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병실, 무너진 순간

by 포마람

뜻밖의 피비침에 우리는 어리둥절했다. 입원에 필요한 짐을 가지러 집에 가는 길에도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짜꿍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모든 게 내 탓 같아 죄책감이 스며들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오전, 나는 혼자 입원했다. 코로나 시절이라 남편은 병실에 들어올 수 없었다.


"잘 들어가.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집에 계속 있을 거니까, 알았지?" 울상을 한 내 앞에서 연신 손을 흔드는 남편이 점점 멀어졌다. 의사는 긴 입원은 아닐 거라며 1인실이 아닌 6인실 병실을 추천해 줬다. 6인실은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럼 그렇지, 추석 연휴에 누가 입원을 하겠어?'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며 맨 왼쪽 끝자리 침대에 누웠다. 두꺼운 수액 바늘이 팔에 꽂히는 순간, 눈물이 저절로 번졌다. 마음 같아서는 더 울고 싶었다. 간호사는 수액줄을 연결해 주고 나갔다. 아무 소리 없는 적막한 병실, 형광등 불빛은 내가 혼자라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 나만을 향해 쏟아졌다.


배가 불룩 나온 채 수액줄을 달고 있으니 자세가 영 이상했다. 손은 저절로 옆구리에 가 있고 걸음은 뒤뚱거렸다. 침실 바로 앞 화장실을 걸어가는 데도 은근 시간이 걸렸다. 집에서처럼, 병원 화장실에서도 붉은 물기가 묻어났다. '이게 대체 뭘까? 내가 왜 여기 화장실에 있어야 하지?' 배도 아프지 않았고 아기의 태동도 활발했다.


오후 무렵, 의사가 병실로 들어왔다. "이수현님, 좀 어떠세요? 불편한 건 없으시고요? 일단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당분간 안정을 취하셔야겠어요." "네... 퇴원은 언제 할 수 있을까요?" "당장은 지켜보고 오늘이 토요일이니까 월요일에 제가 다시 올게요. 그때까지 편히 쉬세요." '월요일이라니, 그럼 나 혼자 꼬박 3일을 이곳에 있어야 한다고?' 추석 연휴가 겹친 주말, 병실은 더 깊이 비어 보였다. '난 아픈 게 하나도 없는데 입원하는 게 맞는 건가?' 집에 가고 싶어졌다.


남편과 양가 가족들과 전화 통화를 하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괜찮아? 뭐 하고 있어? 고생이 많다." 남편도 내가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어머니와 1시간 동안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내가 조금은 이상했다. 추석 연휴라 엄마가 음식을 하고 있다며 전 부치는 영상을 보냈다. 영상 속에는 노릇노릇 한 전이 쌓여 갔다. '내가 과연 저 음식들을 먹을 수 있을까?' 화면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데 나는 맛을 상상할 수 없었다. 영상 속 추석 풍경은 나와는 다른 세상 같았다.


밤 10시도 되지 않았지만 씻지도 못하고 자야 했다. '자고 내일 일어나면 이 찝찝함이 씻겨 내려갈까?' 취침 전 정신과 약을 털어먹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눈만 껌뻑껌뻑 했다. 분명 나 혼자가 아니고 배 속 아기와 같이 있는 건데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 여유가 없는 시간이었다. 불을 끄고 커튼을 쳤다. 아늑하기는커녕 잡히지 않는 생각들이 어둠 속에서 줄줄이 넘쳐났다. '아, 집에 가고 싶다.'


잠이 오지 않았다. 눈만 감고 있을 뿐 정신만은 깨어 있었다. 약을 삼켜서 나른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몸이 더 힘이 생겼다. 불을 켜지 않은 채, 일어나 침대에 걸 터 앉았다. 임신을 준비하던 때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이 스쳐 지나갔다. 1년의 임신 준비, 청천벽력 같은 유산 가능성, 다운증후군 고위험, 그리고 오늘의 피비침까지. 하나도 무사히 지나간 일이 없었다. 다음은 뭘까? 이번에는 괜찮을까? 입원하고 있다가 3일 뒤에 퇴원할 수 있을까? 퇴원할 수 없다면? 짜꿍이가 잘 못 된다면?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질문들이 몰려들어 나 스스로를 파고들었다. 제발 누가 질주하는 내 생각 좀 멈춰줬으면 했다.


정신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내가 나에게 SOS를 보내는 것 같았다. 불을 켜고 휴대폰으로 남편에게 전화했다. '뚜뚜' 신호음만 울렸다. '집에 있겠다고 했는데 왜 전화를 안 받지? 벌써 자나?' 시계는 자정 가까이를 가리켰다. 또다시 전화를 걸었다. '제발... 받아줘. 제발... 부탁이야.' 5통의 부재중 전화가 쌓여 갔다. 남편과 빨리 통화를 하면 괜찮아질 것 같은데 도무지 받지를 않았다.


무작정 떠오르는 대로 휴대폰에서 119를 눌렀다. 숨이 가빠 말이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가 겨우 말했다. "제가 조울증 환자인데요, 지금 경조 증상이 올라와서 너무 불안해서요... 그런데 남편이 전화를 안 받아요. 그러니까..." 돌아온 대답은 차가운 거절이었다. "남편분이 환자라서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출동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직원은 스피커 너머로 말했다. "집에 호출을 해볼게요." 잠시 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나 씻고 있어서 휴대폰을 못 봤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빨리... 와... 줘. 나 너무 힘들고... 무서워. 나 어떡해?"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금세 울음으로 번졌다. "알았어. 빨리 갈게. 기다려." 나는 급히 산부인과 퇴원 수속을 밟았다.


집으로는 갈 수 없었다. 손발이 저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시야는 희미하게 흔들렸다. 나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인지가 잘되지 않았다. 남편은 차를 몰아 곧장 대학병원 응급실로 속도를 더 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응급실로 오라는 B교수님의 말만 믿고 달렸다. 동도 트지 않은 새벽 2시, 도로는 한가하게 어두웠고 저기 응급실 불빛만이 우리를 안내했다.


나는 응급실에서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저는 30주 임신부예요. 피비침이 있어 타 병원에 입원했는데 경조 증세가 올라와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싶어요. 이 병원에 다니고 있는 환자고 응급 상황 시에 B교수님이 바로 오라고 하셨어요." 응급의학과 의사는 내 말에 고개만 끄덕이며 "잠시만 기다리세요."라고 말했다. 곧이어 낯선 의료진들이 차례로 들어와 문진을 했다. 급기야 산부인과 진료실로 내 침대는 옮겨졌고 모르는 산부인과 전공의들에 의해 진료를 받아야 했다. 내 배를 만지고 초음파를 들이밀고 산과 진료를 반복했다.


"우리가 정신과 진료를 원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아무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은 조급함으로, 분노로 바뀌었다. '정신질환자가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고자 한 게 이렇게 힘든 일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응급실 도착 3시간이 넘어서야 정신건강의학과 당직 전공의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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