 울리고 그래? 영어를 알아들을 리기 있겠어? 한국 아이인데.”


“그런가.”


“으아아앙!!!”


“얘야. 잘 봐. 울지말고 잘 봐. 여기 초콜렛이 있네? 이거 줄테니까. 울지마.”


“으아아앙.”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울었다.


“야. 그만 울어라. 초콜렛 준다니까?”


“으아아앙”


“여기 여기 초콜렛. 음~ 맛있는 냄새.”


 나는 그제서야 초콜렛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갈색의 네모 반듯한 물체. 먹을 것이었다.


“그렇지. 이제야 조금 그치는 군.”


“아아앙”


“꼬마야. 이거 먹고 싶지?”


 그는 내게 먹는 시늉을 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그것을 나에게 주리라고. 나는 그것이 먹고 싶었다. 사실 배가 무진장 고팠으니까.


“이거 줄테니까. 내 말 들어. 울지 말고. 응?”


 나는 그가 말하는 것이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내 눈엔 초콜렛만 들어왔다.


“얘야. 난 에드워드란다. 네 이름은?”


“…….”


나는 정신없이 먹기만 했다. 맛있었으니까!


“난 에드워드야. 이제 네 차례지? 넌?”


 난 약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름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혜...근. 조혜근.”


“조혜근? 어째 이름이 발음하기가 좀 어렵네.”


 그가 말을 이어갔다.


“혜근이? 그래, 혜근아. 알아들을지 못 알아들을지는 모르겠지만. 넌 전쟁의 생존자야. 비록 네가 어리고, 영어라 알아듣지 못한다 해도, 생존자의 권리를 말해줘야 하니까... 게다가 지금 상황이 급하니까 빨리 설명할게.”


 그가 군번줄을 보여줬다.


“난 에드워드 J. 화이트베어 라는 사람이야. 브라질 태생이긴 하지만, 연합군 중 미군에 속해있는 사람이지. 직업 군인은 아니야. 그렇지만, 이 전쟁이 끝날때까지는 군대에 있어야 하지. 이제부터 내가 널 데리고 다닐 거다. 넌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나를 따라다녀야 해. 알아들었지? 그리고 다음으로, 또 이게 중요한데...”


“에드워드 요원! 왜 거기서 지금 그러고 있나?”


 아까 그 탱크 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아. 옙! 죄송합니다. 즉시 그리로 가겠습니다.”


“혜근아. 잠시만 있어. 금방 갔다 올게.”


 나와 에드워드는 그렇게 만났다. 전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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