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공백

by 포마람

대학병원은 매번 갈 때마다 붐볐다. 다른 진료과에 비해 유독 차분해 보이는 사람들이 낯익은 듯 낯설었다. 남편과 조용히 대기실에 앉아 있는 사이, 이름을 부르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섞여 들렸다. "이수현님, 3번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교수님은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겨주셨다. "네, 어서 오세요. 지난번 이후로 어떻게 지내셨어요? 불편하신 데는 없으셨고요?" 나도 모르게 교수님을 향해 작은 미소를 지었다. "어지러운 게 조금 남아 있긴 한데 잘 지냈어요." 정기 진료를 마치고 "자, 그럼 잘 지내시고 한 달 후에 봅시다." 교수님의 끝말에, 진료 전 요동치던 가슴이 비로소 가라앉았다.


진료실을 나와 익숙하게 간호사에게로 향했다. 다음 진료 예약일을 잡고 처방전을 받았다. 한 장의 종이에 적힌 내 이름을 확인하고 곧바로 밑에 보이는 문자로 눈길이 옮겨졌다.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그 문자를 한참이나 응시했다. 숨을 고르듯 처방전을 쥔 손이 힘없이 내려앉았다.


처방전에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내 또 다른 이름, F31.9 ‘상세 불명의 양극성 정동장애’ 긴 의학적 질병 용어 대신 짧은 단어 하나만이 내 가슴을 더 크게 울렸다.



조울증



평생토록 완치가 되지 않는 만성정신질환인 조울증.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다 해도 아직도 이 단어가 어색하기만 했다. 언제쯤 내가 정신질환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A교수님을 처음 뵌 건 2016년,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려는 5월의 끝 무렵이었다. 출근을 준비하던 이른 아침, 나는 방의 온갖 물건을 집어던지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정신적 예민함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가족들은 그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기분이 들뜨다 못해 가족들의 침착한 제재에도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가족들에 의해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갔다. 나조차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 길이 없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3일 동안 한숨도 못 자 한껏 기분이 격앙되었고 끊임없이 논리에 맞지 않는 긴 말을 해댔다. 가족 이야기를 했다가, 회사가 무너진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술 취한 사람인 듯 횡설수설했다. 응급실에 있던 정신과 전공의는 약간은 차가운 말투로 나에게 물었다. "여기 어딘지 아시겠어요? 여기는 응급실이에요. 왜 응급실에 오신 것 같으세요?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이 방에는 이수현님과 저 둘 밖에 없어요. 어떤 말을 하고 싶으시죠? 절 믿고 천천히 말씀해 보세요." 그녀는 내가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도록, 그 답변이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안내를 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재워 주세요... 제발... 자고 싶어요." 주사를 몇 대나 맞았을까, 드디어 잠에 들었다.


나는 잠에서 깼다. 자고 일어나면 한낱 꿈이길 바랐지만 아쉽게도 또 다른 고통이 기다렸다. 몽롱한 상태로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어디론가 이동했다. '누가 날 밀고 있는 거지?' 마취약 같은 안정제에 취해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를 더 기운 빠지게 했다.


이날 오후, 나는 A교수님을 처음 만났다. 너무 약에 취해있어서 교수님의 얼굴이 희미한 듯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누가 대학병원 진료실이라는 드라마 촬영장에 안개라도 뿌려놓았나, 사람의 형상인 듯한데 어렴풋했다. "누...구...세요?" 내 말은 어눌하게 더 느려졌다. "아... 네... 그런데... 여기는... 어디죠?" 웅웅 윙윙 주변 소음 때문인지 뭔지, 웅성웅성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만 같았다. “이수현님, 입원하셔야 하는 상황입니다. 자의 입원 동의하시나요?” 다른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입원'만이 또렷하게 들렸다. "네... 입원... 할...게요."


나는 그렇게 3년 동안 A교수님에게 조울증 진료를 받았다. 짧게는 2주, 한 달, 길게는 세 달에 한 번꼴로 대학병원과 집을 오갔다. 병식(현재 자신이 병에 걸려 있다는 자각)이 거의 없는 상태로 오라면 날짜 맞춰 가고 약을 먹으라 하면 무슨 약인지도 모른 채 먹었다. 나는 '비정상'이었다. 그것이 나를 대표하는 정체성이 되어 버렸다. 오직 나만이 비정상이라는 편견의 방에 가둬두고 있었다.


A교수님은 달랐다. 분명 조울증 환자인데 교수님은 나를 일반인과 다름없이 대해 주셨다. "이수현님이라면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조울증을 앓으면서 일상뿐만 아니라 사회생활하는 사람들, 은근 많아요. 나 자신을 너무 조울증 환자라고 한계를 짓지 않으셔도 돼요." 교수님은 언제나 "할 수 있다"며 등을 두드려주던 분이셨다. 여러 정신과 약물을 먹어 부작용에 시달리며 지쳐갈 때도, "많이 힘드시죠? 약에 적응하는 과정이라서요. 약을 다시 조절해 드릴게요. 불편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내 입장이 되어 나를 배려해 주셨다. 치료와 상담을 받으면서 인생이 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마다 나를 붙잡아 주신 분이었다. 차마 가족에게도 꺼내지 못하는 말들을 교수님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나를 지지하는 말을 해주셨다. "조울증 환자라고 해서 못하는 일은 없어요." 그때 교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런데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임신을 원한다고 말을 하기도 전에 교수님이 다른 병원으로 옮기신다는 소식이었다. "잘 되셨네요..."라고 말하며 할 말을 더 잇지 못했다. '교수님, 그럼 저는요? 제 임신 준비는 어떤 교수님과 해야 하죠?' 입 밖으로 내뱉어지지 않았다.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감춘 채 교수님 말씀만 묵묵하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과 함께 한 3년은 진료를 받기가 힘든 날도 많았지만 역설적이게도 때로는 농담도 나누며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웃으며 진료실을 나와 하루를 버티는 힘이기도 했다.


A교수님은 내가 대학병원에서 조울증 진단을 받고 임신을 결심하기 전까지 자주 물어보셨다. "이수현님, 임신 계획은요?" 나는 항상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요. 계획이 없어요." 실제로 임신을 해야 하는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교수님은 내가 임신할 수 있는 희망을 줄곧 말씀해 주셨다. 교수님의 반복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안심이 됐다. 내가 결심만 하면 얼마든지 임신의 길이 열려 있을 것만 같았다. 조울증 환자의 임신과 관련된 이야기는 자세히 찾아보지도 않았다. 포털 검색창에 '조울증 임...'까지 치고 그대로 멈췄다. 자동완성으로 나오는 몇 개의 문구에 손끝이 떨렸다. 혹시나 무서운 정보를 접하게 될까 봐 교수님만 믿고 의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를 갖겠다고 말하면 모든 게 가능할 줄 알았다.


나에게 임신은 다른 사람처럼 당연하지 않았다. 교수님은 "앞으로는 다른 선생님께 진료를 받으셔야 해요."라며 말씀하셨다. 교수님의 마지막 말은 너무 평온했지만 내 귀에는 거센 겨울 파도 소리처럼 세차게 들렸다. 무인도에 갇혀 완전히 홀로 고립된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치 실연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목 놓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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