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이런 의문을 달고 살았다. '결혼을 하면 아이를 왜 꼭 가져야 하지? 인생에서 굳이 아이가 있어야 하나?' 아이가 온전치 못한 가정에서 자란다고 하면, 나중에 성인으로 성장해서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사는 건데... 나는 내 아이에게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험난한 세상에 아이를 낳아 잘 기를 수 있을까?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것에 대한 굉장히 부정적이고 알 수 없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더불어 결혼에 대한 가치관도 흔들렸다.
여자로서 결혼해서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를 하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 잘 할 자신이 없었다. 내 부모로부터 정서적 지원을 많이 받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그보다 내가 성장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자기계발이 미덕인 시대에 살아남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남자에게 크게 흥미가 없었다. 내가 잘나면 남자들이 알아서 따라오겠지, 내가 발 벗고 나설 필요가 있을까?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어리기도 했지만 당시 나에게는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상당히 먼 이야기였다.
블로그를 통해 만난 남편과 5년을 연애했다. 취업에 번번이 떨어져 울먹이던 시절의 나, 남편은 감정 한 조각 섞지 않았다. "이번엔 준비가 부족했던 거야. 다시 하면 돼. 결과는 자기가 통제할 수 없잖아." 따뜻한 위로 대신, 그는 늘 원인과 해법을 말했다. 그럼에도 남편은 신뢰가 가고 믿음직스러웠다. 나는 우리가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할 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동요하던 결혼에 확신이 서다니, 나 스스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결혼을 준비하던 어느 날, 대화를 하다가 우연히 아이 이야기가 나왔다. 결혼은 하지만 나에게 아이 낳는 것은 다른 영역이었다.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서 결혼은 하지만 왜 아이를 낳아야 해?" 이 질문에 남편은 약간의 식은땀을 보이며 몹시 난처한 기색이었다. 반쯤 실없이 웃기도 하고 반쯤 말문이 막혀했다. 나는 속으로 '얼른 대답해 보라고! 날 설득할 만한 이유를!'이라고 외쳤다. 남편은 마땅한 이유가 없다는 듯 연신 뜸을 들이며 죄 없는 마른 입술만 깨물었다. 한참을 깊은 숨을 내쉬더니 "음, 당연한 거 아니야? 결혼하면 아이 낳는 거. 아니면 왜 결혼해?"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사귀면서 열에 아홉은 논리적이었던, 전형적으로 이성적인 사람의 답변이 고작 이거라니. 내가 고집스럽게 가지고 있던 생각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려 버렸다. 너무나도 본능적인 답변에 할 말을 잃었다. 사탕발림이나 감성적인 말로 내 마음을 바뀌게 할 줄 알았는데 당당한 남편 앞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아마도 우리는 이때 헤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에게 희한하게 끌렸다.
비교적 연애를 오래 했지만 신혼생활도 길게 갖고 싶었다. 연애와 결혼은 또 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역시 많이 달랐다. 요리를 하는데 양조간장을 넣네, 국간장을 넣네서부터 변기 뚜껑 좀 닫아라 말아라까지 사소하게 부딪혔다. 결혼 10년 차인 지금은 그동안 왜 그렇게 싸웠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싸움을 한 적보다 사이가 좋았던 시절이 훨씬 많았다. 둘이 같이 콘솔 게임을 하고 배드민턴을 치고 전 세계 여러 곳을 다녔다. 눈만 마주쳐도 대충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할 때 즈음 다시금 아이가 생각났다. 그렇게 함께한 시간들이 쌓이며 우리는 서로를 더 믿었다. 그 믿음은 내가 아이를 떠올리게 했다.
연애하던 지난날, 나는 아이에 대해 얼버무렸다. 남편은 남동생이 1명 있다. 자신이 그랬듯 아들 2명을 원했고 나는 원치 않았다. 서로 합의하고 조율한 끝에, 아이 1명은 갖기로 했다. 나는 남편과 결혼을 하고 싶었기에 "그... 래..." 하며 대충 동의하는 척을 했다. 나로서는 다소 황당한 남편의 답변을 최대한 이해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사기 결혼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마치 큰 빚이라도 진 것처럼 언젠가는 해야 하는 과업이었다. 때로는 약간의 짐이기도 했다. 무의식 중에는 늘 아이가 내 머릿속에 존재했다.
남편은 결혼생활 내내 아이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나를 기다려준 것인지, 나와 노는 게 즐거웠던 것인지 물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부담을 갖지 않게 하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양가 부모님도 우리에게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재촉하지 않으셨다.
2020년도 무렵에 나와 남편의 친구들과 지인들이 봄날의 벚꽃이 한꺼번에 피어나듯 연이어 임신 소식을 들려줬다. 신기할 정도로 그해에 몰렸다. 이때도 남편은 우리 아이 얘기에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남편은 아이를 바라기보다는 자신만의 길만 고요히 걸어가는 사람 같았다. 오히려 내가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라면 질색했던 내가, 아이를 어떻게 낳아 기르냐 했던 내가, 혹시나 아이가 나처럼 정서적으로 결핍 속에 자라면 어떡하지 걱정했던 내가, 어느 순간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것은 신생아의 마법이었다. 다들 아이를 출산했다며 보내오는 신생아 사진 속에서 나도 모르게 우리 아이가 그려졌다. 정말 예뻐 보였다. '우리 아이라면 어떨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아직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 혼자 우리 세 가족의 미래를 도화지에 물들였다. 내 아이도 아닌데 다른 아이가 몇 개월이라며 커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경이로웠다.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에게로 관심이 옮겨졌다.
현실적으로 슬프지만 늙어가는 내 나이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정말 원할 때 아이를 가지지 못한다면 자책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여러모로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겨울의 끝자락은 유난히 포근했고 나는 2021년을 바라봤다. 그리고 남편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나 이제 우리 아이가 갖고 싶어." 남편은 딱히 별말 없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를 좋아하는 남편이 얼마나 우리 아이를 기다렸을까? 조금은 미안해지기도 했다. 나는 과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남편이 말한, 결혼하면 '당연히' 하게 되는 임신을 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